안녕하세요. 무님의 여행이야기 관촉사와 백제군사박물관을 소개합니다.
혼자만의 여행을 떠났다. 신랑이 출장으로 논산에 가 있었다. KTX를 타고 내려와 놀다가 만나기로 했다. 혼자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필자에게 신랑은 출장을 갈 때면 함께 내려가 혼자 여행을 하게끔 해 주는데 이번처럼 먼저 내려가 내려오라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럼 더 좋다. 혼자만의 기차여행은 늘 낭만이고 휴식이고 설렘이니까...
논산역에 내려 택시를 탔다. 관촉사는 논산역에서 택시를 타도 비용이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날씨가 참 좋은 날이었다.
관촉사 일주문에 내려주어서 걸어가는 일은 힘들지 않았다. 관촉사는 찻길 바로 옆으로 일주문이 나 있다. 일주문을 지나200m정도 걸으면 바로 사천왕문이 나온다. 이렇게 생각하면 관촉사는 사찰을 오를 때 느낄 수 있는 여유나 고요함을 느끼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천왕문을 지나 바로 나오는 산으로 오르는 계단길을 오르면 마음이 좀 달라진다. 높고 우거진 산은 아니지만 그래도 절집을 만나기 전 내 맘의 세속적인 것들을 조금은 덜어 낼 수 있는 시간이 된다.
관촉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968년(광종 19) 혜명(慧明)이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 조성한 ‘은진미륵’에 얽힌 설화가 전한다.
한 여인이 반야산에서 고사리를 꺾다가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가보았더니 아이는 없고 큰 바위가 땅속으로부터 솟아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는 바위로 불상을 조성할 것을 결정하고 혜명에게 그 일을 맡겼다.
혜명은 100여 명의 공장과 함께 970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006년(목종 9) 불상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불상이 너무 거대하여 세우지 못하고 걱정하던 어느 날, 사제총에서 동자 두 명이 삼등분된 진흙 불상을 만들며 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먼저 땅을 평평하게 하여 그 아랫부분을 세운 뒤 모래를 경사지게 쌓아 그 중간과 윗부분을 세운 다음 모래를 파내었다. 혜명은 돌아와서 그와 같은 방법으로 불상을 세웠다. 그런데 그 동자들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화현하여 가르침을 준 것이라고 한다. 불상이 세워지자 하늘에서는 비를 내려 불상의 몸을 씻어 주었고 서기(瑞氣)가 21일 동안 서렸으며, 미간의 옥호(玉毫)에서 발한 빛이 사방을 비추었다. 중국의 승려 지안(智眼)이 그 빛을 좇아와 예배하였는데, 그 광명의 빛이 촛불의 빛과 같다고 하여 절 이름을 관촉사라 하였다.
이 밖에도 이 불상에 얽힌 많은 영험담이 전하고 있다. 중국에 난이 있어 적병이 압록강에 이르렀을 때, 이 불상이 노립승(蘆笠僧:삿갓을 쓴 승려)으로 변하여 옷을 걷고 강을 건너니 모두 그 강이 얕은 줄 알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과반수가 빠져 죽었다. 중국의 장수가 칼로 그 삿갓을 치자 쓰고 있던 개관(蓋冠)이 약간 부서졌다고 하며,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또한, 국가가 태평하면 불상의 몸이 빛나고 서기가 허공에 서리며, 난이 있게 되면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손에 쥔 꽃이 색을 잃었다는 등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불상에 기도하면 모든 소원이 다 이루어졌다고 한다. 1386년(우왕 12) 법당을 신축하였고, 1581년(선조 14) 거사(居士) 백지(白只)가 중수하였으며, 1674년(현종 15) 지능(智能)이, 1735년(영조 11) 성능(性能)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관음전과 삼성각(三聖閣)·사명각(四溟閣)·해탈문(解脫門)·현충각 등이 있으며, 중요 문화재로는 보물 제218호로 지정된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과 보물 제232호인 석등,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인 배례석(拜禮石),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79호인 석문(石門), 오층석탑·사적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배례석은 너비 40㎝, 길이 150㎝의 장방형 화강암 위에 팔엽(八葉)연화 3개가 연지(蓮枝)에 달려 있는 듯이 실감 나게 조각되어 있다. 또 해탈문인 석문은 양쪽에 돌기둥을 세우고 널찍한 판석을 올려놓은 것으로, 창건 때 쇄도하는 참배객을 막기 위하여 성을 쌓고 사방에 문을 내었던 것 중 동문에 해당하는 것이다.
또한 이 절에는 1499년(연산군 5) 가야산 봉서사(鳳栖寺)에서 개판한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몽산법어(蒙山法語)』·『심우십도(尋牛十圖)』 등의 판본이 소장되어 있었다. 이는 범어사의 영명(永明)이 옮겨 보관한 것이었으나, 그 뒤에 해인사로 옮겨갔다고 한다.
관촉사의 은진미륵은 학생 시절 교과서에서 무수히 봐 왔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어른이 돼서야 세상의 멋을 조금 알게 돼서야 알게 된 소중하고 아름다운 문화유산이었다. 절집 마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찾았다. 그리고 반했다.
세련되고 혹운 고혹적인 모습의 부처님은 아니였지만 커다랗고 투박한 얼굴 속에 모든 것을 묵묵히 포용하고 있는 모습도 좋았고 돌로 만들어져 있지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섬세함에 감탄했고 절벽과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모양새에 반했다. 사실 이 날 다른 절집을 둘러보지 못했다. 은지미륵을 아래서 한참을 우러보고 산 위에 올라한 참을 옆모습을 훔쳐보고 돌아서는 순간까지도 미륵의 모습만 보고 또 보았던 것 같다.
다음으로 택시를 타고 백제군사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은 좀 외진 곳에 있어 만원 좀 넘는 택시비를 지불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후회없는 선택이었다. 지방의 박물관과 그 외의 시설들의 장점은 좋은 자리 넓은 부지 위에 시설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박물관에 오는 것조차도 소풍을 오는 설레임을 같게 한다.
백제군사박물관은 계백장군의 묘와 사당이 있는 곳에 함께 있다. 또한 체험장도 두루 갖추고 있어 아이들과 와서 하루종일 있다가 가도 서운치 않을 만한 곳이다. 필자는 도착하여 제일 먼저 박물관으로 향했다. 사람이 별로 없는 날이기에 두루두루 돌아보기에 좋았다. 관람을 마치고 숲 체험장 쪽으로 오르면 산길을 따라 국궁체험장과 승마체험장을 갖추고 있다. 체험장의 규모도 제법 큰 편이라 제대로 체험을 할 수 있을 듯했다. 산길을 한 차례 돌아 박물관 쪽으로 다시 내려와
계백장군의 동상이 있는 유적지로 올랐다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동산에 오르면 옆으로는 사당으로 향하는 길이 있지만 필자는 동상앞으로 펼쳐진 풍경에 자리를 잡고 말았다. 좀 높은 곳에 있다 보니 사람은 오지 않았고 혼자서 오롯히 그 좋은 풍경을 차지할 수 있었다. 신랑이 데리러 오기까지 이곳에서 앉아 음악을 들었다.
그날 그 자리에 앉아 바라보던 풍경과 노랫소리와 가슴을 먹먹히 만들던 많은 생각들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신랑과 만나 유명하다는 참게탕도 먹고 카페도 가고 한참을 놀다가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가끔 신랑이 권해주는 여행은 뚜럿한 정보 없이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그렇게 만나게 되는 곳들은 유난히 더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남들이 다 가기에 가는 곳이 아니라 유명한 곳이 아니라 그만큼 기대 없이 만나는 인연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늘 사랑하며 살 수 없는 중년의 부부이기에 가끔 이렇게 권해주는 여행길은 어떤 이벤트보다 고마움을 갖게 한다. 사랑은 흐려져도 정은 더 단단하게 마음에 새겨지게 한다. 필자는 여러분에게도 이번 여행지는 권해주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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