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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야기

숙종실록

by 무님 2020.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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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은 조선왕조 제 19대 왕 숙종의 재위기간인 1674년 8월에서 1720년 6월인 46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실록이다. 정식 이름은 <숙종현으 광륜예성열렬장문헌무경명원효대왕실록>이며, 모두 65권 73책으로 간행되었다.

다른 왕들의 실록과 함께 국보 제 151호로 지정되었다. <숙종실록>은 숙종이 세상을 따난 지 반년 뒤인 경종 즉위년인 1720년 11월부터 편찬에 착수하여 영조 4년인 1728년 ㄷ월에 완간하였다. 실록 편찬에 9년이 소용되었는데, 이는 숙종의 재위기간이 47년이나 되어 기사의 분량이 많았고 편찬 도중에 노론.소론의 정쟁으로 신임옥사가 생기는 등 정국이 자주 바뀌고 편찬 책임자가 여러번 바뀌었기 때문이다. <숙종실록>을 편찬한 전후의 실록청 관원은 아래와 같다. 총재과-김창집, 토대구,최규서, 최석항, 이광좌, 정호, 이관명, 민진원,이의현. 도청당상-송상기, 이관명, 이광좌, 이재, 최석항,이의현, 민진현, 조태억 등이다. 

숙종은 46년인 1720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묘호는 숙종이고, 존호는 장문헌무경명원효이고, 능은 명릉으로 경기도 덕양구 용두동 서오릉에 있다.

 

좌 : 숙종 필적 / 우 : 숙종어필 칠언시

 

<숙종실록>의 내용

숙종은 현종의 큰 아들로서 휘는 순, 자는 명보이다. 숙종은 1674년 8월에 14세에 왕으로 즉위하였는데, 6년에 경신확국, 15년에 기사화국, 20년에 갑숙환국이 일어나 그때마다 남인과 서인 사이에 정국이 바뀌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숙종 6년에 왕비 인경왕후 김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 7년에 계비 민씨가 왕비로 책립되었으나 아들을 낳지 못하였는데, 후궁인 숙원 장ㅆ가 숙종의 총애를 받아 14년 10월에 왕자를 낳았다. 숙종은 15년 정월에 왕자를 원자로 책봉하고 장씨를 희빈으로 봉하였다. 1689년 인현왕후 민씨는 폐출되었고 장 희빈이 중전이 되었다. 이때 송시열이 인현왕후를 폐하는 것은 왕비가 젊기 때문에 후사를 낳을 가망이 있기 때문에 시기상조라고 주장하자 숙종은 송시열의 관직을 빼앗고 서인 일파를 내쫗았다. 이어 장희빈을 왕비로 승격시키고 경종을 세자로 책봉하였다. 이에 남인들은 송시열을 제주에 위리안치시켰다가 6월에 정읍으로 옮기는 도중에 사사하였다.

폐비 민씨는 다시 왕비로 복위되고, 왕비 장씨는 다시 희빈으로 강봉되었으며, 나중에 숙종은 호서, 호남 지방에 시행하던 대동법을 영남에도 시행했으며, 상평통보라는 동전을 주조하여 시행하였다. 그리고 서원의 중첩 설치를 금하고, 서북인의 임용을 장려하였다. 38년인 1712년에는 백두산의 분수령(압록강과 두만강이 갈리는 곳)에 정계비를 세웠다.

 

 

 

 

* 숙종의 태실이야기

 

숙종 태실비 (아지비)

 

 

19대 임금 숙종의 태실은 충남 공주시 태봉동 산64-1에 있다. 1661년 숙종이 태어났을 때 현 위치에 태를 묻고 훗날 왕위에 즉위하자 왕의 태실로 승격하여 새롭게 조성했다. 그 과정을 기록한 2기의 태실비가 1661년(현종2년)과 1683년(숙종 9년)에 각각 건립됐다.

그 후 일제강점기에 숙종의 어태는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이로 이장되었고, 지금은 2기의 비석만 남아있다. 한때 태실비가 훼손되어 비신과 비좌가 훼손되었던 것을 공주시에서 조립하여 세워놓았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 321호

현종 때 세워진 아기비는 규모가 작으며, 비대만을 갖춘 간략한 형식이다. 비의 좌대는 방형으로 2분해서 중앙에 연화를 배치했다. 비의 높이는 159cm이고, 비신의 폭은 54cm, 두께는 15cm이다. 좌대는 높이 50cm, 폭 93cm, 너비 59cm 이다. 숙종 대에 건립된 태실비는 귀부와 이수를 갖추고 있다. 귀부는 단일 석재로 만들었으며, 배면에는 6각의 귀갑문으로 완전히 채웠다. 윗면 중앙에 장방형의 비좌를 만들었다.

귀부의 머리는 짧은 목에 머리를 왼쪽 위로 틀어 올렸다. 크기에 비해 몸 전체가 높은 편이다. 비의 크기는 총 높이 188cm, 폭 62cm, 높이 31cm,이고 귀부는 길이 210cm, 너비 120cm,높이 105cm 이다. 1683년에 건립한 비석에는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을 조각했다.

비석의 명문을 보면

'아기비'는 (前面 : 順治十八年八月十五日卯時生元子阿只氏胎室, 後面 : 順治十八年二月二十五日辰時立)

(전면 : 순치십팔년팔월십오일묘시생원자아기씨태실, 후면 : 순치십팔년십이월이십오일진시립)

이라 되어 있다.

'가봉비'는 (前面 : 主上殿下胎室, 後面 : 康熙二十二年十月十五日建)

(전면 : 주상전하태실, 후면 강희이십이년십월십오일건)

으로 아기때실의 조성은 현종 2년(1661년)에 있었고, 태실의 가봉은 숙종 9년 (1683년)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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