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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님의 여행 이야기

제주 오름의 여왕 < 다랑쉬오름 >

by 무님 2020.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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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여행은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사계절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고 볼거리가 넘쳐나며 먹거리 또한 부족함이 없는 곳이 제주다. 이런 제주에서 좋은 곳을 콕 집어 소개한다는 것이 얼만 오만인지를 알 수 있지만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요즘에 걷기 좋은 < 다랑쉬오름 >을 떠올려 본다.

 

다랑쉬오름은 북제주군(현: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와 세화리에 걸쳐 있는 원뿔 모양의 산세가 가지런하고 균형이 잡혀 있어 ‘오름의 여왕’이라 할 만큼 우아하다. 한복 치마를 벌려놓은 듯 가지런한 외형도 아름답지만, 갖가지 들풀과 눈을 마주치며 정상으로 오르는 가르마 같은 정다운 길,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정상의 분화구 또한 다랑쉬오름의 자랑이다.

 

 

다랑쉬 오름

‘다랑쉬’라는 이름은 오름에 쟁반같이 뜨는 달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하여 이름 붙은 제주말로, 높은 봉우리라는 뜻의 ‘달수리’ 또는 한자식 표현으로 ‘월랑봉’()이라고도 부른다. 깔대기 모양으로 움푹 파여 있고 바닥에 풀이 무성한 이 분화구는 둘레 1.5㎞ 깊이 115m로 상당히 크고 깊다. 깊이는 한라산 백록담과 엇비슷한 정도이다. 제주 설화에 의하면 설문대할망이 치마로 흙을 나르면서 한 줌씩 놓은 것이 제주의 오름인데, 다랑쉬오름의 경우에는 흙을 놓자 너무 두드러져서 손으로 탁 쳐서 파이게 한 것이 지금의 분화구가 된 것이라고 한다.

다랑쉬오름에 도착하면 생각보다 높고 가파름에 놀랄 수 있다. 계단과 폐타이어가 가파르게 길을 만들면 놓여 있다. 하지만 걱정 할 것이 없는 것이 30분 정도면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다랑쉬오름 정상에 올라서면 탁 트인 시야가 흐르는 땀마저 시원하게 해 준다. 사계절이 모두 좋은 다랑쉬지만 가을의 억새와 파란 하늘이 펼쳐진 모습은 가슴마저 설레게 만들어 준다. 또한 시선을 멀리하면 넓은 평야 위에 많은 오름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모습 또한 시선을 멈추게 만들어 준다. 

 

 

 

 

정상에 오르면 굼부리를 따라 한 바퀴 돌아 보면 좋다. 오르던 기로가 다르게 굼부리를 도는 길은 무난하다.

이토록 아름다운 다랑쉬오름에는 아픈 역사가 숨어 있다. 1948년 다랑쉬오름 아래에는 농사와 목축업에 종사하는 20여 가구의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었다. 4·3 항쟁 와중에 군·경 토벌대에 의해 마을이 초토화되는 불상사가 생겼다. 이때 마을 사람 몇몇이 다랑쉬오름 주변의 자연굴에서 피난생활을 하였는데, 군·경 토벌대에게 발각돼 굴 속에서 몰살당한 것이다. 다랑쉬굴은 다랑쉬마을과 300m 떨어진 들판에 있으며, 굴의 입구는 직경이 60~70㎝로 좁고 낮아 한 사람이 엎드려서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이다. 군·경 토벌대는 당시 굴 주변에 떨어진 인분을 보고 피난민을 발견해냈고, 피난민들에게 굴에서 나오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따르지 않자 굴 양쪽 입구에 동시에 불을 지펴 연기를 안으로 들어가게 해 피난민들을 모두 질식사시켜버렸다.

1948년 다랑쉬오름 아래에는 농사와 목축업에 종사하는 20여 가구의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었다. 4·3항쟁 와중에 군·경 토벌대에 의해 마을이 초토화되는 불상사가 생겼다. 이때 마을 사람 몇몇이 다랑쉬오름 주변의 자연굴에서 피난생활을 하였는데, 군·경 토벌대에게 발각돼 굴 속에서 몰살당한 것이다.
다랑쉬굴은 다랑쉬마을과 300m 떨어진 들판에 있으며, 굴의 입구는 직경이 60~70㎝로 좁고 낮아 한 사람이 엎드려서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이다. 군·경 토벌대는 당시 굴 주변에 떨어진 인분을 보고 피난민을 발견해냈고, 피난민들에게 굴에서 나오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따르지 않자 굴 양쪽 입구에 동시에 불을 지펴 연기를 안으로 들어가게 해 피난민들을 모두 질식사시켜버렸다.

 

 

 

제주 여행이 그러하듯 자가용이 없으면 다니기가 쉽지 않다. 다랑쉬오름 역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가기가 쉬운 곳은 아니지만 뚜벅이 여행을 선호하는 이들도 적지 않아 교통편을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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