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의 재위 시기에는 참 많은 사건이 있다. 그중에서도 정칮거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 발생하이, 이는 바로 사림의 시대가 시작된 것과 붕당의 발생이였다. 제13대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죽고, 윤원형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사림들이 다시 중앙으로 재기하는 데 성고한다. 그리고 이황, 조식, 성혼, 이이를 중심으로 학파가 결성되어 학문이 더욱더 바렂하게 된다. 하지만 정치적 논쟁은 심화된다. 그리고 얼마후 사림 세력은 둘로 나뉘게 된다. 서로 학문적, 정치거 입장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사림파들은 맨 처음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게 된다. 이때 서인의 우두머리가 되는 사람이 심의겸이다.
심의겸은 1535(중종 30)∼1587(선조 20).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방숙(方叔), 호는 손암(巽菴)·간암(艮菴)·황재(黃齋). 사인(舍人) 심순문(沈順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영의정 심연원(沈連源)이고, 아버지는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심강(沈鋼)이다. 어머니는 전주 이씨로, 증판서 이대(李薱)의 딸이다. 족부인 감찰 심홍(沈泓)에게 입양되었다. 명종의 비인 인순왕후(仁順王后)의 동생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55년(명종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562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청요직에 임명되었다.
1563년 사림들이 이량(李樑)으로부터 화를 입게 되자 외숙인 이량을 탄핵하며 권세와 간계를 배척하는 등 사림의 입장을 옹호하는 데 힘썼으나, 도리어 왕의 외척으로 일을 꾸민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1564년 지평(持平)·검상(檢詳)·사인(舍人)을 거쳐 이듬해 사간·부응교(副應敎) 등을 역임하였다. 이어 1566년 집의(執義)·군기시정(軍器寺正)·직제학·동부승지 등을 지냈다. 1569년 (선조 2) 좌부승지·대사간을 지내고, 1572년 이조참의 등을 지내는 동안 척신 출신으로서 사림들간에 명망이 높아 선배 사류들에게 촉망을 받았다.
1572년(선조 5) 이조참의(吏曹參議) 등을 지내는 동안 척신(戚臣)인 그는 구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는데 이때 김종직(金宗直) 계통의 신진 사류(士類) 출신인 김효원(金孝元)이 김계휘(金繼輝)에 의하여 이조정랑으로 천거되자 김효원이 일찍이 명종 때의 간신이던 윤원형(尹元衡)의 집에서 기숙한 사실을 들어 이를 반대했다.
그러나 결국 1574년 김효원은 이조정랑에 발탁되었고 이듬해 의겸의 아우인 심충겸(沈忠謙)이 김효원의 후임으로 이조전랑에 추천되자 이번에는 김효원이 전랑(銓郞)의 직분이 척신의 사유물이 될 수 없다 하여 반대함으로써 두 사람은 대립하기 시작했다. 결국 심의겸을 지지하는 서인(西人)과, 김효원을 지지하는 동인(東人)으로 갈라져 당쟁의 시초가 되었다. 당시 심의겸의 집이 도성 서쪽 정릉방(貞陵坊)에 있었기 때문에 서인이라 불렀고, 김효원의 집이 도성 동쪽 낙산 및 건천동(乾川洞)에 있었기 때문에 동인이라고 불렀다. 심의겸을 지지했던 서인으로는 정철, 윤두수, 박순, 김계휘, 구사맹, 홍성민, 신응시 등이 있었다.
당시 정승 노수신(盧守愼)과 이이(李珥)가 사림간의 분규가 격화될 것을 우려하여 올린 소에 의해 개성유수로 나갔다가 전라감사를 거쳐, 조정으로 돌아왔다.
그 뒤 한때 낙향하여 은퇴했으나, 1580년 예조참판으로 함경감사를 역임하였다. 이 때 장령(掌令) 정인홍(鄭仁弘)이 심의겸을 질투하여 탄핵을 받았으나, 이이의 상소로 무사하여 전주부윤이 되었다.
1584년이이가 죽자, 이발(李潑)·백유양(白惟讓) 등이 일을 꾸며 동인과 합세하여 공박함으로써 파직당하였다. 그러나 벼슬이 대사헌에 이르렀고, 세습으로 청양군(靑陽君)에 피봉되었다. 효성이 지극하고 검소하였으며, 외척으로 있으면서도 권세를 함부로 부리지 않았다. 나주의 월정서원(月井書院)에 제향되었다.
심은겸은 선조 20년인 1587년 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묘지는 파주시 광탄면 애국지사 심상각선생 생가, 묘소에 있다. 심상각 선생님은 애국지사로 심의겸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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