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게는 1명의 왕비와 5명의 후궁이 있었다. 그의 자녀는 18남 4녀로 첫째 아들 문종이 5대 왕이 된다. 그리고 그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이 조선 7대 왕이 된다. 왜~~~ 세종의 아들 수양대군이 7대 왕이 될 수 있었던 걸까? 그 이야기는 아주 비극적이고 슬픈 사연이 있다. 세종의 뛰어난 왕이 였던 만큼 그의 장남 문종 또한 학식이 뛰어났다. 하지만 그 밑의 동생들 수양대군과 안평대군 또한 매우 뛰어났던 인물들도 평가가 된다. 그리고 세종은 자식들 모두에게 정치적 입지를 다질 기회를 준다.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 아니였을까 싶다.
소헌왕후 심씨는 1395년에 태어나 1446년에 죽었다. 세종의 정비 소헌왕후 심씨는 영의정 심온의 딸이다. 1408년 충녕군 이도와 가례를 올리고 경숙옹주에 봉해졌다. 1417년 삼한국대부인에 봉해지고 이듬해 6월 충녕대군이 세자에 책봉되자 경빈에 봉해졌으며, 같은 해 8월에 세종이 즉위하자 12월에 왕후로 책봉되어 공비로 불렸다. 심씨의 아버지 심온이 영의정에 올라 사은사로 명나라에서 돌아오던 중, 아우 심정이 군국대사를 상왕인 태종이 혼자 처리한다고 불평했다는 이유로 옥사가 이어났다. 심온은 이 사건의 수괴로 지목되어 수원으로 펌출되어 사사되었다. 이때 심씨를 폐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그녀의 내조의 공이 인정되어 폐비는 면하였다. 심씨는 8남2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맏아들 향(문종)을 비롯하여 수양(세조), 안평, 임영, 광평, 금성, 평원, 영응 등 아들 8형제와 정소, 정의 등 두 딸을 두었다.
소헌왕후 심씨는 1446년 52세에 세상을 떠났으며, 그녀의 능은 영릉으로 세종이 승하한 뒤 합장하여 조선 최초의 합장릉이 되었다.
안평대군은 1418년에 태어나 1453에 죽었다. 1418년 세종과 소헌왕후의 세째 아들로 태아났다. 이름은 용, 호는 비해당, 낭간거사, 매죽헌 등이다. 1428년 안평대군에 봉해졌으며 이듬해 좌부대언 정연의딸과 결혼하였고 1430년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김종서가 육진을 신설하자 1438년 왕자들과 함께 야인을 토벌하였으며, 황보인, 김종서 등고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수양대군의 세력과 맞서 황표정사를 장악하는 등 점차 조정의 실력자로 떠올랐다.
1452년 단종이 즉위하자, 수양대군은 사은사로 명나라를 다녀오고 난 뒤 황표정사를 폐지하였다. 안편대군은 이에 반발하여 황표정사의 회복에 주력했으나 이듬해 계유정난으로 황보인, 김종서 등이 수양대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뒤 자신도 강화도로 귀양을 갔다가 교동으로 옮긴 뒤 36세에 사사되었다. 안평대군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시, 서, 화에 모두 빼어나 삼절이라 불리었고 당대 제일의 서예가로 명성을 떨쳤다. 현존하는 그의 작품으로 안견의 <몽유도원도> 발문이 대표적이며, 법첩과 각첩으로 자하는 작품들이 다수 있다.
임영대군은 1419년에 태어나 1469년에 죽었다. 세종과 소헌왕후의 넷째 아들로 이름은 구이며, 자는 헌지이다. 1428년 대광보국 임여대군에 봉해졌으며, 1430년 안평대군과 함께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임영대군은 1442년 원윤이 되었으며, 1445년에는 세종의 명을 받아 총통 제작을 감독하였고, 1451년 문종1년 문종의 명을 받아 화차를 제작하였으며, 세조가 조정의 정권을 잡다 그를 도와 신임을 받았다.
광명대군은 1425년에 태어나 1444년에 죽었다. 세종과 소헌왕후의 다서째 아들로 이름은 여, 자는 환지이다. 1432년 광평대군으로 봉해지고 1436년에 신자수의 딸과 결혼했으며, 그 해에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광평은 <효정>, <소학>,<사서함경>,<좌전> 등에 능통해였고 이백, 두보, 구양수, 소식 등의 문집을 읽었고 국어, 음률, 산수에도 밝았다.
1437년 태조의 아들이자 신덕왕후 강씨의 첫번째 아들인 방번의 봉사손으로 입양되었다. 이듬해에 새로 개척한 육진의 국방 강화 및 풍속교화를 위하여 한양에 경재소를 두고 종친으로 하여금 주관하도록 할 때 종성을 맡았다. 그는 20세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금성대군은 1426년에 태어나 1457년에 죽었다. 세종과 소헌왕후의 여섯째 아들로 이름은 유이다. 1433년 금성대군에 봉해졌고 1437년 참찬 최사강의 딸과 혼인했으며, 그 해 태조의 여덟째 아들이자 신덕왕후 강씨의 두번째 아들인 방석의 봉사송으로 입양되었다. 1452년 단종이 즉위하자 수양대군과 함께 사정전으로 불려가 왕을 보필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리고 수양대군이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자 이에 반발하다 삭녕에 유배당했다. 그 위 유배지를 떠돌다가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자 자신의 유배지였던 순흥에서 부사 이보흠과 모의하여 단종의 복위계획을 세웠으나 관노의 고발로 실패로 돌아가 반역죄로 처형당했다.
평원대군은 1427년에 태어나 1445년에 죽었다. 세종과 소헌황후의 일곱째 아들로 이름은 임, 자는 진지이다. 1434년 8세에 평원대군으로 책종되고 1437년 종학에 입학 호군 홍이용의 딸과 결혼했다. 그 뒤 학문에 힘쓰다가 1445년 1월 두창으로 세상을 떠났다.
영응대군은 1434년에 태어나 1467년에 죽었다. 세종의 여덟째 아들이며 이름은 염이다. 1443년 역양대군, 1447년 영응대군으로 개봉되었다. 세종의 초애가 매우 깊었다고 한다. 1450년 세종은 영응대군의 집인 동별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1463년 <명황계감>의 가시를 한글로 번역하였고 글씨와 그림에 뛰어났으며, 음악에도 조예가 몹시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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