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은 이성계가 1338년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1392년 조선왕조를 창업하여 27대 518년 만에 일제에 의해 강제로 멸망하기까지 역대 왕들의 실록을 모은 책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일시에 편찬된 사서가 아니라 대대로 편찬한 것이 축적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대체로 조선시대에는 왕이 승하하면 다음 왕 때에 임시로 실록청(實錄廳)을 설치하여 전왕대의 실록을 편찬하는 것이 상례였다.
실록 편찬시 이용되는 자료는 정부 각 기관에서 보고한 문서 등을 연월일순으로 정리하여 작성해둔 춘추관 시정기(春秋館時政記)와 전왕 재위시의 사관(史官)들이 각각 작성해둔 사초(史草)를 비롯하여, 『승정원일기』·『의정부등록』 등 정부 주요 기관의 기록과 개인 문집 등이었다. 후세에는 『조보(朝報)』·『비변사등록』·『일성록』 또한 중요 자료로 추가되었다.
실록의 편찬은 다음의 세 단계를 거쳐서 완성되었다. 첫째 단계는 1·2·3의 각 방에서 춘추관 시정기 등 각종 자료 가운데에서 중요한 사실을 초출(抄出)하여 초초(初草)를 작성하였다. 둘째 단계는 도청에서 초초 가운데 빠진 사실을 추가하고 불필요한 내용을 삭제하는 동시에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여 중초(中草)를 작성하였다. 셋째 단계는 총재관과 도청 당상이 중초의 잘못을 재수정하는 동시에 체재와 문장을 통일하여 정초(正草)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실록이 완성되면 이를 특별히 설치한 사고(史庫)에 비장하였다. 그리고 편찬에 이용한 기본 자료인 춘추관 시정기와 사관의 사초 및 실록의 초초와 중초는 기밀 누설을 방지하고 동시에 종이를 재생하기 위한 조처로서, 조지서(造紙署)가 있던 자하문(紫霞門) 밖 차일암(遮日巖) 시냇물에서 세초(洗草)하였다.
사고에 보관된 실록은 3년에 한 번씩 꺼내어 포쇄(暴灑)하였다. 이때에도 전임 사관 1명이 파견되어 일정한 규례에 따라 시행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실록은 정치의 잘잘못과 왕의 선악 및 신하들의 간위(奸僞) 등을 사실대로 기록한 것이므로, 사관 이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하였다.
'조선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종실록 (0) | 2020.03.02 |
---|---|
태조실록의 편찬과 내용 (0) | 2020.03.01 |
태조 이성계, 무학도사를 만난다 (0) | 2020.03.01 |
조선 4대 왕 세종의 가족관계 (0) | 2020.02.29 |
조선 3대 왕 태종 이방원의 가족관계 (0) | 2020.02.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