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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님의 여행 이야기

1박2일 혼자 떠나는 < 여수여행 >

by 무님 2020.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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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여행을 좋아한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여행에선 나를 내려놓을 수 있음이 좋다. 특히나 혼자 떠나는 여행은 나를 구속함이 없어 좋다.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은 끼니를 생각해서 맛집을 알아봐야 하고 미리 어디를 가야 할지 계획해야 하며 어디서 자야 할까 숙소도 알아봐야 한다. 그리고 그 몫은 고스란히 내 몫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족여행을 하게 되면 머릿속은 온통 다음 행선지와 식사를 걱정하기 마련이다.

필자는 혼자 여행을 떠난다. 욕심껏 오래시간 떠나고 싶지만 그건 정말 욕심을 내는 것이고 당일이나 1박 2일의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여행지는 갔던 곳에 가는 경우가 많다. 같은 여행지라도 다른 계절 다른 장소를 다니다 보면 새로운 것을 보게 되는데 그 즐거움이 만만치 않다.

여수가 나에겐 그런 곳이다. 가족 여행으로만도 4번을 다녀오고 혼자만 여행한 것도 3번이 넘는다. 가족 여행의 여수는 광활하게 다닌다. 굵직하고 큰 계획의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혼자만의 여행은 짧은 동선이지만 되도록이면 뚜벅이로 여행을 한다. 걸어서 여행을 한다는 건 구석구석의 모습을 고스란히 가슴에 담을 수 있다. 그리고 남들이 알지 못하는 나만의 여행 기록으로 남는다.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추억을 쌓는 것이다.

 

여수 오동도

 

 

여수 엑스포역는 역에서 나와 보이는 바다조차도 아름답다. 화려한 무엇인가가 있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냥 바닷빛 자체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한나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되는 곳이다. 그 앞바다를 지나고 엑스포 공원을 지나고 오션힐 호텔을 지나면 오동도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이 길은 방파제를 쌓아 만든 길로 오동도를 걸어서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진 곳이다. 물론 그 거리가 꽤 멀어 열차가 운행되지만 필자는 대부분 걸어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길이든 그 만이 가지는 멋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다를 보며 한참을 걷다 보면 오동도에 도착한다.

오동도는 여수시에 있는 섬으로 멀리서 보면 섬의 모양이 오동잎처럼 보이고, 예전부터 오동나무가 유난히 많아 오동도라 불리게 되었다. 현재는 곳곳에 이 섬의 명물인 동백나무와 조릿대의 종류인 이대를 비롯하여 참식나무·후박나무·팽나무·쥐똥나무 등 193종의 희귀 수목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특히 이곳에서 자생하는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자라는데 그때문에 ‘동백섬’ 또는 ‘바다의 꽃섬’으로 불리기도 한다. 섬의 위치는 여수역에서는 1.2㎞, 여수공항에서는 19.7㎞ 지점에 있다. 면적은 면적 0.12㎢, 해안선길이 14㎞이다.
임진왜란 때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 최초로 수군 연병장을 만들었고 이곳의 조릿대의 이대로 화살을 만들어 왜군을 크게 무찔렀다고 한다. 1933년에 길이 768m의 서방파제가 준공되어 육지와 연결되었고, 1968년에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69년에는 관광지로 지정되었다.
섬 전체는 완만한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은 암석해안으로 높은 해식애가 발달해 있고, 소라 바위·병풍바위·지붕 바위·코끼리바위·용굴 등으로 불리는 기암절벽이 절경을 이룬다. 1월 평균기온 1.6℃ 내외, 8월 평균기온 25.9℃ 내외이며, 연강수량은 1,413㎜ 정도이다. 1998년에는 오동도 관광식물원이 개장되었다. 섬 남단에 오동도 등대가 있다.

필자는 여러분께 하루를 소비하더라도 오동도를 온전히 걸어 보기를 추천드린다. 작은 섬은 곳곳에 전망을 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두었는데 그 길들을 따라 한 곳 한 곳 찬찬히 둘러보면 각각의 자리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이 다르다고 말해주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광지의 한 코스로 빠르게 보고 지나치는데 그러기엔 오동도가 갖고 있는 매력은 다체롭고 아름답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진남관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32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 4월 17일 국보 제304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건물이 있는 자리는 충무공() 이순신()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하던 곳인데 당시에는 진해루라는 누각이었다. 진해루가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 의해 불에 타 소실되자 1599년(선조 32) 삼도 수군 통제사 겸 전라 좌수사로 부임한 이시언()이 전라좌수영 건물로 75칸의 거대한 객사를 지어 진남관이라 이름 짓고 수군의 중심기지로 사용하였다. 후에는 역대 임금의 궐패(闕牌)를 봉안하고 군수가 망궐례를 올렸으며 국경일에는 군민들이 모여 봉도식()을 거행하였다.
1716년(숙종 42) 불에 타버린 것을 1718년 전라 좌수사 이제면()이 다시 건립하였다. 1910년(순종 4)부터 50여 년 동안 여수 공립 보통학교와 여수중학교, 야간 상업 중학원 등의 교실로도 사용되었다.
정면 15칸, 측면 5칸, 건평 240평(약 780㎡)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된 거대하고 웅장한 건물로, 현존하는 지방 관아 건물로는 제일 크다. 높은 언덕 위에 계좌정향()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사괴석()과 장대석()을 섞어 쌓은 기단 위에 막돌로 주춧돌을 놓고 둘레 2.4m의 민흘림기둥을 세웠다. 평면 전체가 통칸으로 뚫려 있고 벽체도 없으며 창호도 달지 않았다.
처마는 부연()을 단 겹처마이며, 팔작지붕의 양측 합각은 널빤지로 마무리하였고 추녀 네 귀는 활주로 떠받쳤다. 바닥은 우물 마루이고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이다.
가구는 간결하면서도 건실한 부재를 사용하여 건물이 웅장해 보인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배치하고 그 사이사이에는 화려한 화반()을 받쳤는데, 주심포()와 다포식()을 절충한 양식이다. 평면은 68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었는데 건물 내부 공간을 크게 하기 위해 동·서쪽 각각 두 번째 협칸의 전면 내진주()를 옮겨서 내진주 앞쪽에 고주()로 처리하여 공간의 효율성을 살렸다. 각 부재에는 당시의 단청 문양이 대부분 잘 남아 있다. 당시의 역사적 의의와 함께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건물이다.

진남관도 필자가 여수에 가면 꼭 가는 곳 중에 하나다. 이 곳에서 바라보는 이순신장군 광장과 여수 바다가 좋다. 진남관 옆으로 있는 벽화마을도 걷고 저녁에는 여수 포차 거리도 걸어 보았다. 혼자 여행의 가장 좋은 점은 먹고 싶을 때 먹고 숙박은 가면서 게스트 하우스를 예약해 간단하게 잠만 해결하고 비용도 절약하고 계획 없이 발걸음 멈추는 곳에서 멍~~ 때리고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날 이른 새벽 짐을 챙겨 향일암으로 향했다. 버스로 1시간 20분을 가야 만날 수 있는 곳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 향일암이다. 이른 아침에 도착한 향일암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필자가 추천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이른 아침에 가는 향일암이다. 향일암을 다 돌아보고 내려와 그 밑에 자리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세상 여유로움을 즐겨 보기를 권해드린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되어 마지막으로 여수 돌섬으로 갔다. 여수의 돌섬은 케이블카가 유명하지만 사실 돌섬 공원에 앉아 바라 보는 바다는 위로가 된다. 필자는 여수 돌섬의 계단에 자리하고 한참을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 곤 하다.

힘들어 도망쳐 온 일상을 돌아보며 나에게 위로해 준다. '괜찮다~ 괜찮다~~' 이렇고 있다보면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한껏 가벼워진다. 시끄럽고 어수선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한 동안은 다시 열심히 살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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