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무님의 여행 이야기

마음을 열고 오르는 < 개심사 >

by 무님 2020. 6. 29.
728x90

개심사는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상왕산()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혜감이 창건한 사찰이다. 54년(의자왕 14) 혜감()이 창건하여 개원사()라 하였다. 1350년(충숙왕 2)처능()이 중창하고 개심사라 하였으며, 1475년(성종 6)에 중창하였다. 그 뒤 1740년(영조 16) 중수를 거쳐 1955년 전면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서산 개심사

개심사의 봄은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여느 곳처럼 벚꽃이 만개하는 아름다움이 그렇지만 벚꽃이 다른 곳과는 다르게 그 아름다움이 더 한다고 한다. 그래서 봄이면 신도 보다 관광객 더 많아지는 곳이 개심사란다. 물론 필자가 찾았을 때는 녹음이 짙은 여름이었다. 개심사의 가장 아름다운 계절을 보고 싶은 마음은 컸으나 왠지 개심사와의 첫 만남은 조용하고 편안하게 가장 평범한 모습으로 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개심사의 입구는 여느 절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일주문을 들어서기 전 주차장 인근으로는 노점상과 식당들이 있다. 그 길을  따라 오르는 길은 녹음이 짙푸르다. 산길을 걸오 오르다 개심사는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상왕산(象王山)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혜감이 창건한 사찰이다. 54년(의자왕 14) 혜감(慧鑑)이 창건하여 개원사(開元寺)라 하였다. 1350년(충숙왕 2)처능(處能)이 중창하고 개심사라 하였으며, 1475년(성종 6)에 중창하였다. 그 뒤 1740년(영조 16) 중수를 거쳐 1955년 전면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개심사의 봄은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여느 곳처럼 벚꽃이 만개하는 아름다움이 그렇지만 벚꽃이 다른 곳과는 다르게 그 아름다움이 더 한다고 한다. 그래서 봄이면 신도 보다 관광객 더 많아지는 곳이 개심사란다. 물론 필자가 찾았을 때는 녹음이 짙은 여름이었다. 개심사의 가장 아름다운 계절을 보고 싶은 마음은 컸으나 왠지 개심사와의 첫 만남은 조용하고 편안하게 가장 평범한 모습으로 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필자는 나무가 무성하고 푸른 계절 개심사를 찾았다. 개심사는 상왕산에 자리하고 있는데 다른 절에 비해 소박하다. 절집이 많은 것도 아니고 마당이 넓은 것도 아니며 절집과 절집 사이가 좁아 산이 푸르른 계절의 개심사는 그 푸르름에 묻힌 듯하다.  개심사로 오르는 길은 여느 절과 다르지 않다. 주차장에 내리면 노점상과 음식점이 있고 그 길을 지나면 일주문이 보인다. 일주문을 지나 오르는 길도 잘 닦아 놓아 편히 오를 수 있다.

산길을 따라가다 모퉁이를 지나면 긴 직사각형의 연못이 보인다. 그 연못 위로 통나무로 만든 다리를 볼 수 있다. 물로 옆으로 난 길이 있으니 그 길로 오르셔도 된다. 연못의 통나무를 지나면 안양루가 앞에 있다. <안양루>는 연못을 지나 돌계단을 올라 그곳에 있다. 안양루에는 근대 명필인 해강() 김규진(, 1868~1933년)이 대자 전서로 쓴 ‘상왕산 개심사(象王山開心寺)’ 현판이 달려 있다. 안양루를 지나면 바로 대웅보전을 볼 수 있다.

<대웅보전>은 단정한 장대석 기단에 자연석을 주초로 하여 1484년에 짓고 1644년과 1710년에 개수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앞뒤로 조금 긴 장방형 9칸 다포건물이다. 이는 몇 채 남지 않은 조선 초기 건물로, 주심포계에서 다포계로 이전해 가는 과정의 절충 형식이라는 데 높은 가치가 있다. 주심포계의 일반형인 맞배지붕으로, 구조 법식과 기법은 고스란히 주심포계를 따르지만 공포는 다포계로 만들어진 것이다. 고려 시대 건축처럼 단정한 맞배지붕을 간직하고 있다. 공포는 다포계이지만 건물 안쪽으로는 다시 주심포식 지붕 구조여서 천장 구조를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에 과도기적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대웅전의 불상은 여느 불상과는 사뭇 다른 푸근한 풍모에 인간적인 조형이어서 이웃집 아저씨를 보는 듯하다. 바라보고 예배하면 빙긋이 미소가 절로 난다. 불상의 조각을 담당한 불모()의 심미안을 보는 듯하다. 이는 당시 불모장이 이 지역 사람으로 불상의 이해가 완전하게 이루어진 다음에 만들어낸 결과물 이리라.
불단장엄의 대표적 방식은 화려한 닫집을 만들고 그 안에 청룡과 운학으로 장식하는 것이지만, 개심사 대웅보전 삼존불 위에는 따로 화려한 닫집을 만들지 않고 대신 운궁형()의 소박한 보개를 만들었다. 들보 아래 매달린 학의 정교한 목조 조각이 법당 안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고색 단청과 함께 세월의 멋과 깊이를 한껏 보여준다

 

대웅보전  옆으로는 심검당과 무량수전이 있다. <심검당>은 님들이 거처하는 요사채이다. 자연스럽게 휘어진 나무를 기둥과 부재로 삼아 조선 건축에서 보이는 자연미를 한껏 간직하고 있다. 툇마루가 붙어 있는 심검당의 공포는 주심포 구조로, 쇠서(소의 혀와 같이 생긴 장식)가 상당히 날카롭고 강직해 조선 초기의 건축적 특성을 보여준다.
1962년에 해체 수리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1477년 3중창했고 영조 때까지 6번이나 중창을 거쳤다고 되어 있으니 이 절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기둥 사이의 길이와 기둥 높이의 비례가 3.5 대 1로 평활()한 구성을 보이는 것은 수덕사 대웅전과 마찬가지로 충청도 지역 가옥의 넉넉한 모습을 보여준다. 단청을 하지 않아 깊은 맛이 오히려 좋다. 심검당에 이어 다듬지 않은 나무를 그대로 살려 부재로 삼은 건축은 심검당의 부엌으로, 후대에 지어 이은 것이다. 개심사 심검당은 전남 승주 송광사()의 하사당(), 경북 경산 환성사()의 심검당과 함께 조선 초기 요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건축물들이다.

 

해탈문을 지나면 만나는 무량수전은  ‘무량수각’이라고 당호를 달고 있으며 스님들이 사용하는 곳이기도 하는 곳이다.

개심사에서 가장 주목해서 볼 만한 것은 <명부전>이다. 개심사의 명부전은 무량수각 동편에 위치하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측면에 풍판(: 비바람을 막기 위해 연이어 대는 널빤지)이 있는 조선 초기의 건물이다. 명부전 내부에는 철불지장보살좌상과 시왕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기도의 영험이 신통하다 하여 참배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팔상전은 명부전 북쪽에 위치하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 건물로 문수보살상을 봉안하고 있다.

명부전 너머에 있는 산신각에 올라 보면 이런 경내 모습이 가장 잘 보인다. 조선 초기의 건물인 대웅보전과 심검당은 개심사의 역사성을 말해 주지만 창건은 백제 말기인 654년에 혜감()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처음 이름은 개원사()였는데 1350년에 처능()이 중창하면서 개심사로 바꾸었다. 그 뒤 1475년에 다시 중창하였는데 대웅보전과 심검당은 그 무렵에 지은 건물이다. 1740년에 건물들을 또 고쳐지었으며 지금 모습은 1955년에 전체적으로 상한 곳은 고치고 단청도 새로 한 것이 남아 있다.

 

개심사는 볼 것이 많은 절집은 아니었다.  그러나 필자는 많은 것이 없어 더 찬찬히 볼 수 있는 절이였던 것 같다. 많은 것에 현혹당하지 않고 안양루에 올라 보이는 경치를 보았고 대웅보전에서 차분이 절도 올리고 오래된 심검당의 모습도 감상해 보고 명부전의 조금은 무섭게 느껴지던 철불지장보살좌상과 시왕상을 공들어 살펴보기도 했다. 그래서 좋았다.

많은 절집이 있어야 여러 신을 모셔 놓아야 좋은 절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다음의 발걸음은 개심사의 화려한 계절을 보러 오려한다. 하지만 지금의 필자의 마음으로는 화려한 계절의 개심사보다 푸르른 날의 개심사를 더 사랑하지 않을까 싶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