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의 손자이자 24대 왕인 조선 헌종이 23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후사 없이 갑작스레 사망하였고, 당시 왕실의 최고 어른이었던 순원왕후 김씨는 헌종의 7촌 재당숙이자 순조의 5촌 조카인 이원범을 왕대비의 자격으로 차기 국왕으로 지명했다. 자신을 왕으로 옹립하기 위한 행렬이 왔을 때, 철종은 자신의 할아버지나 큰형(이원경)이 역모에 몰려 죽은 전례가 있어서 이번엔 자신을 잡으러 온 줄 알고 산속으로 도망쳐버렸다. 철종의 형 이욱은 도망가다가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다.
이후 영의정 정원용의 설득으ㄹ로 결국 가마에 오른다. 그리고 철종이 왕이 된 후 강화도에 있던 그의 집은 왕의 잠저로서 '용흥궁(龍興宮)'이라는 이름으로 격상되었다. 본래는 초가집이었으나 철종이 즉위한 후 강화 유수가 오늘날의 형태와 같은 집을 지어 확장했다고 한다. 이 궁은 지금도 강화도에 남아 있는데 용흥궁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라고 한다.
철종 옹립 배경에 관한 루머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사실로 믿고 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봤듯이 철종의 즉위는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며 그 절차와 과정에서도 문제는 없었다. 다만, 저런 루머가 나돌 정도로 철종 시기 안동 김씨들의 세도가 극에 달했던 것은 사실이다. 철종 옹립 배경에 관한 루머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사실로 믿고 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봤듯이 철종의 즉위는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며 그 절차와 과정에서도 문제는 없었다. 다만, 저런 루머가 나돌 정도로 철종 시기 안동 김씨들의 세도가 극에 달했던 것은 사실이다.
강화도령 철종의 이야기는 많이 전해진다. 강화도에서 엉겁결에 왕이 되었다는 사실과 빈농으로서 산 전력 때문인지, 강화도에서 자란 까막눈 왕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출생지는 수도 한성이며, 유배당한 것은 14세가 되었을 때의 일(1844년). 1849년에 왕으로 즉위했기 때문에, 실제로 강화도에서 산 기간은 5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강화도령'이라 하기엔 억지스러운 면도 약간 있긴 하다.
또 조선왕조실록의 행장에 의하면 4세에 천자문을 이미 배웠으며 즉위 이후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이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근년에 통감 2권과 소학 1권, 2권을 읽었다"고 철종 본인이 직접 이야기한 바 있다. 천자문 이야기는 행장에 기록된 것이라 4살에 배웠다는 것은 띄워주기였다 해도 즉위 시점에서 이미 공부한 상태였던 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천자문, 통감, 소학은 모두 초급 교육에나 쓰이던 교재들이라 19살 기준으로는 부족한 면이 많고, 아버지의 사망이나 강화도로 유배되는 등의 사정으로 그 이상 나가지 못한 것은 물론 그나마 어렸을 때 배웠던 것도 많이 잊어버려 처음부터 다시 공부했다고 한다. 한 나라를 통치하는 군주로서는 확실히 부족한 면이 있다.
강화도 시절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기록이 있는데, 위에서 인용된 최양업 신부의 편지에 의하면, 민간에 알려진 바로는 친척 집에서 종 노릇도 해봤고 주인에게 채찍으로 맞았다고 한다. 다만 최양업 신부가 조선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므로 전적으로 신뢰하긴 곤란하다. 당시에 그런 소문이 돌았다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 소문의 신빙성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실제로 귀양 제도에 대해서 알면 말이 안 되는 것으로, 지방 관청에서 관리하고 식량을 대주고 동향을 보고하는 사람이 항상 있었다. 게다가 철종은 친척이 극히 귀해 후에 외가 친척을 사칭한 인간도 생겼을 정도인데 무슨 친척 집에서 일한단 말인가. 다만, 식량을 대주는 대신 일을 시키거나 혹은 제대로 식량을 대주지 않아서 일을 해야 하는 경우는 많았다.
로맨티시스트라는 얘기가 있는데, 강화도 시절 ‘양순’이란 이름의 하층 계급 여인과 결혼을 생각할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천한 신분의 양순은 궁에 들어간들 무수리 정도밖에 할 수 없는 처지라 바로 철종의 후궁이 되는 건 불가능했다. 심지어 이런 내용의 야사까지도 있다. 양순에 대한 상사병으로 괴로워하는 철종을 보다 못한 조선 왕실이, 몰래 사람을 보내 양순을 독살했다는 것을 나중에 이를 안 철종은 비탄에 잠겨 국사도 멀리한 채 황음의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독살인지 어떤지는 얘기마다 다르지만 일찍 죽었다는건 공통적으로 전해진다.
'조선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고달프고 가난해졌다 < 삼정의 문란 > (0) | 2020.10.29 |
---|---|
60년 세도정치 < 안동 김씨 > (0) | 2020.10.28 |
조선 25대 왕 철종 < 이변 > (0) | 2020.10.24 |
조선왕조실록 < 철종실록 > (0) | 2020.10.23 |
3차 천주교 박해 신부 김대건의 순교 < 병오박해 > (0) | 2020.10.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