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에는 유명한 사찰이 두 곳 있다. 하나는 전등사 그리고 하나는 보문사다. 보문사는 강화도에서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인데 최근에는 다리가 연결돼 한결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두 번째 사찰 이야기를 올리면서 어디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결정하게 된 보문사는 나에게는 많은 의미를 가지는 곳이기도 하다. 23년 전 신랑과 처음으로 드라이브를 갔던 곳이 보문사다. 나는 강화도를 처음 가는 것이기도 하고 보문사 또한 생소한 곳이었지만 신랑이 어릴 적 엄마의 손을 잡고 자주 왔던 곳이라고 한다. 그 당시의 강화도는 아주 깡촌이었으며 보문사로 가는 길은 배에 버스에 아주 고된 길이였다고 한다.
또한 보문사는 결혼을 하고 큰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 들면서 가출도 하고 방황도 하던 시기에 나와 신랑 그리고 작은 아이와 함께 보문사의 관음상에 올라 기도를 드렸던 곳이기도 하다.
보문사 눈썹바위에 있는 관음상은 산중턱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 세 번 올라 기도를 드리면 그 기도가 잘 이루어진다고 한다. 불교 신자도 아닌 내가 그 높은 산 계단을 세 번이나 올랐다는 건 올랐다는 자랑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절실했지 하게 관음상을 찾았는지를 말하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석모도는 그리 크지 않은 섬으로 대부분이 산으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고 해변가 근처로는 펜션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여느 관광지처럼 활성화가 되어 있는 섬은 아니다. 하지만 석모도의 산은 험하지 않도 걷기에 좋아 산을 찾는 사람이 많기도 하고 서해의 뻘이 좋아 가족단위 관광객이 찾기에 좋다. 보문사를 가는 길은 배를 타고 들어가는 길과 다리를 건너서 가는 길이 다르기는 하지만 두 곳 다 드라이브를 하기에는 좋은 길이기도 하다.
산과 밭길을 지나 보문사에 도착하고 보면 주차장을 나와 바로 여러 식당들이 줄비하여 있다. 식당 앞에서는 강화도에서 자란 쑥과 작은 새우로 튀김을 튀겨 팔기도 하는데 필자는 이곳에서 먹는 쑥 튀김을 매우 좋아한다.
보문사로 오르는 길은 주차장에서부터 식당가를 지나는 길 매표소까지 상당한 비탈길로 되어 있다. 보문사는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고 있는데 보문사의 극락보전이 있는 곳까지 가려면 아주 가파른 직선길을 올라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생각보다 길지 않은 거리이기에 잠시에 고행만 참는다면 아주 멋진 신의 세계를 보실 수 있을 것이다.
보문사에 오르는 시작은 일주문을 지나는 것이다. 이곳에는 다른절과 다르게 사천왕이 지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가파른 길을 올라 만나게 되는 보문사는 산 중턱에 자리잡아 큰 규모라 할 수는 없지만 쫙 펼쳐진 마당 하나에 오백나한과 극락보전, 보문사 석실, 와불전, 범종각, 삼성각, 보문사 향나무 그리고 초입에 자리 잡은 커다란 느티나무를 볼 수 있다. 한 자리에 서서 고개만 돌려 바라볼 수 있는 이 풍경과 뒤돌아 보면 보이는 서해의 바다의 풍경은 이 힘든 고행길을 다시 자처하게 만든다.
보문사는 신란 선덕여왕4년인 635년에 금강산에서 수행하던 희정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금강산의 보덕굴은 고구려 고승 보덕대사가 수행하던 관음기도처로 유명한데, 희정스님은 관음진신 친견을 위해 천일기도를 한 후 보현화신과 문수화신과 관음화신을 만났으나 정작 관음진신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 후 현신한 관음보살의 안내로 전생에 자신이 보덕대사였음을 전해 듣고 금강산 보덕굴에서 수행하였다. 이러한 희정대사가 금강산에서 이곳 보문사에 왔다는 기록에 의해 보문사는 희정대사가 창건한 영험 있는 관음성지로 전해진다고 한다.
<보문사의 '보문'이라는 명칭은 관세음보살의 자비 실천행을 의미하는 보문시현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보문사 유명한 이유는 극락보전 옆으로 오르는 419계단을 오르면 만나게 되는 미애관세음보살과 보문사 석실 안의 나한상이라 할 수 있다. 보문사 석실 안에 있는 나한상은 영험한 곳으로 전해지는데 이는 희정 대사가 보누사를 창건한 지 14년 만인 649년에 일어난 일로 알 수 있다.
' 보문사 산 아랫동네 어부들이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로 바다에 나갔다. 그물을 쳤다가 한참 만에 걷어 올렸는데 몹시 무거웠다. 고기가 걸렸으면 그물이 당겨지고 음직일 텐데 무겁기만 하고 도무지 요동이 없었다. 겨우 당겨보니 고기는 한마리도 없고 이상하게 생긴 돌덩이만 잔뜩 그물에 걸려 있었다. 어부들은 어리둥절해하며 돌덩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기이하게도 그 돌덩이들은 마치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기이한 석상이라 두려운 마음에 얼른 바다에 던져버리고 배를 저어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다시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는데 아까 던져버린 그 석상들이 그대로 다시 올라왔다. 어부들은 매우 놀라 황급히 그물을 바다에 털어버리고 고기잡이를 포기하 채 육지로 돌아와 버렸다. 그날 밤 어부들의 꿈에 한 노스님이 나타나 말하기를, "우리는 먼 서천국에서 왔느니라. 나와 더불어 스물두 성인이 돌배를 타고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가 타고 온 돌배를 돌려보내고 불속에 있다가 그대들의 그물을 따라 올라왔더니 그대들은 두 번씩이나 우리를 다시 물속에 넣어버리더구나. 그대들이 알지 못하여 그렇게 한 것이니 허물하지는 않겠노라. 우리가 이곳 동방 세계 서쪽 바닷가에 온 것은 이 나라에 아라한의 신통을 펴기 위한 것이고, 더욱 큰 뜻은 영산회상에서 베풀어진 무진법문과 중생의 복락을 성취하는 길을 저하는 것이다. 마을 뒤 낙가산에 가보면 우리가 오래도록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 있으니 우리를 그곳으로 안내 해주기 바란다. 의심하지 말고 내일 곧 시행하도록 하라. 이 인연과 공덕으로 그대들의 후손들까지 길이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하였다. 어부들은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배를 띄워 어제 석상을 던져버린 그 바다에 그물을 쳤다. 잠시 후 걷어 올린 그물에는 어제 그 석상 스물두 상이 그대로 딸려 올라왔다. 어부들은 정성스럽게 석상을 모시고 뭍으로 올라와 깨끗하게 물로 씻고 꿈에 본 석굴에 모셔놓았으며, 그것이 오늘에까지 전 해오 것이라 한다.'
극락보전 옆 계단을 오른다. 이 길을 오르는 일이 쉽지 않아 몇번을 쉬어 올라야 하지만 이 끝에서 이루어질 소원을 생각하며 두발 힘주어 오른다. 오르다 힘들면 잠시 쉬며 서해를 바라보고 다시 오르다 힘들 때쯤엔 용왕단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는 소원을 적어 넣을 수 있는 병을 파는데 병에 소원을 넣어 용왕단 위에 두면 100일 두었다가 스님이 기도를 하면 태워 주신다고 한다. 다시 길을 오르며 마애관세음보살을 만날 수 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작은 터를 만들어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만들어 놓았는데 영험하다 소문이 있는 만큼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기도를 드린다. 특히 입시 시즌에는 많은 학부모들이 올라와 기도를 드리므로 말소리조차 들리지를 않는다.
보문사는 크지 않은 터에 많은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곳과 그 자리마다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풍부한 곳이다. 그리고 극락보전 마당 넘어 보이는 서해의 바다는 잠시 세상을 시름을 덜어내고 가만히 바라보기에 좋다. 맑고 푸른 동해와 남해의 바다와는 또 다른 운치를 모실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보문사를 내려와 늘 가던 식당에 들러 막걸리 한사발을 한다. 기도를 드리고 왠 막걸린가 하겠지만 좀 지친 몸을 쉬어도 가야 하고 진심을 다해 기도를 드린 나의 텅 빈 체력도 보충도 해야겠다. 그리고 이곳에서 먹는 파전과 쑥 튀김, 새우튀김을 먹으며 그 맛에 감칠맛을 더 해주는 막걸리는 이곳에 오는 필자의 낙이기도 하다.
나는 여러분에게 힘들고 지치는 일이 생길 때 또는 막막한 삶에 기대 곳이 없을 때 이 곳을 추천드리고 싶다.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장담은 할 수 없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이 곳에서 위로를 받고 가실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가 늘 그러하듯 말할 수 없는 말들이 가슴에 담겨 넘칠 때 당신의 말들을 가만히 들어 줄 거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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