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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님의 여행 이야기

속리산 법주사 - 금강 미륵대불이 있는 곳

by 무님 2020.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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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법주사를 처음 만나게 되었던 건 겨울이었다. 가족들과 가벼운 겨울산행을 하기로 하고 간 곳이 속리산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일주문을 지나면 잘 다져놓은 평탄한 흙길을 만날 수 있다. 그 길을 따라 잠시 걷다보면 깊지 않은 산속에서 법주사를 만날 수 있다. 산행을 하는 길도 일주문을 지나 법주사의 옆길부터 시작하는 코스를 정할 수 있다.

법주사는 산행을 시작하면서 처음 만난 곳이였다. 그 전까지는 깊이 생각해 본적없던 조금은 생소한 절이였던 것 같다. 

그 겨울 눈이 소복히도 내려 아이들과 오르기엔 위험할 것 같아 목표지 삼았던 문장대도 오르지 못 하고 하산을 하는데 

아쉬움 마음에 법주사로 들어갔다.

 

속리산 법주사

 

깊지않은 산속 화려해 보이지 않던 절은 문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미륵대불은 어마어마한 크리를 자랑하며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넓은 자리 곳곳의 오래 된 사찰과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켰을 나무들과 그 위로 내려앉은 새하얀 눈은 잠시 발거움을 멈추게 했다.

 

법주사는 법주사의 개조()로 알려진 의신()이 일찍이 불법을 구하러 천축(: 인도)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경전()을 얻어 귀국하여 나귀에 싣고 속리산으로 들어가 553년(신라 진흥왕 14) 이 절을 창건하였는데, 법()이 안주할 수 있는 탈속()의 절이라 하여 법주사라는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법주사의 정신적 지주가 된 미륵신앙이나 법상종()의 유식사상()은, 혜공왕 때 이 절의 중흥에 크게 기여한 진표()와 그의 제자 영심()에 의하여 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성덕왕 때 중수()하였는데, 지금 남아 있는 석물()은 모두 이때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일주문을 지나 걷다보면 법주사로 들어가는 두번째문인 금강문을 만나게 된다. < 금강문 >은 금강역사 또는 인왕역사라 불리는 호법신장과 사자를 타고 앉은 문수보살상과 코끼리를 타고 앚은 보현보살상이 안치되어 있다. 금강문을 지나 사천왕문을 지나면 바로 팔상전이 눈 앞에 와 있다. 팔상전은 법주사에서 꼭 눈여겨 보아야 한다.

< 팔상전 >은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유일한 목탑으로 창건 당시에 의신대사가 초장했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졌던 것을 1602년인 인조2년에 사명대사와 백암대사에 의새 복원되었다고 전해진다. 1968년, 팔상전 해체중수공사시 중앙의 거대한 심주밑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어 건립경위를 밝히는 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팔상전의 전각 돼부에는 사방 네 벽에 폭씩의 석가여래의 일생을 8단계로 나누어 표현한 그림 모셔져 있다. 

팔상전을 보고 나서 어쩔 수 없이 < 금강미륵대불 >로 향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거대한 크기와 반짝임에 다른 곳을 둘러 볼 여유가 없게 된다. 금강미륵대불은 융화정토에 이르러 깨달음의 법을 서하시는 미래의 미륵부처님의 현존을 의미한다고 한다. 즐기 2534년 4월 11일, 6년간의 발원으로 조성공사 후 점안의식 과정에서 세 차례에 걸쳐 하늘이 환하게 열리며 5색 서광이 하늘을 수놓고, 흰 광선이 미륵불로부터 치솟았다고 자리에 참석했던 불제자들이 전한다고 한다. 금동미륵대불 기단부 안에는 미륵보살께서 머물고 계신 도솔천의 모습을 형상시킨 융화전이 있다고 한다.

미륵대불을 지나 필자는  대웅보전으로 바로 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 많은 유혹들이 눈앞에 있었지만 절에 왔으니 부처님께 인사나 올리고 집구경을 해야 할것 같아서 였다.

법주사의 < 대웅보전 >은 신라 진흥왕 14년에 의신조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내부에는 국내 소조불좌상으로 가장 크다고 알려진 3신불이 안치되어 있다. 법당의 가운데 부처님은 마음을 뜻하고 왼쪽 부처님은 덕을 그리고 오른쪽 부처님은 육신을 뜻한다고 한다. 부처님은 원래 한 분이지만 우리 중생들이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세 몸으로 모셔 놓은 거이라고 한다.  대웅보전  오른쪽 옆으로는 고승대덕을 모신 진영각, 지장보살과 명부세계의 10대대왕을 동시에 모신 명부전, 산신.칠성. 독성 세분을 모신 삼선각이 있다.

대웅보전을 나오면 바로 앞에 석등이 하나 있는데 이석등은 < 사천왕석등 >으로 신라 성덕왕때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딱 보아도 오래된 석등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사천왕석등을 정면으로 내려다 보이는 곳에 또 하나의 석등이 있는데 이 석등의 이름은 < 쌍사자석등 >이다. 이 석등도 신라 성덕왕 때 조성된거이라고 하는데 두 마리의 사자가 마주보며 앞발로 석등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였다.

법주사의 또 다른 보물이 있는데 이는 법주사 내의 가장자리에 자리하고 있어 찾아서 보지 않으면 놓칠 수 있다. 신라 성덕왕 때 조성 된 입상으로 < 희견보살상 >이다. 향로를 머리에 이고 있으며, 향로 용기의 면에는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고, 보살상은 앞가슴 부분의 법의가 벌어져 있는 모습이다. 힘이 들어간 듯한 근육이 조각 자체를 강하게 느끼게 하는 모습으로 부처님께 향불을 공양하는 희견보살의 모습을 조성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금강미륵대불의 옆으로 지나다 보면 커다란 돌절구통 같은 것이 보이는데 이를 < 석연지 >라고 한다. 이 또한 신라 성덕왕 때 조성되었으며 극락정토의 연지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해 겨울 처음 만났던 법주사의 모습은 하얀 눈위 덮인 멋진 풍경화를 보는 듯 했다. 그때 보았던 법주사는 금강미륵대불과 대웅보전이 전부였던 것 같다. 너무 지쳤고, 너무 추웠고 그리고 커다란 금강미륵대불에게 온통 시선을 빼긴 탓에 다른 아름다움을 볼 수가 없었다.

다음 해의 가을 보은에서 열리는 대추축제에 갔다가 들리게 된 법주사에서 다른 보물들을 스치 듯 보게 되었고, 그 모습들이 또 보고 싶어 자주 법주사로 향했던 것 같다. 몇 번을 다니면서 하나 하나 읽어 보고 공부도 하면서 법주사의 매력을 알게된 것 같다. 필자는 지금도 법주사는 자주 가는 편이다. 아무 목적없이 오롯이 법주사를 보려 가는 경우도 있다.

법주사의 매력은 힘들이지 않아도 산책하듯 둘러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눈이 소복이 내린 겨울날의 법주사를 여러분께도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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