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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친해지기

3. 그 남자는, 언제나 등을 보았다.

by 무님 2025.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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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를 본 건, 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햇살이 교정 안을 흘러내리고,

강의실에선 졸음보다 설렘이 많던 시절,

 

그 남자는 늘 앞자리에 앉았고,

묵묵히 필기를 하며

간혹 옆에 앉은 여자에게 미소를 건넸다.

 

그 미소.

그걸 보는 게 가장 고통스러웠다.

 

왜냐면

그 여자-그가 웃어주던 여자-

자기의 오빠가 좋아하던 사람이었고,

자기는 그 오빠를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두 개가

하필이면 나란히 앉아

웃고, 말하고, 마주 보았다.

 

그는 말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좋아해요라는 말을 꺼낸 적 없었다.

대신 그 말은

복도 끝에서부터 조용히 따라 걸으며 흘ㄹs 숨결에,

잔에 따라준 커피의 온도에,

졸업식 날 찍어준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잔에

묻혀 있었다.

 

그 남자의 사랑은, 늘 등을 보고 있는 사랑이었다.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자기 마음을 몰랐고,

알아도 안 될 것 같아서 애써 눈을 감았다.

 

 

 

어느 여름날,

그는 오빠가 말하는 걸 들었다.

 

그 애, 고백할까 말까 고민이야.”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소리.

그건 물에 빠진 돌처럼 깊고 조용했다.

 

그날 밤, 그는

오래전부터 적어 두었던 메시지를 지웠다.

 

, 나는요....처음부터 형이었어요.”

 

그렇게 사랑은 말하지 못한 채 끝났다.

하지만 끝났다고 생각한 그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누군가의 등을 기억한다.

햇살을 받으며 웃는 그 사람의 모습.

절대 마주 보지 못했지만

영원히 잊히지 않는 한 장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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