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은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더불어 여말 3은 중의 하나다. 이성계와는 친숙한 사이였다. 어려서부터 총기가 뛰어났고, 14세에 성균관 시험에 합격한 준재였다. 그는 이성계가 나라를 세운 후 여러 차례 출사를 종용받았으나. 끝내 응하지 않았다. 망국에 대한 시에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기 전 전공을 찬양한 시가 여러 편 남아 있다.
이성계가 운봉 싸움에서 왜구의 적장 아기발도를 죽이고 개선했을 때, 권근. 김구영. 이색 등 당대의 문관들이 시를 지어 하례했다. 이색의 시는 찬사의 극치였다.
적을 소탕하는 썩은 나무 꺾기 같았네
삼한의 기쁜 기색, 여러분에게 달렸소
백일 같은 그 충성, 하늘에 안개 걷히고
청구에 떨치는 위엄, 바다가 잔잔하오
빛난 자리에 무공을 칭송하는 오래요
능연각 높은 집에 영웅의 화상 그리니
병든 이내 몸, 교외까지 나가 맞지 못하고
앉아서 새 시를 읊어 놓은 공 송축하오
훗날 이성계와 이색의 뜻을 달리하여 갈라서게 되었으나, 이성계는 이색을 훌륭한 학자로 존경했다. 나라가 기울 자 야은 길재가 이색에게 거취 문제를 상의해왔다. 길재는 이색의 제자였다
"스승님, 이 조정에 더 머물러 계셔야 하오리까?"
이색은 잠시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가 말문을 열었다.
"마땅히 각자가 뜻을 행할 것이야. 나 같은 무리는 대신이기 때문에 나라와 더불어 기쁜 일 슬픈 일을 함께해야 하니 물러갈 수 없다. 허나 그대는 물러갈 만하다."
"알겠나이다"
길재는 그 길로 벼슬을 버리고 금오산으로 숨어버렸다. 그때 이색은 길재에게 이런 시 한 구절을 주었다.
나는 기러기 한 마리 하늘 높이 떠 있다
이색의 기개와 심정이 그대로 드러난 촌철살인의 명구였다. 이색이 '이초의 변'에 연루되어 곤욕을 치렀다. 이초의 변이란 윤이와 이초란 자가 명나라에 가서 황제에게 무고한 사건이었다.
"폐하, 고려의 이시중(이성계)이 요(공양왕)을 세워 임금을 삼았사오나. 요는 왕실의 종친이 아니옵고 인척이옵나이다. 요가 이성계와 더불어 군사를 일으켜 장차 명나라를 침범하려 하자, 재상 이색 등이 옳지 않다고 하였사옵니다. 이예 이성계는 이색. 조민수.이숭인. 권근 등 10인을 살해하고 우현보. 정지.김종연 등 9인을 귀양 보냈나이다. 귀양살이하는 재상들이 몰래 저희들을 황실에 보내어 이렇게 아뢰는 바이옵나이다. 명나라 군사를 보내시어 속히 토벌하기를 바라나이다."
때마침 왕방과 조반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 있었다. 명나라 예부에서 왕과 조를 불러 이 사실을 알리고, 귀국하는 즉시 철저히 조사하여 보고하라고 일렀다.
조반이 명나라에 윤이와 대질했다.
"우리나라가 정성으로 사대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이러한 무고를 하였는가?"
"대감은 명나라에 들어온 지 오래되어 일을 모르오. 어찌 무고라 하오?"
"네 이놈! 네 지위가 파평군에 이르렀거늘 정녕 나를 몰라 외면하는 게냐!"
윤이는 얼굴을 숙이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명나라 예부에서 보고 윤이의 거짓임을 알아차렸다.
"바른대로 말하라!"
윤이는 대답이 없었다. 예부의 관리가 말했다.
"황제 폐하께오서 밝으시어 이들이 무고임을 알고 계시오."
"무슨 연유로 무고했느냐?"
"무고가 아니오. 곧 보고가 올 것이오."
"듣기 싫다."
윤이와 이조는 무고가 밝혀져 멀리 표수현으로 귀양 보내졌다. 그러나 고려 조정은 벌컥 뒤집혔다. 이색 등 무고 관련자들이 체포되어 청주옥에 갇혔다. 국문이 혹독하여 사건이 어디로 흘러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이성계로서는 좋은 기회였다. 이참에 반대파를 모조리 소탕하고 싶었다.
30여 명이 청주옥에 갇혀 있었다. 죄를 만들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이색의 운명도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새벽부터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한낮이 되자 산이 무너지고 물이 넘쳐, 성문이 무너지고 성 안이 물바다로 변했다. 가옥이 물에 잠겨 물속에 박힌 바위처럼 보였다. 죄를 심문하는 문사관이 물에 떠내려가다가 수백 년 묵은 은행나무를 붙잡고 겨우 목숨을 구했다.
청주의 홍수 사태는 즉시 조정에 보고되었다. 공양왕과 이성계는 하늘이 두려워 죄를 만들지 않기로 했다. 청중의 선비들은 이색이 죄를 면한 것을 보고, 고려에 대한 충성심에 하늘이 감동한 것이라고 고마워했다.
청주옥에서 풀려난 이색이 이성계를 찾아갔다. 이성계는 그를 반겨 윗자리에 앉힌 다음, 술을 주며 이색에게 마시라고 간곡히 청했다. 이색은 사양하지 않고 그대로 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끈끈한 정이 있었다. 그러나 가는 길이 서로 달랐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한 후 이색은 여주의 자기 집에 머물렀다. 그의 두 아들 종학과 종덕이 소위 역성혁명군에게 매 맞아 죽은 후였다. 두 아들을 죽이는 데 공을 세운 정총과 정도전은 다름 아니 이색의 제자였다.
하루는 제자가 찾아왔다. 이색은 그를 데리고 깊은 산골짜기로 데리고 들어갔다. 제자는 영문을 모른 채 따라갔다. 인적 없는 깊은 산골짜기로 들어간 이색이 제자 앞에서 목을 놓아 통곡했다. 제자는 스승의 참담한 심정을 알고 종일 따라 울었다. 해거름 무렵, 이색이 제자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오늘에야 내 가슴이 시원하구나."
"선생님, 미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나이다."
"내 마음을 헤아린들 어쩌겠느냐. 망국의 신하요, 자식을 잃은 애빈이거늘......"
이색은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자 이런 시를 읊어 앞날을 내다보았다. 자식의 죽음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송헌(이성계의호)은 나라를 세우고 나는 유리되니
끔 속엔들 어찌 이럴 줄 알았으랴
이정(정충과 정도전)이 국가 대사에 참여했다 하니
우리 가족은 어느 때 다시 모일꼬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뒤 이색을 불렀다. 이색은 이성계를 만나자 읍만 하고 절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성계는 용상에서 내려와 이색을 반갑게 맞았다. 잠시 후 기강관이 차례로 즐을 서서 들어왔다. 이성계는 재빨리 용상에 다시 올랐다.
이색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나는 앉을자리가 없으니 이만 가겠소"
이성계가 만류했다.
"원컨대 가르침을 받들겠소, 덕이 없고 우매하다고 나를 버리지 마오."
"망국의 대부는 보존하기를 도모하지 않으오. 다만 나의 다 죽게 된 해골을 가져다가 고신에 묻을 뿐이오"
이색은 주저 없이 나가버렸다. 그날 밤, 이색은 한 수의 시로 시름을 달래었다.
연복사의 종소리는 아직 울리지 않네
이불을 안고 끓어앉아 이 추운 밤을 지내네
일신은 쇄해 병들었고 건곤이 늙었네
삼라만상이 일월에 밝았도다
저구가 조씨 후사를 보전할 뜻을 어찌 옮기랴
화봉인이 용임금을 축하하고 속절없이 정을 품고 있더라
유유한 고금의 무궁한 일이
수장을 일받아 부평 짓게 하누나
여기에서 '저구'는 중국 춘추 때 진나라의 귀족인 조시가 반대당에게 몰려 멸망을 당할 무렵, 조씨의 부하인 공손 저구가 조씨의 유복자를 몰래 길러서 조씨의 후사를 이었다는 고사에서 인용한 글이다.
또 화봉인의 화는 지명으로, 화에 봉해진 사람을 말하는데, 요임금 때 화봉인이 요에게 수. 부. 다남을 축원했다는 고사이다. 이 시로써 이색의 솔직한 심정을 알 수 있다. 이색은 우왕이 폐위되어 강화에 있을 때, 몰래 찾아가 문안을 드릴만큼 고려조의 충신이었다. 그는 큰 학자였으나, 인물은 보잘것없었다. 그가 명나라 사신으로 갔을 때 명 태조가 불러 접견했다. 이색이 어찌나 못생겼든지 명 태조가 희롱했다.
"이 노인의 얼굴은 그림으로 그릴 만하겠구나."
그래도 이색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말년에 그는 이성계의 특별한 호의로 한산. 여주. 오대산을 자주 찾았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석연치 않았다.
음력 5월에 여주강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이성계가 보고를 받고, 당시의 관찰사에게 책임을 물어 죽여버렸다. 죽을 무렵 이색의 심정은 이러했다.
인정이 어찌 물의 무정함과 같으랴
근래에는 닥치는 일마다 점점 불평이네
우연히 동쪽 울타리를 향함에 부끄러움이 얼굴에 가득 차니
몸은 진국화요 사람은 거짓 도연명일세
서예 유성룡은 목은의 인물평을 했다.
"포은은 원찬과 같고, 목은은 양표와 같다. 고려 말의 인물 가운데 다른 이는 논할 것이 없다."
원찬은 중국 남북조시대에 죽음으로써 송나라에 절의를 지킨 충신이다. 양표는 중구 한말의 대신으로 나라를 위해 비록 죽지는 못했으나 조조에게 끝내 굽히지 않았다. 그의 아들 양수가 조조에게 죽임을 당한 고사에, 목은의 아들이 이성계의 오른팔인 정도전에게 죽임을 당해 이에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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