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 것인가?'
고려 말 젊고 패기에 찬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겠다는 야망을 가슴에 품고 그 뜻을 이루려 조정의 중신들을 비롯한 노장군 최영과 은근히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국운은 서서히 기울어져 가고 민심은 흉흉해져 백성들의 고초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도 소위 나라의 녹을 먹는 벼슬아치라고 하는 이들은 제 밥그릇 챙기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운곡 원천석은 이런 세태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이 안타까워 가슴을 치며 탄식했다.
'어허,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으리.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가 백성들의 안위를 바로 헤아리지 못한다면 차라리 백성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 편이 훨씬 더 나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원천석은 미련 없이 벼슬을 버리고 치악산 자락으로 내려와 농사를 지으며 학문에 몰두했다. 원천석은 학문이 워낙 뛰어났더지라 내로라하는 집안의 자제들이 그에게 학문을 배우기 위해 찾아왔는데 그중에는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도 있었다. 원천석은 이방원을 제자로 받아들이기가 그리 썩 내키지는 않았으나 이방원의 사람 됨됨이가 반듯하고 또 학문에 조예가 깊음을 알고 허락했다.
'아비는 비록 권력에 빠져 있다 하나 방원이는 그렇지 않을 게야.' 원천석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방원을 열심히 가르쳤다. 그러나 훗날 원천석의 기대와는 달리 방원은 아버지 이성계가 고려의 충신들을 제거하고 조선을 개국할 때 공로가 제일 크고 높았다. 이 소식을 접한 원천석은 씁쓰레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무섭게 변해 갔다. 이방원은 왕자의 난을 두 번이나 일으키고 왕위에 올랐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원천석은 이방원을 제자로 받아들였던 자신을 책망하며 더욱더 세상을 등지고 살았다.
한편 왕위에 오른 태종 이방원은 그 옛날 스승이었던 원천석을 잊지 않고 있었다. 스승의 고매한 인품과 높은 학문의 경지를 잘 알고 있는 그는 이제라도 스승을 모시고 정사를 의논하고 싶었다. 태종은 스승이 칩거하고 있는 치악산으로 신하를 보냈다. "운곡 선생, 전하께서 지금 당장 선생을 모셔 오라는 명을 내렸사옵니다. 하오니 어서 채비를 하시어 어명을 받드옵소서" 한양에서 내려온 신하들은 원척석에게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그러나 원척석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소. 하지만 고려 왕조를 모시던 몸이 어찌 새 나라의 임금을 모실 수 있겠소? 돌아가서는 나는 갈 수 없노라 아뢰시오" 신하들은 어명을 받들기를 두 번 세 번 권하였으나 원천석은 이를 거절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신하들은 하는 수 없이 돌아가 태종에게 원천석의 말을 그대로 아뢸 수밖에 없었다.
태종은 스승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대로 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인물이었다.
태종은 계속해서 신하들을 보냈으나 매번 거절당하고 말았다. "스승님께서는 어찌하여 이다지도 제자의 마음을 몰라주신단 말인가! " 조바심이 난 태종은 자신이 직접 스승을 모시러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미복 차림으로 사령 몇 명을 데리고 길을 나섰다. 하지만 태종이 치악산에 도착했을 때는 원천석이 그 소식을 듣고 먼저 자리를 피한 뒤였다. 텅 빈 집안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태종은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펴보았다. 스승의 흔적을 찾아 이리저리 두리버거리던 태종의 눈에 시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노파가 보였다.
태종은 노파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 여기 사시는 운곡 선생이 어디로 가셨는지 아는가?"
"운곡 선생을 찾으시옵니까?"
"그렇소"
"선생 말씀이 오늘 태백산으로 나들이 가신다. 하더이다."
노하는 원천석이 미리 알려준 대로 태종에게 거짓을 고했다. 그제서야 스승이 자신을 피해 어디론가 숨은 것을 눈치챈 태종은 탄식하며 말했다.
"그렇게도 이 미련한 제자를 받아줄 수 없단 말씀이신가?"
태종은 그래도 그냥 돌아가기가 아쉬워 근처 바위에 걸터 앉아 스승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원천석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 산자락에 어스름이 내릴 무렵에서야 태종은 스승의 뜻을 깊이 새기며 산속 어디쯤 계실 스승을 향해 큰절을 올리고 한양으로 돌아왔다.
태종이 앉아서 원척석을 기다리던 바위를 일러 사람들은 주필대라 하였고 후에 이름을 바꿔 태종대라 했다. 훗날 상왕의 자리로 물러난 태종은 다시 한번 스승인 운곡을 청했다. 더 이상 거절하기 어려웠던 원천석은 태종을 알현하기 위해 입궐했는데 의관이 아닌 하얀 상복 차림이었다. 그것은 태종이 형제들과 벌인 살육에 대한 말 없는 항의였다.
더 이상 원천석을 설득할 수 없다고 여긴 태종은 그 자식에게 벼슬을 주어 스승에 대한 감사의 예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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