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가족관계는 사실 말할만한 내용이 없다. 그에게는 부인이 1명 있었으나 슬하에 자녀는 없었다.
단종은 1453년 13세 때 송현수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였다. 단종은 송현수의 딸 정순왕후 사이에는 소생이 없었다. 단종은 1457년 6월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었다가 그 달 24일 목을 에어 죽었다. 그는 1681년 숙종7년 노산대군으로 추봉되고, 1698년에 단종으로 복위되었다.
정순왕수 송씨는 그녀는 세조의 증손이자 단종의 종손뻘인 중종(中宗) 16년인 1521년 7월 7일(음력 6월 4일), 82세의 나이로 한많은 생을 마감했다. 중종의 재위 초기, 사림파인 조광조 등에 의해 복위가 주장됐으나 중종은 이를 거부했다. 그 뒤 현종 때부터 송시열과 김수항 등은 단종과 그녀의 복위를 거듭 건의했다. 그들은 세조의 단종 살해는 측근들의 오도에 휘둘린 것이며 본심은 단종 살해에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 건의로 1698년 12월 7일(숙종 24년 음력 11월 6일), 단종과 그녀는 복위되어 시호를 받고 종묘 영녕전에 신위가 모셔졌다.
그녀의 별세 때에는 대군부인의 격에 따라 치러진 장례로 경기도 양주군(楊州) 군장리(群場里, 현재의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리)에 매장됐다. 단종과 그녀의 복위로 종묘에 배향되면서 능호를 사릉(思陵)이라 했는데 이는 억울하게 살해된 남편을 사모(思慕)한다는 뜻에서 지은 것이다.
그녀의 묘소 뒤편에 심은 나무들이 단종의 능인 장릉쪽을 향해 고개숙여 자란다는 전설이 한 때 전해졌다. 무속의 신의 한 명으로 숭배됐는데, 무속에서는 그녀를 송씨부인 신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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