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은 1455년 6월 11일 3년 1개월의 재위기간을 뒤로하고 숙부인 수양에게 양위한뒤 상왕에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이또한 쉬운 길은 아니였다. 아직 십대였던 단종에게는 두렵고 힘든길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수양대군의 추종 세력인 정인지(鄭麟趾)·신숙주(申叔舟)·한명회(韓明澮)·권람(權擥)·홍윤성(洪允成) 등은 1455년 윤6월 수양대군을 왕으로 추대하고 단종을 왕위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그러자 과거에 세종·문종에게 특별한 은총을 받았던 집현전학사 출신인 성삼문·박팽년·하위지(河緯地)·이개(李塏)·유성원(柳誠源) 등 문관은 무관인 유응부(兪應孚)·성승(成勝)·박쟁(朴崝) 등과 모의, 상왕(上王: 단종)을 복위시킬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 집현전학사 출신 문관이 주동이 되어 단종 복위거사를 모의한 것은 1455년(세조 1) 10월경이었다. 즉, 책명사(冊命使)인 명나라 사신이 조선에 오겠다고 통고한 이후부터 진행되어, 1456년 6월 초하루 창덕궁의 명사신 초대연의 자리에서 실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날 세조 제거의 행동책을 맡은 별운검(別雲劍: 임금의 신변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은 무신)이 갑자기 제외되어 거사 계획은 실행 일보 전에 일단 실패하게 되었다. 이에 거사 주동자들은 거사 계획을 다음 기회로 미루고 있었는데, 동모자의 한 사람인 김질(金礩)과 그의 장인 정창손(鄭昌孫)의 고변으로 사육신과 그 밖의 연루자가 모두 처참(處斬)되고 단종 복위거사는 실패로 돌아갔다.
단종은 이 사건이 있은 뒤 더욱 불안을 느끼고 있었는데, 조신 가운데 상왕도 이 사건에 관련되었으므로 서울에서 내쫓자는 주청이 있었다. 이에 1457년 6월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에 유배되었다. 영월에서 유폐 생활을 하는 동안, 매일같이 관풍매죽루(觀風梅竹樓)에 올라 시를 지어 울적한 회포를 달래기도 하였다.
이 해 9월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노산군의 숙부 금성대군(錦城大君)이 다시 복위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었다. 이에 다시 노산군에서 서인으로 강봉되었다가 10월 마침내 죽음을 당하였다.
1681년(숙종 7)에 노산대군으로 추봉되고, 1698년 전 현감 신규(申奎)의 상소에 의해 복위가 결정되었다. 시호를 공의온문순정안장경순돈효대왕(恭懿溫文純定安莊景順敦孝大王)으로, 묘호를 단종으로 추증하고, 능호(陵號)를 장릉(莊陵)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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