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5대왕 문종 이향은 1414년에 태아나 1421년 7세의 나이에 세자로 책봉되어, 무려 30년 동안 왕세자의 자리에 머물렀다. 아버지 세종와 함께 찬란한 업적에 참여하였으며 세종이 승하하고 왕의 자리에 올라서 2년2개월의 짧은 왕의 삶을 살았지만 결코 소홀함이 없는 삶을 살았던 안타까운 왕이기도 하다
문종은 3명의 아내를 두었다. 첫번째 아내 휘빈 김씨는 질투로 인해 온갖 비방을 쓰다 발각되어 쫓겨났으며, 두번째 순빈 봉씨는 궁녀와의 동성애로 인해 쫓겼났다. 세번째로 후궁이였더 권씨가 세자빈에 오르는데 훗날 조선의 6대 왕인 단조오가 그의 누나인 경혜공주를 낳은 현덕왕후 권씨이다. 현덕왕후는 문종이 세잘였던 1441년 아들 단종을 낳고 3일 만에 숨을 거두게 되는데 그녀의 나이가 24세였다. 권씨의 죽음이후에는 문종은 정실부인을 두지 않았으며 왕위에 즉위하여 짧은 재위기간에도 아내를 두지 않았다.
문종은 짧은 재위기간 병약한 몸으로도 많은 일을 해내였다. 재위기간 2년 2개월을 생각하면 과히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다. 1450년 3월에 즉위하여 바로 명나라에 책봉 주청사를 보냈고, 그해 음력 5월 명나라로부터 책봉 고명을 받아 정식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문종은 재위 기간 동안 언론의 활성화와 역사책 편찬, 병법의 정비 등의 업적을 남겼으며, 유연함과 강함을 병행하는 정치를 실시하려고 했다.
문종은 6품 이상까지 윤대를 허락하는 등 하급 관리들의 말도 빠짐없이 경청하는 등 열린 정책을 펴는 한편, 《동국병감》,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을 편찬하였다. 문종은 역사와 병법을 정리함으로써 사회 기반을 정착시키고 제도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문종은 왕세자 시절에 진법을 편찬했을 만큼 국방에도 관심이 많아서 병력 증대를 통해 병법의 정비와 국방의 안정을 꾀하려 하였다. 또 태종 때 만들었던 화차를 새롭게 개발하여 혹시나 있을 전쟁과 국방에 대비하고자 하였다.
문종은 여러 모로 아버지 세종을 많이 닮은 왕이였다. 아버지를 닯아 유학과 학문 연구에만 몰두하였으며 몸이 병약한 것까지 빼닮았다는 것이다. 문종은 세자 시절부터 몸에 곳곳에 종기가 나서 고생을 하였으며 약햑 몸으로 연구에만 몰두하다가 몸이 더 쇠약해져 병을 얻었다. 아버지 세종과 어머니의 삼년상을 연속적으로 치르는 바람에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세종의 고명대신이었던 김종서가 잠시 섭정을 맡았다.
문종은 병상에 누어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걱정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많은 형제들이 있었으며 그 중 바로 아래 동생인 수양대군이 가장 큰 고민이었던 것이다. 수양대군은 할아버지 태종을 닮아 공부도 잘하였으며 용맹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문무가 겸비된 수양대군을 보면 아직 어린 아들 단종이 걱정이 아닐수 없었다. 또한 그 밑에 동생인 안평대군 또한 예술적 기질이 많은 사람이어서 많이 따르는 인물이었는데 안평대군 또한 수양대군 못지않은 야심가 이기도 했다. 문종의 형제들이 세력을 키울 수있었던 건 사버지 세종이 다른 왕자들에게도 정치적 입지를 다질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세종은 그의 형제들과 우애가 좋았으며 자식에게도 형제간의 우애를 유독 강조하기도 하였기 때문인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세자 이외의 다른 자녀들에게도 똑같이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되었고 문종이 병을 얻자 문제가 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문종은 병상에서도 세자의 걱정뿐이였다고 한다. 그래서 승하전에 신하들을 불러놓고 유언을 나긴다. 왕의 유언을 받드는 신하를 '고명대신'이라 하는대황제나 국왕의 임종 시 그들의 유언을 받드는 대신으로 나라의 훗날을 부탁받았던 것이다. 문종은 고명대신으로 영의정 황보인과 우의정 김종서 불러
" 나는 더 이상 가망이 없는 것 같소. 다만 내 아들이 이제 겨우 12세니 왕 노릇을 잘 할수 있을지 걱정이 많소. 홀로 남겨진 단종을 그대들이 잘 지켜주오" 라는 유언을 남기고 2년 2개월의 짧지만 찬란한 시간을 끝내었다.
문종이 즉위한 지 2년 3개월 만인 1452년 음력 5월에 39살의 나이로 승하하자,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내에 위치한 현릉(顯陵)에 능을 조성하였다. 현덕왕후 권씨는 원래 소릉에 안장되었다가 계유정난 이후 1457년 추폐되어 재궁이 바닷가에 버려졌었고, 1512년 (중종 7년) 에 현릉에 같이 묻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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