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6대 왕 단종은 12세의 어린나이에 왕위에 오른다. 그의 즉위는 혈헌단신으로 아무도 곁을 지켜주는 이 없이 오르게 된다. 문종이 2년 2개월의 짧은 재위기간을 마치고 승하게 되는데 이때 어린 세자를 걱정하며 고명대신에게 유언을 남기게 된다.
문종은 자신이 병약하고 세자가 나이 어린 것을 염려하여 황보 인(皇甫仁) ·김종서(金宗瑞) 등에게 세자가 즉위하여 왕이 되었을 때의 보필을 부탁하였다. 한편 집현전(集賢殿)의 학사인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신숙주(申叔舟) 등에게도 좌우협찬(左右協贊)을 부탁하는 유언을 내렸다. 단종에게 형제는 없었지만 아버지의 형제들인 숙부들이 있었다. 하지만 숙부였던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은 대단한 야심가 였다. 그런 그들로부터 문종의 유언을 받은 김종서와 황보인등은 단종을 지킨다.
어린 단종은 정치를 잘 몰랐다. 나라를 운영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적제 적소에 인재을 배치해야 하는데 어린 단종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였던 것이다. 조선은 관료제 사회였다. 과거시험을 통해 관리가 될 수 있으며 오직 실력으로 자리에 올라야 하지만 인사담당이 특정 세력의 영향을 받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단종이 즉위하고 이런 부정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단종은 관리를 임용할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그때 가장 큰 역활을 한 사람이 바로 고명대신인 김종서였다. 김종서가 추천하는 사람의 명단 위에 노란색 표시점을 찍어 왕이 그 사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데
이것이 '황표정사' 였다. 이것은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김종서 측에서 시행한 변칙적인 인사행정이었던 것이다.
1453년 <계유정난>이 일어난다. 계유정난이란 계유년에 일어난 어지러운 난을 바로잡았다는 뜻이다. 이는 1453년 10월 10일 김종서의 집에 복면을 쓴 자들이 쳐들어와 쇠몽둥인 철퇴로 김종서를 죽이고, 황보인등을 제거해버린 사건이였다
명분은 김종서가 안평대군을 추대하려는 역모를 꾀했다는 것이지만 실사은 수양대군이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한 난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조선의 핵심 관직인 의정부영사, 이조판서, 병조판서, 애외병마도통사를 겸직한다.
1453년 그를 보필하던 황보 인 ·김종서 등이 숙부인 수양대군(首陽大君)에 의해 제거당하자 수양대군이 군국(軍國)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였으며, 단종은 단지 이름뿐인 왕이 되었다.
계유정난 당시 안평대군이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었고 이후 단종을 지지하던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도 유배되자 단종은 결국 왕위를 숙부 수양대군에게 양위하게 된다. 1455년 6월 11일 재위기간 3년 1개월만의 일이였다.
1455년 단종을 보필하는 중신(重臣)을 제거하는 데 앞장섰던 한명회(韓明澮) ·권람(權擥) 등이 강요하여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이 되었다.
단종은 세종이 아끼던 손자이자 세종이 인정한 정통 왕위 계승자였지만 야심가인 숙부 수양대군에 의해 비운을 맞이하는 왕이 되었던 것이다. 단종은 할아버지 세종이 계시던 자미당을 바라보며 한탕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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