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9대 왕 성종은 모범적인 왕이였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고도 학문에 매진하였으며 할머니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난 후에도 학자들과 경연을 매일 하였다고 한다. 그런 성종이 이루어낸 업적은 조선 정치제도의 기틀이 된다.\
성종의 할아버지 세조는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세조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세종이 만든 집현전을 없앤다. 집현전 학자들의 경연은 왕권을 강화하고 픈 세조에겐 불편한 일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성종은 왕이 신하들과 학문을 토론하는 경연을 부활시킨다. 그런데 어린 왕 성종이 열심히 공부를 하였더라도 조선 최고의 석학들과 토론하고 학문을 논하는 건 조금 부담스러운 일이였다. 그래서 학문을 연구하는 기관인 홍무관을 설치한다.
성종은 경연제도를 부활시키고 홍문관을 설치하므로써 학문을 갈고 닦었던 것이다.
할아버지 세조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없애던 유향소를 성종은 다시 부활시킨다. 유향소는 지방 사족들의 모임기구인데, 수령을 보좌하고 감시하는 기관이였다. 하지만 중앙에서 지방으로 파견 된 수령이 고을의 수장으로서 행정업무를 담당할 때 유향소의 입김이 세지면서 중앙집권을 침범했다. 이것은 왕권 강화를 꿈꾸던 세조에게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성종 시절 신진세력들은 중앙으로 진출한 세력가들이 유향소를 통해 지방에서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다고 본것이다. 이러한 의견이 받아들여져서 유향소가 다시 부활하게 된다.
성종은 신진력인 사림을 등용한다. 그 중 김종직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 김굉필. 정여창. 김일손을 제자로 둔 스승이었다. 김종직을 비롯한 사림 세력들은 유향소를 통해 지방에서의 주도권을 장악하고자 했다.
서종은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해 지방에서 새로운 세력을 기용한다. 그들이 신진세력, 사림파인것이다. 사림파는 조선건국 당시의 상황을 되짚어 살펴봐야 이해를 할 수 있다. 조선건국 당시 새로운 신진세력으로 신진사대부가 있었다. 이때 신진사대부는 아예 나라를 새로 만드느냐, 점진적으로 개혁해나가느냐로 파가 갈리게 된다. 완전히 뒤집어엎고 나라를 마들자는 사람들은 급진파 사대부이고 정도전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또한 고려를 점진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하는 이들이 온건파 사대부들이었는데 이들의 대표적인 인물이 정몽주였던 것이다. 하지만 태조의 아들이자 후에 태종이 되는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인다. 이때 온건퍼 사대부 중에서 고얗으로 대거 내려가게 된다.
조선이 건국되고 정도전 혁명파 사대부들이 개국공신이 되고 훈장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라 하여 훈구파가 된다. 후에 세조를 왕으로 만든 사람들도 훈구파 세력이였으며 그로 인해 집권세력으로 훈구파는 크게 성장하였다
이에 지방으로 내려간 온건파 사대부들은 제자를 양성하며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는데 성종은 이들을 중앙으로 대거 등용해 관리들의 비리를 감찰하는 대간의 역할을 맡긴 것이다. 성종은 이들로 훈구파를 견제하려고 하였던 것이였다.
성종은 훈구파와 사림파를 서로 견제시키므로써 왕권을 지키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성종의 이러한 저울질은 결국 많은 피를 보는 사화을 만들게 된다.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모범적인 성종. 많은 업적을 남긴 성종 하지만 성종 재위 25년동아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후일 비극적인 일도 생기게 된다. '성종은 분명 업적을 많이 남긴 왕이였진만 과연 진정으로 휼륭한 왕... 이었을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조선의 9대 왕 성종의 업적을 살펴 볼 때면 세종대왕 시절과 비슷한 문화사적 업적이 많았다. 특히 성종이 멘토로 삼았던 왕이 바로 세종일 그의 업적을 많이 따르고자 했다. 세종이 <정간보>라는 악보와 <여민락>이라는 곡을 만들었다면, 성종은 <악학궤범>이라는 음악 백과사전을 만들었다. 또한 세종이 백성의 윤리회복을 위해 <삼강행실도>를 만들었다면 성종은 조선의 오례의 예법과 절차에 관해 기록한 <국조오례의>를 완성한다.
성종의 업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경국대전>의 완성이다. 조선에는 <경국대전>이전에도 여러 법전이 있었지만, 사회 전반의 법을 두루 다루는 법전은 없었다. 그래서 오랜 기간을 걸쳐 비로소 <경국대전>이 완성 된다. <경국대전>은 성종의 할아버지 세조 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손자인 성종에 이르러 완성해 반포하게 된다. 경국대전의 내용은 상당히 세밀해서 다른나라에서 볼수 없는 조선만의 독자적인 내용이 담겨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성종은 『동국통감』이라고 하는 역사서, 『동국여지승람』이라고 하는 지리지를 편찬하는 사업을 실시했어요.
이밖에도 음악이나,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과 예절에 관한 서적 등도 활발히 편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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