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은 조선의 7대 왕 세조의 첫째 아들인 의경세자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공신 한확의 딸 소혜왕후 한씨였다. 성종은 선대왕이던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이 있었고, 동북형 월산대군이 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왕위 계승 서열 3위였으나 13세의 나이로 갑자기 왕위에 오르게 된다.
조선의 9대 왕인 성종은 8대 왕인 예종의 조카이다. 예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왕실에서는 왕을 세우는 일이 시급해졌다. 당시의 왕위 계승 서열은 첫째가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이었고 둘째가 예종의 형인 의경세자의 장남 월산대군이었으며 셋째가 의경세자의 차남 자을 산군(성종)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이 다음 보위에 올라야 했으나 제안대군의 나이가 3세밖에 안되었기에 세조의 장남이었던 의경세자의 아들들이 후보 주목되었던 것이다. 성종은 세조의 장남 의경세자의 차남이였으나 형인 월산대군이 병약하다는 이유로 왕이 된다. 하지만 실상은 자을산군. 성종의 장인어른이 대단한 책략가 한명회였기 때문이었다
한명회(韓明澮)ㆍ신숙주(申叔舟) 등을 중심으로 한 역대의 훈구대신(勳舊大臣)들은 풍부한 경륜과 긴밀한 인맥을 바탕으로 광범하게 포진해 있었다.
그러나 앞서 문종이 붕어하고 단종이 즉위했을 때, 비슷한 상황이 빚어낸 정치적 균열을 민첩하고 과감하게 포착해 집권했던 인물들은 그때의 경험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위기를 잠재웠다. 왕실의 가장 어른으로 상당한 식견과 정치적 능력을 갖고 있던 세조비 정희왕후(貞熹王后)는 지체 없이 성종을 후계자로 선정했다. 제안대군은 아직 강보에 싸여 있고 월산대군은 질병이 많지만, 자산군(者山君- 성종)은 그동안 세조가 늘 그의 기상과 도량을 칭찬해 태조에 견주기까지 했다는 이유였다. 신숙주, 한명회, 구치관(具致寬), 최항(崔恒) 등 주요 대신들은 그 의견에 즉각 찬성했다. 이런 일치된 합의에 따라 그동안 왕위 계승과는 거의 무관한 위치에 있던 성종은 예종이 붕어한 그날 전격적으로 조선의 최고 권력자에 오르는 행운을 거머쥐었다(1469년 11월 28일).
지극히 중대한 사안인 후사의 결정이 이처럼 신속하게 합의되었다는 사실과 “알리기도 전에 자산군은 이미 부름을 받고 입궐해 있었다”는 기록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결정은 사전에 상당 부분 합의된 것이었다. 그럴 수 있었던 핵심적인 요인은 세조대 이래 최고의 훈구대신인 한명회가 성종의 장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앞서 설명한 정치적 위기를 진정시키는데 대신들의 협력이 필수적임을 감안하면, 한명회의 사위를 후사로 결정한 것은 왕실로서나 대신들에게나 가장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13살의 나이에 왕이 된 성종도 왕으로써의 시련을 피해갈 수 없었다.
정희왕후의 수렴청정(垂簾聽政)과 대신들이 중심이 된 원상제(院相制)였다. 두 이례적 제도는 현실적으로 불가피했고, 전체적으로는 성종의 치세가 안정되는데 기여한 우호적인 제약이었다. 그러나 국왕에게는 결국 불편한 규제가 분명했고, 왕권의 영향력을 정상화시키거나 증폭시키려면 특별한 조처가 필요했다. 성년이 된 재위 7년(1476) 원상제와 수렴청정이 끝나고 친정(親政)을 시작한 성종은 그런 시도를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13세에 왕위에 오른 성종은 아직 어린 나이였으므로 세조의 아내이며 성종의 할머니인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수렴청정이란 나이 어린 왕이 즉위했을 때 성인이 될 때까지 일정 기간 왕실 여인이 국정을 대리 처리해주는 것을 말한다. 성종의 나이 20세가 되는 7년 동안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학문에 열중하게 된다.
성종은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왕이 된 이후에 성종은 경연에 거의 매일 참석한다. 경연이란 유능한 신하들과 공부하를 것을 말하는데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 경연은 필수이기도 했다. 조선의 왕 중에서 경연을 가장 많이 참여한 왕이었는데 재위 기간 25년 동안 무려 9229회의 경연에 참석했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학구열이 성종이 재위하게 되는 25년 동안 수많은 업적을 남기게 된 것이다. 어린 나이에 왕에 자리에 앉았지만 왕으로써 역사에 남긴 업적을 보면 훌륭한 왕이였다. 이를 보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던 단종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단종에게도 지켜줄 누군가만 있었다면 할아버지 세종과 아버지 문종과 같이 훌륭한 왕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속상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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