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야기284 행주대첩 행주대첩은 조선 선조 때인 1593년에 권율이 이끄는 조선군과 백성들이 행주 산성에서 힘을 합쳐 일본군을 크게 무찌른 싸움이다. 진주 대첩, 한산도 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첩 중 하나로 꼽힌다. 권율은 왜란 초 광주목사(光州牧使)로 있으면서 1592년(선조 25) 7월 배티〔梨峙〕싸움에서 대승한 공으로 전라도관찰사 겸 순찰사가 되었다. 권율은 관군과 함께 평양을 수복한 뒤, 남쪽으로 내려온 명나라의 원군과 호응해 서울을 되찾기 위해 관군을 이끌고 북상하였다. 북상하던 중 수원 독산성(禿山城)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였다. 이어 그는 군대를 서울 근교 서쪽으로 옮기기로 하고 조방장(助防將) 조경(趙儆)에게 적당한 지역을 물색하도록 하였다. 조경은 양천(陽川)에서 한강을 건너 병력을 주둔시킬 만한 곳을 찾아내.. 2020. 4. 29. 권율장군, 임진왜란 행주대첩의 승리 권율은 조선시대 의주목사, 도원수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장수이다. 금산군 이치(梨峙)싸움, 수원 독왕산성 전투, 행주대첩 등에서 승리했다. 임진왜란 7년 간 군대를 총지휘한 장군으로 전공을 세웠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언신(彦愼), 호는 만취당(晩翠堂)·모악(暮嶽). 도첨의(都僉議) 권보(權溥)의 9세손으로, 할아버지는 강화부사 권적(權勣), 아버지는 영의정 권철(權轍), 어머니는 적순부위(迪順副尉) 조승현(曺承晛)의 딸이다. 이항복(李恒福)의 장인이다 1582년(선조 1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이어 전적·감찰·예조좌랑·호조정랑·전라도도사·경성판관을 지냈다. 1591년에 재차 호조정랑이 되었다가 바로 의주목사로 발탁되었으나, 이듬해 해직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 2020. 4. 28. 류성룡 <징비록>쓰다 조선 시대의 문신. 25세에 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라 나라의 정책을 결정하는 우의정 자리에 오른다. 임진왜란1)이 일어났을 때 총책임관을 맡아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인 을 썼다. 조선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이견(而見). 호는 서애(西厓).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군의 사촌마을 외가에서 태어났고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의 하회마을에서 성장했다. 그 후 안동에서 지내다가 20대에 퇴계 이황의 제자로 들어갔다. 1564년 명종 때에 사마시(소과)에 합격했고 1566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여러 내직을 거쳤으며 선조가 즉위한 뒤에도 중용되어 그럭저럭 순탄한 관직 코스를 밟았으며 선조의 총애를 받았다. 다만 그가 .. 2020. 4. 27. 선조실록 은 선조 재위기간인 1567년 7월에서 1608년 1월인 41년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사서이다. 정식 이름은 이며, 모두 221권 116책으로 활판으로 간행되었다. 선조의 묘호는 처음에 선종으로 정하였기 때문에 의 판심에는 이라 인각되어 있다. 광해군 8년인 1616년 8월에 묘호를 선조로 고치면ㄴ서 실록의 표제도 이라 하였다. 은 광해군 원년 1609년 7월 12일부터 편찬하기 시작하여 광해군 8년 1616년 11월에 완성하였다. 은 그 대부분이 선조 25년인 1592년 임진왜란 뒤 16년간의 기사로 되어 있으며, 전체 221권 중 195권에 달한다. 반면 선조 즉위년인 1567년부터 임진왜란 이전까지 약 25년간의 가사는 모두 26권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임진왜란 때 와 등의 공공 기록과.. 2020. 4. 24. 윤원형의 첩 - 정난정 정난정은 ?∼1565(명종 20). 조선 중기의 척신(戚臣) 윤원형(尹元衡)의 첩이다. 을사사화에 관여하였으며 윤원형의 권세를 배경으로 상권을 장악하여 전매, 모리 행위로 많은 부를 축적하였다. 정경부인(貞敬夫人)의 작호를 받았으나 문정왕후가 죽은 뒤 사림의 탄핵을 받아 자결하였다. 본관은 초계(草溪)이며, 부총관을 지낸 정윤겸(鄭允謙)이 아버지이고 어머니는 관비(官婢) 출신이다. 미천한 신분에서 벗어나고자 기생이 되어 중종(中宗)의 계비(繼妃)인 문정왕후(文定王后)의 동생 윤원형(尹元衡)에게 접근하여 첩이 되었다. 1545년 12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한 명종(明宗)을 대신하여 모후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자, 소윤(小尹)의 우두머리였던 윤원형의 사주를 받고 명종과 문정왕후에게 인종의 척족 윤임(尹.. 2020. 4. 23.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 윤씨의 대리청정 중종의 계비였던 문정왕후는 아들 명종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통해 정치적 실권을 장악한 후 20여 년간 국정을 장악하였던 여성 독재자다. 본관은 파평(坡平). 아버지는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윤지임(尹之任)이다. 1517년, 17세 때 당시 중종의 왕비이자 문정왕후에게는 9촌인 삼당고모인 장경왕후가 죽자 원자 이호(훗날의 인종)의 외숙부 윤임의 뒷배로 간택되어 가례를 치르고 중전이 되었다. 중전이 되었으므로 당시 태어난 원자 이호를 잘 돌봐야 할 책무가 있었고, 처음엔 성심성의껏 훈육하였다. 당시 중종은 후궁들로부터 많은 서통 왕자들을 얻은 상태였으나, 적통 왕자는 장경왕후가 낳은 원자 이호가 유일했다. 한미한 집안 출신인지라 든든한 친정 배경에 왕자들까지 생산한 후궁들보다도 기반이 미약했던 문정왕후는, .. 2020. 4. 22. 명종의 업적 - 구황촬요 구황촬요는 1554년(명종 9)에 간행된 흉년에 대비한 내용의 책이며 1권 1책. 목판본으로 되어 있다. 명종 때에 영호남에 기근이 극심하였다. ≪구황찰요≫는 기근을 구제하기 위하여 언해본(한글)으로 진휼청의 인포(印布)로 나온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초기부터 흉년을 만나면 구호 사업이 실시되었다. 이러한 구호 사업과 함께 생식벽곡(生食辟穀)과 구황요기(救荒療飢)의 방법이 세종 때부터 여러 가지 책자로 간행, 보급되었다. ≪구황벽곡방 救荒辟穀方≫이 세종의 편집으로 간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존하지는 않는다, 그 내용은 ≪구황촬요≫에 많이 인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구황촬요≫의 초판본은 총 17면이다. 경주에서 목판본으로 발간되었다고 한다. ≪구황촬요≫는 효종 때에 신속(申洬)이 합편으로 간행한 ≪농가집성.. 2020. 4. 21. 백적 임꺽정, 의적이 되다 임꺽정은 조선 중기 황해도 함경도 등지에서 활동하던 도둑으로 천민인 백정 출신이며 곡식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줘 의적이라고 불렸다. 일명 임거정(林巨正) 또는 임거질정(林居叱正)이라고도 한다. 조선 중기 양주(楊州)의 백정(白丁) 출신으로 일명 임거정(林巨正) 또는 임거질정(林巨叱正)이라고도 한다. 처음에는 자신의 신분에 대한 불만을 품고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도둑질을 일삼았다. 여러 해 연이어 흉년이 되고 당시 척족 윤원형(尹元衡)·이량(李樑) 등이 발호하고, 관리들의 수탈로 민생이 어려워지자 민란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날쌔고 용맹스러웠으며 자기 신분에 대한 불만을 품고 어지러운 사회를 틈타 처음에는 도당 몇 명을 모아 민가를 횡행하며 도둑질을 일삼았다. 세력이 커지자 황해도로 진출해 구월산 등지를 소굴로.. 2020. 4. 21. 명종의 업적 - 판옥선 판옥선은 조선시대 명종 때 개발한 것으로 수군이 사용했던 전투선이다. 임진왜란 때는 조선 수군의 주된 군함으로 이용되어 해상 전투에서 큰 성과를 올렸다. 배의 바닥이 평평하고 윗부분에 판옥(옥상)을 만든 것이 특징이다. 명종(明宗) 때를 전후해서 왜적은 그들의 배를 개량하여 침략해오기 시작했다. 왜선의 규모는 커지고 화포를 강화하여 조선의 맹선으로 이들을 격퇴하기가 어려워졌다. 판옥선은 이러한 왜선을 무찌르기 위해 1555년(명종 10)에 만든 배이다 임진왜란 중 크게 활약하였으며 뒤에 전선(戰船)으로 발전하였다. 대표적인 전투함으로 일명 판옥전선이라고도 한다. 조선 전기의 군선(軍船)은 문헌상으로 대맹선(大猛船)·중맹선·소맹선 등 세 종류로 나타나고 있으며, 각 진포에 배치되어 있던 척수는 대맹선 81.. 2020. 4. 21. 이전 1 ··· 12 13 14 15 16 17 18 ··· 3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