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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야기284

인조시대 인물 - 남한산성 최명길 최명길은 조선시대 이조판서, 우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겸(子謙), 호는 지천(遲川)·창랑(滄浪). 최업(崔嶪)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수준(崔秀俊)이고, 아버지는 영흥부사 최기남(崔起南)이다. 어머니는 참판 유영립(柳永立)의 딸이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부친은 영흥부사 최기남(崔起南), 모친은 참판 유영립(柳永立)의 딸이다. 일찍이 이항복(李恒福) 문하에서 이시백(李時白) · 장유(張維) 등과 함께 수학한 바 있으며, 신흠(申欽)의 문인이기도 하다. 최명길은 1586년(선조 19) 금천에서 태어났다. 8세 때에 "오늘은 증자(曾子)가 되고 내일은 안자(晏子)가 되며, 또 그 다음 날엔 공자(孔子)가 되리라."라고 맹세해 부모를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 2020. 5. 29.
병자호란 - 광교산 전투를 말하다 - 광교산 전투는 병자호란 때인 1637년 1월 29일 부터 1월 31일까지 경기도 용인의 광교산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로 전라병사 김준룡이 광교산에서 청나라 장수 양굴리[楊古利]가 이끄는 청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이다. 10만의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공한 청나라 태종(太宗) 홍타이지[皇太極]는 관서(關西) 지방의 요충지인 의주 백마산성(白馬山城)ㆍ안주성(安州城)ㆍ황주 정방산성(正方山城) 등에 집결해 있는 조선군을 우회하여 한양을 향해 빠르게 남하했다. 1637년 1월 8일 무렵에는 마부타[馬福塔]가 이끈 청나라의 돌격대가 이미 개성 부근까지 내려와 있었으며, 홍타이지가 직접 이끈 본대도 청천강을 건너 안주(安州)에 이르러 있었다. 청나라 군대의 빠른 남하에 놀란 인조(仁祖)는 1월 9일 서둘러 강화도로 피난.. 2020. 5. 26.
인조시대 관련 인물 - 대동법 시행한 김육 김육은 조선 중기 형조참의, 병조참판, 개성부유수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실학자이다. 17세기 후반의 공납제도의 폐단을 혁파하기 위해, 대동법 실시를 주장하였다.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회정당(晦靜堂). 기묘팔현(己卯八賢)의 한 사람인 김식(金湜)의 4대손이며, 할아버지는 군자감판관 김비(金棐)이고, 아버지는 참봉 김흥우(金興宇)이며, 어머니는 현감 조희맹(趙希孟)의 딸이다. 김육은 1580년 7월 14일 한양(옛 서울) 마포에 있는 외조부 조신창(趙新昌)의 집에서 태어났다.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 혹은 회정당(晦靜堂)이다. 김육은 다섯 살 때 이미 천자문을 외우는 비상한 자질를 타고난 아이였다. 1588년 조부인 김비(金棐)가 강동 고을 수령이 되자 부친.. 2020. 5. 25.
인조의 며느리, 소현세자의 비 민회빈 강씨 민회빈 강씨는 본관 금천(衿川). 우의정 강석기(姜碩期)의 딸이다. 1627년(인조 5) 가례(嘉禮)를 올려 소현세자빈이 되었다. 병자호란 뒤인 1637년 세자와 함께 인질로 심양(瀋陽)에 잡혀갔다가 1645년 귀국하였다. 1627년, 인조와 인열왕후 한씨는 강석기의 딸을 최종 세자빈으로 간택하여 세자와 가례를 올렸다. 사실 강씨는 본래 세자빈이 되지 못했을수도 있었다. 그녀가 간택되기 2년 전, 소현세자는 파평 윤씨 가문의 딸과 혼인이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 규수는 이괄의 난에 가담한 윤인발과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대간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고, 결국 파혼당해 내쳐지게 되었다. 이후 소현세자의 혼례가 무산된 지 2년 만에 다시 간택을 거쳐 뽑힌 여인이 강빈이다. 이후 병자호란의 패배와 정축하.. 2020. 5. 24.
병자호란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청나라가 조선에 대한 제2차 침입으로 일어난 전쟁. 병자년에 일어나 정축년에 끝났기 때문에 병정노란(丙丁虜亂)이라 부르기도 한다. 병자호란의 배경은 1627년 후금(後金: 뒤의 淸)의 조선에 대한 1차 침입 때 조선은 무방비 상태로 후금에 당함으로써 후금에 대해 형제의 맹약을 하고 두 나라 관계는 일단락되었다. 한편, 조선은 정묘호란 이후 후금의 요구를 들어 1628년(인조 6) 이후 중강(中江)과 회령(會寧)에서의 무역을 통해 조선의 예폐(禮幣: 외교관계에서 교환하는 예물) 외에도 약간의 필수품을 공급해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당초의 맹약을 위반하고 식량을 강청하고 병선(兵船)을 요구하는 등 온갖 압박을 가해왔다. 그뿐 아니라 후금군이 압록강을.. 2020. 5. 23.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 소현세자는 조선의 제16대 왕 인조의 맏아들이다.조선왕조에서 비운의 왕세자로 회자되는 인물인 소현세자(昭顯世子, 1612~1645). 사도세자와 함께 왕세자였음에도 왕이 되지 못하고 요절한 비극의 주인공이다. 소현세자와 관련한 가장 큰 의혹은 바로 그의 죽음에 있다. 그가 독살되었다는 주장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소현세자는 1612년(광해군 4) 1월 4일 인조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부친이 왕위에 오르자 14세의 나이로 세자로 책봉되었고, 1627년 강석기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다. 병자호란 후 정축맹약에 따라 1637년(인조 15) 2월 8일 아우인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가 8년 만에 귀국하였지만, 귀국한 지 두 달 만에 사망하였다. 오한이 나 병을 치.. 2020. 5. 22.
정명공주 정명공주는 선조의 첫째 딸로,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연흥부원군(領敦寧府事延興府院君)김제남(金悌男)의 딸 인목왕비(仁穆王妃)이다. 광해군이 즉위하여 영창대군을 역모 연루죄로 사사하고 인목대비를 서궁으로 폐출시킬 때 함께 감금되었다. 인조반정 후 공주로 복권되고 중추부동지사 홍원의 아들 주원에게 시집을 갔다. 인목대비가 죽은 후 궁중에서 무도한 백서(帛書)가 나와 효종의 의심을 받았으나 숙종이 즉위하자 후대를 받았다. 1602년 음력 7월 13일 선조가 김제남(金悌男, 1562~1613)의 딸을 계비로 맞아들이니 그녀가 인목대비(仁穆大妃, 1584~1632)이다. 당시 선조의 나이 51세, 인목대비의 나이 19세였다. 열 달 후인 1603년 음력 5월 19일 정릉동 행궁에서 정명공주가 태어났다 정명공주가 태어.. 2020. 5. 21.
인조시대 관련 사건 - 이괄의 난 이괄의 난은 인조반정 때 공을 세운 이괄이 1624년에 일으킨 반란이다. 한때 한양을 점령하기도 했지만 반란군 내부의 분열과 관군의 반격으로 실패했다. 광해군(光海君, 재위 1608~1623) 때에 제주목사, 함경도 북병사(北兵使) 등을 지낸 이괄(李适, 1587~1624)은 1623년에 일어난 인조반정에서 인조(仁祖, 재위 1623~1649)를 왕으로 즉위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는 1622년(광해군 14년) 함경도 북병영의 병마절도사에 임명되어 임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가 신경유(申景裕)의 권유로 반정(反正) 모의에 참여했으며, 거사 당일에도 반군을 통솔하기로 했던 김유(金瑬)를 대신해서 실질적으로 군사를 지휘하여 반정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당시 반정 세력이 병력을 이끌고 홍제원(弘濟院)에 .. 2020. 5. 20.
인조시대 정묘왜란이 일어나다 조선 인조 때인 1627년에 후금이 조선을 침략하여 벌어진 전쟁이다. 후금은 광해군 폐위 문제를 구실로 쳐들어왔다가 조선과 협상을 벌인 뒤 강화를 맺고 돌아갔다. 두 나라는 이 전쟁을 계기로 ‘형제’의 관계를 맺었으나 오래가지는 못했고 9년 뒤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병자호란의 배경을 살펴보면 광해군때부터 살펴봐야 한다. 1월 중순부터 3월 초에 걸쳐 약 2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만주에 흩어져 살던 여진족은 조선과 명나라가 임진왜란으로 국력이 피폐해진 틈을 타 건주위(建州衛) 여진의 추장 누르하치(奴兒哈赤)를 추대해 여러 부족을 통합, 1616년(광해군 8) 후금을 세우고 비옥한 남만주의 농토를 탐내어 명나라와 충돌하게 되었다. 명나라는 양호(楊鎬)를 요동경략(遼東經略)으로 삼아 10만 대군으로 후금 토벌에.. 2020. 5.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