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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야기284

명종의 업적 - 경국대전주해 조선 명종의 명으로 만들어진 법률 해석서로, 기존 경국대전의 조문이나 용어는 간결하면서도 뜻이 함축되어 있어서 그 문장과 실정에 능통하지 않고는 법을 제대로 적용받기 힘들었으므로 모든 사람들이 법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명종에 의해 대전주해관(大典註解官)으로 임명된 안위(安瑋), 민전(閔荃)이 경국대전의 내용을 주해하였고, 판서 정사룡(鄭士龍)과 참판 심통원(沈通源)이 검토, 정정하였다. 이후 영의정 심연원(沈連源), 좌의정 상진(尙震), 우의정 윤개(尹漑)의 검토를 거쳐 1554년(명종 9)에 완성, 그 이듬해부터 시행하였다. 주해한 항목수는 이전(吏典) 16항, 호전(戶典) 11항, 예전(禮典) 7항, 병전(兵典) 8항, 형전(刑典) 18항, 공전(工典) 2항으로 도합 6.. 2020. 4. 21.
명종, 양재역 벽서 사건 명종 2년(1547)에 일어난 조선시대의 사화(士禍)로.일명 벽서의 옥(壁書獄), 양재역벽서사건이라고도 한다. 을사사화의 뒤치다꺼리 격으로 윤원형이 이끄는 소윤이 대윤 일파의 잔당을 숙청한 사건이다. 외척으로서 정권을 잡고 있던 윤원형(尹元衡)세력이 반대파 인물들을 숙청한 사건으로, 정미사화라고도 불린다. 중종 말년부터 경원대군(慶源大君)의 외숙인 윤원로(尹元老)·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소윤(小尹) 일파와 세자의 외숙인 윤임(尹任)을 중심으로 하는 대윤(大尹) 일파 사이의 대립이 심화되었다. 중종의 뒤를 이은 인종이 재위 8개월 만에 병으로 죽고 경원대군이 즉위하는 한편, 윤원형의 누이인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수렴청정을 실시하자, 소윤 세력은 역모를 씌워 대윤을 중심으로 한 반대 세력을 숙청하였다. 이것이.. 2020. 4. 21.
을묘왜변 그리고 비변사 을묘왜변은 1555년(명종 10) 왜구가 전라남도 강진·진도 일대에 침입해 약탈과 노략질한 사건이다. 을묘왜변의 배경은 조선과 일본 사이의 외교 관계가 원활하지 못한 점과 일본 국내 사정의 혼란에서 일어났다. 조일 관계에서 보면 1544년(중종 39) 왜인들의 약탈로 야기된 사량진왜변(蛇梁鎭倭變)으로 조선에서는 그들의 내왕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대마도주(對馬島主)의 사죄와 통교 재개 허용을 바라는 간청을 받아들여 1547년(명종 2) 정미약조(丁未約條)를 맺고 왜인들의 내왕 통교를 허용하였다. 정미약조는 결과적으로 왜인들의 위반 정도에 따라 통제가 강화된 내용이었다. 그러므로 이전까지 너그럽게 취급해 주던 조선측의 방침은 강화되었으며, 왜인들의 내왕무역에 대해서도 통제 규정이 강화되어 여러 가지 규제가 .. 2020. 4. 20.
명종, 을사사화가 일어나다 을사사화는 1545년(명종 즉위) 윤원형(尹元衡) 일파 소윤(小尹)이 윤임(尹任) 일파 대윤(大尹)을 숙청하면서 사림이 크게 화를 입은 사건이다. 기묘사화 이후 사림이 후퇴한 사이에 신묘삼간(辛卯三奸 : 중종 20년 신묘년에 사형된 沈貞·李沆·金克愊을 말함.)과 김안로(金安老)와의 싸움과 같은 권신간의 치열한 정권다툼이 일어났다. 김안로는 심정 등의 탄핵으로 귀양중 정신(廷臣)과 내통해, 심정 등이 유배중인 경빈 박씨(敬嬪朴氏)를 왕비로 책립할 음모를 꾸몄다고 탄핵하였다. 이로써 반대파를 제거하고 정권을 잡는 데 성공한 김안로 일파는 허항(許沆)·채무택(蔡無擇) 등과 결탁해 권세를 누리면서, 뜻에 맞지 않는 사람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몰아내겠다고 위협해 조정을 공포에 떨게 했다. 그러나 문정왕후(文定王.. 2020. 4. 20.
명종실록 은 조선 제 13대 왕 명종의 재위기간인 1545년7월에서 1567년 6월인 21년 11개월간의 역사를 기록한 실록이다. 정식 이름은 이며, 모두 34권 34책으로 활판으로 간행되었다. 의 편찬은 선조 원년 8월 20일에 영의정 이준경, 우의정 홍섬이 춘추관에 나와 실록 편찬 인원을 선정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권말에 부기된 전후 편찬광은 감관사- 홍섬, 지관사- 오겸,이황, 이탁, 송기수,김개, 박충원, 정종영, 임열, 송순, 동지관사- 박순, 김귀영, 이탁, 이문형, 이영현, 강사상, 송찬, 윤의중, 박응남, 백인걸, 편수관- 이제민, 이산해, 안자유, 김기문, 민기문, 권벽, 유감, 신담, 황정욱, 양희, 신희남, 이담, 이기, 유희춘 등이다. 명종의 시호는 공헌, 존호는 헌의소문광숙경효, 묘호는 명종.. 2020. 4. 18.
중종의 어의녀 장금 장금은 조선 중종 때의 어의녀로 왕의 주치의 역할을 했다고 전한다. 일명 대장금(大長今)으로 '큰' 또는 '위대한'을 뜻하는 '대(大)'를 써서 대장금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출생연도, 성씨와 본관, 출생 배경 등에 대해서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다. 중종의 어의녀로 중종의 주치의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이는 의녀 가운데 유일한 것이다. 천민 신분의 의녀로서 수많은 남자 의관(醫官)을 제치고 왕의 주치의가 되었다는 것은 당시 남성 위주의 엄격한 관료주의제 아래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로, 중종(中宗)의 총애를 받았으며, 뛰어난 의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1515년 인종이 태어날 때 호산하여 공이 있었다'는 기록과 '중종으로부터 쌀과 콩을 포상으로 받았다'는 기록 등이 전해진다. 조선왕조실.. 2020. 4. 18.
중종시대 문신 김안로 김안로는 조선전기 이조판서, 도총관, 대제학,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이숙(頤叔), 호는 희락당(希樂堂)·용천(龍泉)·퇴재(退齋). 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김우신(金友臣), 아버지는 공조참의(工曹參議) 김흔(金訢)이며, 어머니는 윤지(尹墀)의 딸이다. 부인은 채수(蔡壽)의 딸이고, 아들은 조선 중기의 화가인 김시(金禔)와 김기(金祺)이다. 1501년(연산군 7) 진사가 되었고, 1506년(연산군 12)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전적(典籍)에 처음 임명된 뒤 수찬(修撰)·정언(正言)·부교리(副校理) 등 청환직(淸宦職: 학식과 문벌이 높은 사람에게 내리는 관직)을 역임하였다. 1511년 유운(柳雲)·이행(李荇) 등과 함께 사가독서(賜暇讀書)했고, 직제학(.. 2020. 4. 18.
중종시대 학자 남곤 남곤은 1471(성종 2)∼1527(중종 22).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사화(士華), 호는 지정(止亭)·지족당(知足堂). 고조할아버지는 지영광군사(知靈光郡事) 남천로(南天老), 증조할아버지 참지문하부사(參知門下府事) 남을진(南乙珍), 할아버지는 형조도관정랑(刑曹都官正郞) 남규(南珪), 아버지는 곡산군수(谷山郡守) 남치신(南致信)이다. 어머니는 용양위호군(龍驤衛護軍) 하비(河備)의 딸 진주하씨(晉州河氏)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489년(성종 20) 생원시(生員試)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494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여 검열(檢閱)을 거쳐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부제학(副提學) ·좌부승지(左副承旨)를 지냈다. 개혁적인 성향의 신하였으며 성종 때.. 2020. 4. 18.
중종시대 관련 인물 - 사암 박순 박순[朴淳, 1523(중종 18)~1589(선조 22)]은 조선 초기의 문신·학자이다. 자는 화숙(和叔)이고, 호는 청하자(靑霞子)·사암(思菴)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본관은 충주(忠州)로서, 아버지는 한성부 좌윤을 지낸 우(祐, 1476~1547, 호는 六峰)이고, 어머니는 당악 김씨(棠岳 金氏)이다. 기묘명현(己卯名賢)으로서 문장가로도 알려진 박상(朴祥)은 그의 백부이다. 박순의 집안은 11대조부터 관직에 나아가 대대로 호서에 살다가 이후 광주(光州)·나주(羅州) 등으로 처향(妻鄕)을 따라 이주하면서 호남 사람이 되었다. 박순 역시 나주에서 태어났으나, 6세에 어머니를 잃고 이후 광주에서 서모에 의해 양육되었다. 18세에 진사가 되고 이후 개성부 유수였던 아버지의 임지에서 서경덕(徐敬德)에게 .. 2020. 4.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