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야기284 조선 16대 왕 인조 - 반정으로 왕위에 오르다 인조의 자 화백(和伯). 호 송창(松窓). 휘 종(倧). 선조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정원군(定遠君:元宗으로 追尊), 어머니는 인헌왕후(仁獻王后)이다. 비는 한준겸(韓浚謙)의 딸 인열왕후(仁烈王后), 계비(繼妃)는 조창원(趙昌元)의 딸 장렬왕후(莊烈王后)이다. 1607년(선조 40) 능양도정(綾陽都正)에 봉해졌다가 후에 능양군(綾陽君)으로 진봉되었다. 조선 16대 왕 인조는 선조의 다섯째 아들인 정원군(定遠君, 뒤에 元宗으로 추존됨)과 좌찬성 구사맹의 딸(뒤에 인헌왕후로 추존) 사이에서 맏아들로 1595년 11월 7일에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인조가 해주에서 출생한 것은 왜구의 침입으로 왕족들이 해주에 피신 중이었기 때문이다.인조의 조부가 되는 선조는 14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늙어서 얻은 영창대군 외에.. 2020. 4. 9. 연산군시대 학자 김일손 <조의제문>을 사초하다 김일손은 조선전기 『탁영집』을 저술한 학자이자 문신이다.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또는 소미산인(少微山人). 대대로 청도에서 살았다. 할아버지는 김극일(金克一)이고, 아버지는 집의(執義) 김맹(金孟)이며, 어머니는 이씨이다.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 소미산인(少微山人), 시호는 문민(文愍)이다. 조부는 김극일(金克一), 부친은 자진(子進) 김맹(金孟)이다. 김일손은 1464년(세조 10) 경상도 청도군 상북면 운계리 소미동에서 태어났다.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본관은 김해이다. 조부인 김극일(金克一)은 길재(吉再)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부친 김맹(金孟) 역시 가학을 계승하고 김종직의 부친 김숙자(金叔滋)에게 학문을 배웠다. 김일손 또한 김.. 2020. 4. 7. 연산군의 여인 장녹수 장녹수는 조선 중기 연산군의 총희(寵姬)이다. 충청도 문의 현령(文義縣令)을 지낸 장한필(張漢弼)과 그의 첩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첩의 자녀였기 때문에 천민의 삶을 살아야 했다. 장녹수는 가난해서 시집을 여러 번 갔으며, 마지막에는 제안대군(齊安大君: 예종의 둘째 아들)의 노비로 들어가 그곳에서 대군의 노비와 혼인하여 아들을 하나 두었다. 이후에 그녀는 가무(歌舞)를 익혀 이름을 떨쳤다. “얼굴은 중인(中人) 정도를 넘지 못했다”는 표현으로 미루어 뛰어난 미색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나, 춤과 노래에 탁월한 능력을 겸비하여 소문이 자자했던 듯하다. 연산군은 그 소문을 듣고 그녀를 흥청(興淸)으로 뽑아 궁궐에 들였던 것으로 보인다. 흥청은 연산군 대에 뽑았던 일 등급 기녀였다. 연산군은 기녀 제도를 확.. 2020. 4. 7. 연산군시대 문신, 유자광 유자광은 조선전기 병조정랑, 한성부판윤, 장악원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서얼 출신으로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예종 때에는 ‘남이의 옥’을, 연산군 때에는 무오사화를 주도하며 공신의 지위에 올랐다. 본관은 영광(靈光)이고 자(字)는 우후(于後)이다. 부윤(府尹)을 지낸 유규(柳規)의 서자(庶子)로 전라도(全羅道) 남원부(南原府)에서 태어났으며 모친은 최씨(崔氏)이다. 대사헌(大司憲) 등을 지낸 오성군(筽城君) 유자환(柳子煥)의 서제(庶第)이다. 함양호장(咸陽戶長)을 지낸 박치인(朴致仁)의 딸과 결혼하여 유방(柳房)과 유진(柳軫) 등을 낳았다. 1467년(세조 13) 왕실의 호위병인 갑사(甲士)로 있다가 하번(下番)하여 고향인 남원에 머무르고 있다가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세조(世.. 2020. 4. 7. 성종의 어머니, 연산군의 할머니.. 인수대비 소혜왕후(昭惠王后)는 1437(세종 19)∼1504(연산군 10). 조선 세조의 장남인 덕종의 비(妃). 성은 한씨 (韓氏). 본관은 청주(淸州). 서원부원군 확(確)의 딸이며, 좌리공신(佐理功臣) 치인 (致仁)의 누이동생이다. 소혜왕후(昭惠王后, 1437-1504)라는 시호 보다 인수대비(仁粹大妃)로 유명한 한씨는 실로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다간 왕실여성이며, 여성 지식인이다. 조선 제9대왕 성종의 어머니이자,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의 할머니로서 더욱 유명한 인수대비는 시아버지 세조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몸소 지켜보았고, 남편의 죽음으로 잃어버렸던 왕비 자리를 대신해 자신의 어린 둘째 아들을 왕으로 만들면서 대비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가 [내훈(內訓)]이라는 여성 교육서를 만든 지.. 2020. 4. 6. 성종시대 대학자, 훈군파 학자 최항 최항은 조선 초기의 훈구파 대학자이며 세조를 도와 문물제도 정비에 크게 공헌했다. 역사, 언어 등에 정통하고 문장이 뛰어났다. 1434년 알성문과에 급제한 후, 집현전 부수찬이 되어 정인지 등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했다. 1461년에는 양성지(梁誠之)의 《잠서(蠶書)》를 국역 간행하고 《경국대전》 편찬에 착수, 조선 초기의 법률제도를 집대성했다.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정보(貞父), 호는 태허정(太虛亭)·동량(㠉梁). 최충(崔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윤문(崔潤文)이고, 아버지는 증영의정 최사유(崔士柔)이다. 어머니는 오섭충(吳燮忠)의 딸이다. 서거정(徐居正)의 자부(姉夫)이다. 1434년(세종 16)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집현전부수찬이 되었다. 이 해『자치통감훈의(資治通鑑訓義)』의 편.. 2020. 4. 6. 연산군 일기 는 조선왕조 제10대 왕 연산군의 재위기간 1494년 12월에서 1506년 9월인 11년 9개월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실록이다. 모두 63권 46책이며, 활자로 간행되었다. 조선시대 다른 왕들의 실록과 함께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다. 연산군은 반정으로 폐위되었으므로 묘호가 없고, 그 실록도 노산군(단종), 광해군의 예와 같이 일기라고 칭하였으나, 체제나 내용 면에서 다른 실록과 별로 다름이 없다. 의 편찬은 연산군이 세상을 떠나자 1506년인 중종1년 11월에 시작되었다. 폐위된 왕의 실록 편찬이므로 일기수찬이라는 이름으로 일기청이 설치되고, 대제학 김감이 감춘추관사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다음해 1월에 김감이 대신 암살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으므로 편찬 작업이 일시 중단되었으나 후임 대제학 신.. 2020. 4. 6. 성종실록 은 조선왕조 제9대 왕 성종의 재위기간 1469년 11월에서 1494년 12월인 25년 2개월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사서이다. 정식 이름은 이며, 모두 297권 150책으로 활판으로 인쇄되었다. 은 제14권 성종 3년 정월부터 기사의 다소에 상관없이 반드시 1개월을 1권으로 편철하였기 때문에 권수가 많아지게 되었다. 조선시대 다른 왕들의 실록과 함께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다. 성종실록은 성종이 세상을 떠난 지 4개월 뒤인 1495년인 연산군1년 4월에 영의정 노사신 등의 건의로 춘수관 안에 실록청을 설치하고 편찬을 시작하였다. 편찬 도중인 1498년인 연산군4년에 김일손이 실록청에 제출한 사조 가운데 그의 스승 김종직이 쓴 과 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문제가 되어 무오사화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 2020. 4. 6. 성종시대 성리학자, 사림 김굉필 김굉필은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이다. 김종직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면서 특히 《소학》에 심취하여 ‘소학동자’라 자칭하였다.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평안도 희천에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조광조(趙光祖)를 만나 학문을 전수하였다. 김굉필이 정계에 진출하여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힘은 성종의 사림 등용 정책 때문이었다. 성종은 계유정난 이후 정권을 장악하여 보수반동을 고집하던 훈구 세력들을 견제하기 위해 향촌사회에서 유학을 수학하던 사림들을 등용하기 시작하였다. 본관은 서흥(瑞興), 자는 대유(大猷), 호는 사옹(蓑翁)·한훤당(寒暄堂)이며,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면서 특히 《소학(小學)》에 심취하여 스스로 '소학동자(小學童子)'라 칭하였다. 1480년 사마시.. 2020. 4. 5. 이전 1 ··· 16 17 18 19 20 21 22 ··· 3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