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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야기284

조선 15대 왕 광해군 - 폐모살제 그리고 인조반정 임진왜란의 막이 내렸다. 의인왕후 사후 선조는 계비를 간택, 1606년 선조의 계비가 된 인목왕후가 그 후 영창대군(적자)을 낳자, 광해군을 내심 탐탁치 않게 여기고 미워하던 부왕 선조는 다시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하여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고, 소북파의 유영경 등도 적통론을 내세워 영창대군 옹립계획을 세운 선조를 지지하였다. 특히나 선조 자신이 서얼에다가 방계승통을 했다는 콤플렉스까지 겹치면서 영창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 시도가 행해졌다. 그러나 선도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으며 임진왜란 동안 많은 공을 세운 광해군이 대북파의 지지를 받아 1608년 왕위에 올랐다. 1609년 광해군은 자신의 세자 책봉 과정에서, 장자 승계 원칙을 주장하며 자신을 압박하던 명나라가 활용하던, 친형제이자 장자 임해군을 .. 2020. 3. 28.
세종이 아꼈던 신하 성삼문 성삼문은 조선전기 홍문관수찬, 예조참의, 예방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근보(謹甫), 호는 매죽헌(梅竹軒). 충청남도 홍성(洪城) 출신. 개성유후(開城留后) 성석용(成石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성달생(成達生)이고, 아버지는 도총관(都摠管) 성승(成勝)이다. 어머니는 현감 박첨(朴襜)의 딸이다. 영웅이 탄생할 때 흔히 갖춰지는 탄생설화가 있듯이 성삼문도 태어날 때 공중에서 ‘낳았느냐?’ 하는 세 번의 소리가 있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의 이름인 ‘삼문(三問)’의 유래이기도 한데, 문헌으로 전하는 내용은 아니고 구전 설화에 가깝다. 성삼문은 1435년 18살 되던 해에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3년 뒤인 21살 때에 하위지(.. 2020. 3. 27.
집현전 학자 박팽년 박팽년은 조선전기 충청도관찰사,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인수(仁叟), 호는 취금헌(醉琴軒). 회덕(懷德) 출신. 박원상(朴元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안생(朴安生)이고, 아버지는 박중림(朴仲林)이며, 어머니는 김익생(金益生)의 딸이다. 박팽년은 과묵한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성품은 침착하고 말수가 적었으며 [소학(小學)] 책에 나오는 예절대로 실천하여 하루 종일 단정히 앉아서 의관을 벗지 않아 사람들이 존경해마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는 일화 하나가 있다. 명의 천순(天順) 황제가 오랑캐에게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박팽년은 침실에서 자지 않고 항상 밖에서 짚자리를 깔고 잤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천자가 오랑캐 나라.. 2020. 3. 27.
집현전 학자 정인지 정인지는 조선전기 병조판서, 좌의정, 영의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백저(伯雎), 호는 학역재(學易齋). 정익(鄭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을귀(鄭乙貴)이고, 아버지는 석성현감(石城縣監) 증영의정부사(贈領議政府事) 정흥인(鄭興仁)이다. 어머니는 진천의(陳千義)의 딸이다. 정도전(鄭道傳)·권우(權遇)의 문인이다. 1411년(태종 11) 생원시에 합격했고, 1414년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에 제수되었다. 1415년 예문관부교리에 개수(改授)되고, 이어 감찰·예조좌랑을 역임하였다. 1418년(세종 즉위년) 8월 병조좌랑을 거쳐 1421년(세종 3)에는 상왕(上王 : 태종)의 “대임을 맡길만한 인물이니 중용하라.”는 요청과 함께 병조정랑에 승직되었다.. 2020. 3. 27.
태종의 둘째아들 효령대군 효령대군은 조선전기 제3대 태종의 둘째 아들인 왕자이다. 이름은 이보(李), 초명은 이호(李祜). 자는 선숙(善叔), 호는 연강(蓮江). 태종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 閔氏)이다. 1407년(태종 7) 효령군(孝寧君)에 봉해지고, 1412년 효령대군으로 진봉(進封)되었다. 부인은 정역의 딸 예성부부인이며 6남 1녀의 자녀를 두었고 측실에게서 1남 1녀를 두었다. 독서를 즐기고, 활쏘기에 능해 태종을 따라 항상 사냥터에 다녔으며, 효성이 지극했다. 형인 양녕이 세자에서 폐위되자 자신이 세자로 책봉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동생 충녕이 세자로 책봉되자 불교에 심취하였다. 충녕과는 우애가 깊었고 세종이 자기 집에 들르게 되면 밤이 깊도록 국사에 대해 의논했다고 전한다. 특히, 불교에 독실하.. 2020. 3. 27.
태종의 장자, 양평대군 조선 전기의 왕족으로 태종의 장남이며 세종의 형이다.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궁중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여 폐위되고, 그 뒤 전국을 누비며 풍류를 즐겼다. 시, 서에 능하였다. 이름은 이제(李禔). 자는 후백(厚伯). 태종의 장남이고, 어머니는 여흥 민씨로 민제(閔霽)의 딸이며, 부인은 광주 김씨(光州金氏)로 김한로(金漢老)의 딸이다. 1394년(태조 3)에 태어났을 때 아버지 이방원(李芳遠)은 정안대군(靖安大君)이었지만, 6년 뒤 조선의 제3대 국왕으로 등극했다. 양녕대군에게 이런 변화는 수많은 왕자군(王子君)에서 독존의 지위를 예약하는 엄청난 행운의 도래였다. 기록되지 않은 사소한 실행(失行) 은 분명히 있었겠지만, 적어도 공식적으로 양녕대군은 이때부터 20세 무렵까지 매우 순조로운 성장과정을 거쳤다. .. 2020. 3. 26.
태종의 외척이자 공신, 민무구, 민무질 비극 민무구는 1410(태종 10)년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여흥(驪興). 민적(閔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민변(閔忭)이고, 아버지는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민제(閔霽)이며, 어머니는 송선(宋璿)의 딸이다. 태종비 원경왕후(元敬王后)의 동생이다. 동생 민무질(閔無疾) 등과 함께 태종의 외척이며, 정사(定社)·좌명(佐命)의 두 공신을 겸하여 높은 권세와 부귀를 누렸다. 그러나 협유 집권(挾幼執權)의 혐의를 받아 많은 관련자와 함께 참화를 당하였다. 즉, 1402년 왕이 창종(瘡腫)을 앓아 고생하고 있을 때 그들이 몰래 병세를 엿보며 어린 세자를 세우고 권력을 잡으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다. 민무구 형제의 옥은 1407년(태종 7) 7월에 발생하였다. 그런데 이미 1406년 8월 태종이 세자 양녕대군(.. 2020. 3. 26.
태종 관련 인물 - 심온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세종의 장인이다.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하고, 1392년 조선이 개국한 뒤 병조·공조의 의랑을 지내고, 정종 때 대호군, 1411년 풍해도관찰사, 대사헌, 1414년 형조, 호조 판서, 한성부판윤, 이조판서를 지냈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중옥(仲玉), 시호는 안효(安孝)이다. 세종의 장인이다. 조선 개국공신 청성백(靑城伯) 심덕부(沈德符)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낭장 문필대(門必大)의 딸이다. 1408년 딸이 충녕군(忠寧君)의 비가 되어 왕실과 인척관계를 맺은 후 벼슬이 높아졌으며, 부인도 변한국대부인(卞韓國大夫人)이 되었다 1385년(우왕 11) 사마시에서 생원 합격, 1386년(우왕 12) 문과에 급제하여 고려 조정에서 벼슬을 하다가 아버지와 함께 조선 창업에 참여, 간.. 2020. 3. 26.
태조시대 문신 - 이숙번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안산군지사 때 방원을 도와 제1차 왕자의 난에 공을 세웠다. 박포, 조사의 반란을 진압했다. 병조판서,좌참찬·찬성 등을 지내고 안성부원군에 봉해졌다. 공이 큰 것에 자만, 탄핵 받아 유배되었다.《용비어천가》편찬에 참여했다. 아버지는 이경이고 어머니는 영양남씨로 남휘주의 딸이다. 본래 윤공의 부인이었던 어머니 남씨는 남편 사후 두 아들 윤자량과 윤자당을 데리고 이경에게 개가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지략이 있었으며, 기억력이 비상했다 한다. 본관 안성(安城). 아버지는 경(坰). 1393년(태조 2) 문과에 급제했다. 1398년 안산군지사(安山郡知事)로 있을 때 방원(芳遠:뒤에 태종)을 도와 경복궁에 병력을 출동시켜 정도전(鄭道傳) ·남은(南誾) ·심효생(沈孝生) 등을 제거하.. 2020.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