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야기284 중종시대 관련 인물 - 회재 이언적 조선 중기 중종 때의 문신이자 유학자이다. 그의 기보다 이를 중시하는 주리적 성리설은 이황에게 계승되어 영남학파의 중요한 성리설이 되었으며, 조선 성리학의 한 특징을 이루었다.〈일강십목소〉는 그 정치사상을 대표한다. ‘이언적수필고본일괄’은 보물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경주 출신. 본관은 여강(驪江: 여주(驪州)). 초명은 이적(李迪)이었으나 중종의 명으로 언(彦)자를 더하였다.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자계옹(紫溪翁). 회재라는 호는 회암(晦菴: 주희의 호)의 학문을 따른다는 견해를 보여준 것이다. 할아버지는 참군 이수회(李壽會)이고, 아버지는 생원 이번(李蕃)이며, 어머니는 경주손씨(慶州孫氏)로 계천군(鷄川君) 손소(孫昭)의 딸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정립에 선구적인 인물로서 성리학의 방향과.. 2020. 4. 17. 화담 서경덕 과 황진희 화담 서경덕은 개성 출신이다. 본관은 당성(唐城). 자는 가구(可久), 호는 복재(復齋)·화담(花潭). 아버지는 부위(副尉) 서호번(徐好蕃)이며, 어머니는 한씨(韓氏)이다. 이(理)보다 기(氣)를 중시하는 독자적인 기일원론(氣一元論)을 완성하여 주기론(主氣論)의 선구자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남달랐던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1489~1546)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일화로, 그가 어릴 때부터 생명 현상의 이치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심이 남달랐다는 것을 짐작케 해주는 일화다. 서경덕이 12살 때(1501) 서당에서 [서경]의 ‘요전’에 나오는 ‘366일을 1년으로 삼고 윤달로 사시(四時)를 정하고 해를 이루게 했다’(三百有六旬有六日, 以閏月定四時成歲)라는 대목을 읽는데, 훈장님이 이를 정확히 설명해주지 못했.. 2020. 4. 17. 중종시대 학자 남명 조식 조식[曺植, 1501(연산군 7)~1572(선조 5)]은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이다. 자는 건중(健中) 혹은 건중(楗仲)이고, 호는 남명(南冥)·방장산인(方丈山人)이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본관은 창녕으로, 경상도 삼가현(三嘉縣) 토골[兎洞]에 있는 외조부 이국(李菊)의 집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학문연구에 몰두하여, 주자(朱子)·정자(程子) 등의 초상화를 손수 그려 병풍으로 만들어 펼쳐놓고 자신을 독려하였다 1520년 사마시 초시와 문과 초시에 합격했으나, 그 다음해 합격에 실패하였다. 1526년 부친이 죽자 상을 마치고 의령의 산사에서 공부를 하였다. 1531년 생계가 곤란하자 살림이 넉넉한 김해의 처가를 찾아가 탄동(炭洞)에서 '산해정'(山海亭)이란 정자를 지어놓고 생활하였다. 1533년 .. 2020. 4. 15. 퇴계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 논쟁 사단칠정은 이황과 고봉 기대승 간에 전개된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에 관한 이기론적(理氣論的) 해석을 둘러싼 논쟁을 말한다. 이황은 이(理)와 기(氣)가 시간상ㆍ공간상 분리되어 발동한다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하였고, 기대승은 이ㆍ기의 시공상의 분리를 생각하지 않는 이기겸발설(理氣兼發說)을 주장하였다. 양자는 모두 기발(氣發)에 의한 것이라는 입장인 기발일도론(氣發一途說)을 견지한다. ㆍ사단(四端) : 맹자가 내세운 인간도덕성의 근간이 되는 측은지심(惻隱之心)ㆍ수오지심(羞惡之心)ㆍ사양지심(辭讓之心)ㆍ시비지심(是非之心)으로, 이것들은 이(理)를 통해 나타나는 마음이라는 것 ㆍ칠정(七情) : 기쁨(喜)ㆍ노여움(怒)ㆍ슬픔(哀)ㆍ두려움(懼)ㆍ사랑(愛)ㆍ미움(惡)ㆍ욕심(慾)의 7가지 감정으로, 이것들은 .. 2020. 4. 15. 퇴계이황의 도산서원 도산서원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陶山面) 토계리(土溪里)에 있는 서원이다. 퇴계는 도산서당을 조영하기 훨씬 전부터 학문을 하며 제자들을 가르칠 건물을 지었다. 1546년 퇴계가 마흔여섯 되던 해에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경상도 예안 건지산 남쪽 기슭 동암(東巖)에 양진암(養眞庵)을 지었고, 1550년에는 상계의 퇴계 서쪽에 3칸 규모의 집을 짓고 집 이름을 한서암(寒棲庵)이라 하였다. 그 후 전국 각지에서 제자들이 모여들자 1551년 한서암 동북쪽 계천(溪川) 위에 '계상서당(溪上書堂)'을 짓고 제자들을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는 퇴계종택(宗宅)이 있다. 지금의 도산서원은 1574년(선조 7) 이황(李滉)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그의 문인(門人)과 유림(儒林)이 세웠다.. 2020. 4. 15. 중종시대 관련 인물 - 주세붕 <소수서원>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사림자제들의 교육기관으로 백운동서원을 세워 서원의 시초를 이루었다. 서원을 사림의 중심기구로 삼아 향촌의 풍속을 교화하려는 목적으로, 재정을 확보하고 서원에서 유생들과 강론하였다. 이후 이황의 건의로 소수서원의 사액을 받아 공인된 교육기관이 된 뒤 풍기사림의 중심기구로 자리잡았다 주세붕은 조선전기 풍기군수, 성균관사성,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경유(景游), 호는 신재(愼齋)·남고(南皐)·무릉도인(武陵道人)·손옹(巽翁). 고려 말에 고조가 경상도 합천에 우거했으나, 아버지대에 칠원(漆原)으로 옮겨살아 칠원에서 출생(일설에는 합천에서 출생했다고 함.)하였다. 증사복시정 주상빈(周尙彬)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주장손(周長孫)이고, 아버지.. 2020. 4. 15. 연산군 ~ 선조시대 인물 - 퇴계이황 퇴계 이황은 조선 중기의 대학자이다. 호는 ‘퇴계’이다. 평생 동안 학문 연구에 힘써 성리학(주자학)을 체계화했고, 도산 서당을 세워 제자를 길러 내는 데 힘썼다. 율곡 이이와 함께 조선의 대학자로서 쌍벽을 이루었으며, 붕당 가운데 동인이 그를 시조로 떠받들었다. 1501년 11월 25일 경상도 안동부 예안현 온혜리(現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 있는 할아버지 이계양(李繼陽)의 집에서 진사 이식(李埴)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여덟 남매의 막내인 퇴계에게는 형이 여섯, 누나가 하나 있었다. 모친은 춘천 박씨인 박치의 딸로, 전처인 의성 김씨와 사별한 후 아버지 이식이 들인 후처였다. 어릴 때부터 남달리 총명했던 그는 독서를 즐기는 모범생으로 자랐고, 열두 살 때 《논어》를 익힐 정도로 학문 수준도 .. 2020. 4. 15. 중종의 선택과 버림을 받은 조광조 조광조는 조선전기 교리, 부제학,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菴). 한성 출생. 개국공신 조온(趙溫)의 5대 손이며, 조육(趙育)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충손(趙衷孫)이고, 아버지는 감찰 조원강(趙元綱)이다. 어머니는 여흥 민씨(驪興閔氏)로 민의(閔誼)의 딸이다. 17세 때 어천찰방(魚川察訪)으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가, 무오사화로 화를 입고 희천에 유배 중이던 김굉필(金宏弼)에게 수학하였다. 학문은 『소학』·『근사록(近思錄)』 등을 토대로 하여 이를 경전 연구에 응용했으며, 이 때부터 성리학 연구에 힘써 김종직(金宗直)의 학통을 이은 사림파(士林派)의 영수가 되었다. 이 때는 사화 직후라 사람들은 그가 공부에 독실함을 보고 ‘광인(狂人)’이라.. 2020. 4. 14. 인종 실록 은 조선왕조 제12대 왕이었던 인종의 원년부터 재위기간인 1544년11월에서 1545년7월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사거이다. 정식 이름은 이며, 모두 2권 1책으로 활판으로 간행되었다. 인종의 즉위년인 1543년 11월 16일에서 12월 말까지의 기사는 제 105권에 합편되어 있다. 인종은 재위기간이 9개월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의 편찬에 착수하지 못하였고, 명종이 즉위한 뒤에도 을사사화가 발생하여 착수하지 못하였다. 명종 원년인 1646년 가을에 이르러 비로소 춘추관에 실록청을 설치하고 과 을 동시에 쳔찬하게 되었다. 이때 우의정 정순붕이 실록청 총재관, 대제학 신광한 등이 실록청 당상광에 임명되어 편찬의 실무를 관장하였다. 명종 2년인 1547년 12월에 우의정 정순붕이 총재관을 사직하고 좌의정 .. 2020. 4. 13. 이전 1 ··· 14 15 16 17 18 19 20 ··· 3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