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는 작지만 우리 역사의 시작이 된 곳이기도 하다. 단군왕검이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 것을 시작으로 역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강화도는 예로부터 하늘이 내려준 요새였다. 서해바다 가운데 떠 있는 섬인 데다, 적군이 배를 타고 쳐들어와도 서쪽과 남쪽에 갯벌이 많아 배가 닿기 힘들고, 북쪽은 한강과 예성강이 흘러 내려 물길이 거칠었기 때문이다.
강화해안도로 걷가 여행의 시작점은 강화대교를 건너자마자 바로 왼쪽에 위치한 강화 역사관, 강화도의 역사를 알고 강화도를 보면 좋은 여행이 된다. 갑곶돈대는 강화역사관 위쪽에 위치한 포대다. 서울의 주요 방어기지인 동시에 외적이 침입하였을 때 왕실이 피난하는 제일 후보지였다. 고려시대에 청나라의 침입에 대비하여 성곽과 군사시설을 강화했고, 조선시대 고종 3년 프랑스군이 쳐들어온 곳이기도 하다. 역사가 말하듯, 갑곶돈대는 강화의 가장 중요한 관문이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용진진과 광성보 덕진진이 해안도로에 서 있다.
'돈대'는 강화해안도로를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예부터 외국 함대들과 치열한 격전의 장소였던 강화는 배수진을 치고 적을 막아야 하는 관문이 필요했다. 53개소의 크고 작은 돈대들은 섬 주위에 규칙적으로 분포되어 먼바다 풍경까지 덤으로 즐길 수 있다. 강화역사관에서 광성보를 거쳐 초지진으로 이어지는 길은 왼쪽으로 갯벌이 펼쳐지고 구간별로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어 쉬엄쉬엄 걸으며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주말마다 자전거를 타른 여행객들이 많다.
강화도에서 서울로 가는 방면에 있는 조치대교를 건너기 전, 초지진을 만날 수 있다. 초지진은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하여 조선 효종이 구축한 요새이다. 그 후 근대로 들어오면서 초지진에서는 외국과 잦은 마찰이 빚어졌다. 당시 프랑스의 극동합대, 미국 로저스의 아세아함대 및 일본 군함을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인 장소다. 지금도 그때의 흔적으로 당시의 대포가 포대를 지키고 있다.
강화도는 고려시대 몽골, 거란족의 침입으로 고려 왕들의 피난쳐가 되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병자호란으로, 근대에는 프랑스 군함사건, 미국 군함사건, 운요호 사건 등 다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강화도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로 역사의 흔적을 품고 있다. 해안도로를 걸으며 근대화 과정의 전투와 왕족들의 피신처였던 강화도 구석구석을 확인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걸으면 역사 여생도 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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