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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님의 여행 이야기235

안동 하회 마을을 거닐다 안동 하회 마을은 하회마을은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 성마을이며, 와가와 초가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된 곳이다. 특 히 조선시대 대유학자인 류운룡 선생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류 성룡 형제가 자라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을 이름을 하회(河回)라고 한 것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데서 유래되었다. 하회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태극 형·연화부수형·행주형에 해당하며, 이미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도 유명하였다. 마을의 동쪽에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해발 327m의 화산이 있고, 이 화산의 줄기가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면서 마을의 서쪽 끝까지 뻗어있 으며, 수령이 600여 년 된 삼신당 느티나무가 있는 지역이 마을에서 가장 높.. 2020. 6. 25.
겹벚꽃이 예쁜 순천 < 선암사 > 선암사는 순천의 조계산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사찰이다. 2009년 12월에 사적 제507호로 지정되었으며, 2018년 6월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기도 하였다. 선암사는 542년(진흥왕 3)에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처음으로 개창하여 비로암(毘盧庵)이라고 하였다고 하나 이것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 875년(헌강왕 1)에 도선(道詵)이 창건하여 선암사라고 하였다는 설이 더 신빙성이 있다. 박전지(朴全之)가 쓴 「영봉산용암사중창기(靈鳳山龍巖寺重創記)」에 지리산 성모천왕(聖母天王)이 “만일 세개의 암사(巖寺)를 창건하면 삼한이 합하여 한 나라가 되고 전쟁이 저절.. 2020. 6. 24.
수원 화성 행궁 안녕하세요. 무님의 여행이야기 을 소개합니다. 은 화성행궁은 조선 정조 13년(1789)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부 읍치 자리로 옮기고, 원래 수원부 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겨 오면서 관청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왕이 수원에 내려오면 머무는 행궁으로도 사용했다. 정조는 수원도호부를 화성유수부로 승격시켜 위상을 높인 한편, 1795년 화성행궁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치르기 위하여 건물의 이름을 바꾸거나 새로 지었다. 1796년에 전체 600여 칸 규모로 완공되었다. 행궁(行宮)은 왕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거나 지방에 별도의 궁궐을 마련하여 임시 거처하는 곳을 말하며, 그 용도에 따라서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전쟁과 같은 비상시에 위급함을 피.. 2020. 6. 21.
조선 중기의 문신 대동법을 시행한 < 오리 이원익 생가, 충현박물관> 안녕하세요. 충현박물관을 소개합니다. 충현박물관은 오리 이원익의 생가터에 자리하고 있다. 오리 이원인 선생은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명신의 한 사람이다. 그의 생몰년은 그를 규정하는 대표적 특징을 알려준다. 그는 87세로 매우 장수했고, 그런 까닭에 임진왜란(45세, 이조판서)과 인조반정(76세, 영의정), 정묘호란(80세, 영중 추부사) 같은 조선 중기의 중요한 사건을 모두 통과했다. 나이와 관직이 보여주듯이 그는 그 사건들의 중심에 있었다. 어떤 사람의 지위와 임무가 높고 중요할수록 그의 일상은 평온보다는 변화와 격동에 지배되기 쉽다. 그 사람의 성향에 따라 그것은 그에게 행복이기도 하고 고통이기도 할 것이다. 조선 중기는 뛰어난 인물들이 특히 많이 배출된 시기였다.. 2020. 6. 19.
바다가 손에 잡히는 절 <해동용궁사> 해동용궁사는 많이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부산의 관광지로도 손꼽히는 곳으로 바닷가를 바로 접해있어 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절이다. 또한 역사가 있는 절이지만 절집은 오래된 역사가 없다. 이는 해동용궁사의 창건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해동용궁사는 옛날부터 숱한 신비한 변화를 간직하고 인류와 역사를 함께 해온 바다! 잔잔함의 평화로움이 있는가 하면 폭풍우를 동반한 성냄도 있다. 대개의 사찰이 산중 깊숙이 있는 것과는 달리 해동용궁사는 이름그대로 검푸른 바닷물이 바로 발아래서 철썩대는 수상법당이란 표현이 옳을 것이다. 무한한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님은 이런 바닷가 외로운 곳(海岸孤節處)에 상주하시며 용을 타고 화현하신다 하셨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관음신앙이 해안이나 섬에 형성되어 있으니 양양 낙산사, .. 2020. 6. 19.
조선시대 왕들의 정원 < 창덕궁 후원 > 안녕하세요. 창덕궁 후원을 소개합니다. 창덕궁 후원은 왕들의 정원이라 불리는 곳으로 비원이라는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다. 후원은 궁궐의 정원이라는 뜻에서 금원(禁苑), 궁궐의 북쪽에 있다 하여 북원(北苑), 또 뒤쪽에 위치한 정원이라는 뜻에서 후원이라 불러왔다. 후원은 엄밀히 말해 창덕궁의 후원이지만 이 후원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 창덕궁과 창경궁의 뒤쪽이 되어 자연히 두 궁궐에서 공유하고 있다. 후원이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초기인 태종 때부터이다. 《왕조실록》 태종 6년(1406) 4월에 "창덕궁 동북쪽에 해온정(解慍亭)을 지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해온정 앞에는 연못이 있어 잔치를 벌이고 등(燈) 놀이를 하였는데, 태종 14년(1414)에 신독정(愼獨亭)이라 이름을 고쳤다. 태종 6년(1406).. 2020. 6. 17.
절벽 위 석탑이 아름다운 < 청량사 > 청량사는 거대하고, 빽빽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열두 봉우리가 나그네의 눈길을 잡는다. 그 연화봉 기슭 한 가운데 연꽃처럼 둘러쳐진 꽃술 자리에 자리 잡은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송광사 16국사의 끝 스님인 법장 고봉선사(1351-1426)에 의해 중창된 천년 고찰이다. 창건당시 승당등 33개의 부속 건물을 갖추었던 대사찰로 봉우리마다 자리잡은 암자 에서는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청량산을 가득메웠다고 한다. 또한 자연경관이 수려한 청량산에는 한때는 신라의 고찰인 연대사(蓮臺寺)와 망선암 (望仙菴)등 대소 27개소의 암 자가 있어서 당시 신라 불교의 요람을 형성하기도 하였다.하지만 조선시대 불교를 억압하는 주자학들에 의해 절은피폐하게 되어 현재는 청량사와 부속건물인.. 2020. 6. 16.
다산 정약용 생가, 실학박물관, 다산 공원 안녕하세요. 다산 정약용 생가를 소개합니다. 정약용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대의 개혁가라 할 수 있다.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부국 강병을 주장하였던 인물이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년)이 태어나서 살다간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의 조선 사회는 농경 사회에서 상공업 사회로 변화하는 시기였다. 따라서 농경 사회에서 그 나름의 보편성과 합리성을 가진 철학 체계로 사상적 지주가 되었던 성리학은 시대 사상으로서의 역할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상공업 사회에 부응하는 기술 문명과 부국강병의 관심을 제고하는 북학 사상이 새로운 시대 사상으로 18세기 중반에 태동한 배경이다. 정약용을 떠올리면 오랜 시간 동안 겪어야 했던 귀양살이를 말하지 않을 수 없.. 2020. 6. 15.
서애 류성룡의 < 병산서원 > 안녕하세요 이번은 안동의 병산서원을 소개해 본다. 병산서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으로 한국의 서원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병산 서원은 1572년 선조 5년에 서애 류성룡 선생이 지금의 병산으로 옮긴 것이다. 이곳에는 서애 류성룡과 그의 아들인 류진이 배향되어 있다. 류성룡은 임진왜란 때 총책임자를 맡아 승리로 이끌었으며 후에 이라는 책을 남기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서원건축은 교학(敎學)을 위한 강학 건물과 제향(祭享) 공간인 사당, 부속시설 이렇게 세 영역으로 구분되는데, 병산서원의 경우는 다음과 같다. 강학건물군 : 복례문, 만대루, 동서재, 입교당, 장판각 제향건물군 : 신문, 존덕사, 전사청 부속시설군 : 주소(庫直舍), 달팽이 뒷간, 광영지, 기타 병산서원의 입구인 은 서원의 정문은 .. 2020. 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