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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일 전쟁 >의 진행 과정 7월 25일 아산 앞바다 풍도에서 일본해군이 청 해군을 기습 선제공격한다. 당시 청은 군함 2척(제원, 광을)은 텐진항을 출발하여 아산만으로 이동 중이었고 이 경로를 파악한 일본 군함 3척(요시노, 나니와, 아키스시마)은 풍도에서 매복해 청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청은 일본과 전운이 감돌고는 있었지만 전쟁중은 아니었고, 선전포고 없이 수송선을 침몰시키는 미친 짓을 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고 병력을 수송했다. 그리고 일본은 그렇게 했다.) 일본해군의 포격을 받은 광을호는 도망가다 화약고가 폭발하여 좌초되고 제원호만 빠져나간다. 뒤이어 또 다른 군함 1척(조강)과 수송선(영국상선 고승)이 나타나 고승호는 격침되었고 조강호는 나포된다. 여기서 고승호 격침이 국제적 논란을 불렀다. 동학군과 싸우러 조선에 가.. 2020. 11. 23.
일본군 경복궁을 점령하다 - 전쟁의 서막 < 청. 일 전쟁 > 1894년 봄 전라도에서 제1차 동학농민군(東學農民軍)이 봉기하자 조선 정부는 양력 5월 7일 홍계훈(洪啓薰)을 양호초토사(兩湖招討使)로 임명, 진압하도록 명하였다. 그러나 장성에서 정부군을 격파한 농민군은 31일 전주까지 함락시켰다. 6월 2일 전주가 함락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정부는 자력으로는 농민군을 진압할 수 없다고 판단, 임오군란 진압시의 전례에 따라 청국의 주차조선총리교섭통상사의(駐箚朝鮮總理交涉通商事宜)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원병을 요청하였다. 위안스카이를 통해 파병 요청을 받은 청국의 직례총독 겸 북양대신(直隷總督兼北洋大臣) 이홍장(李鴻章)은 6월 6일, 톈진조약[天津條約]에 의거하여 일본에 파병 사실을 통고하는 한편, 직례제독 예즈차오[葉志超]와 딩루창[丁汝昌] 휘하의 군사 2,800명을 .. 2020. 11. 22.
가을이 좋을까? 겨울이 좋을까? < 백양사에서 약사암까지 > 백양사는 백양사는 노령산맥 끝자락에 호남평야를 마주하고 솟아 오른 백암산(741m)에 위치하고 있다.조선왕조의 정치적 설계자인 정도전은 ‘이 산만은 장성 북쪽 30리에 있는데 이름을 白巖이라 하고, 혹은 암석이 모두 흰색이라서 그렇게 부른다고도 한다. 석벽이 깎아지른 듯 험하고 산봉우리가 중첩하여 그 맑고 기이하며 큰 모습이 실로 한 곳의 명승지가 될 만하다.’고 하였다. 백양사는 백암산 백학봉 아래 상왕봉, 사자봉, 금강봉, 월영봉, 수령봉 등 여러 봉우리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조선초 백양사에 주석하였으며 선종판사였던 晦堂 中皓는 백암사의 사세에 대하여 ‘우뚝한 산 빛은 항상 푸르게 솟아 있고 청정한 시냇물 낮에도 햇빛을 머금었네.’라고 하였다. 우암 송시열의 후손이자 애국지사인 宋秉璿(1836-19.. 2020. 11. 21.
당일도 좋고 1박도 좋은 < 익산 미륵사지, 왕궁리 유적지 > 익산 여행의 시작은 미륵사지부터 시작한다. 서울에서 ktx를 타고 1시간 30분이면 익산역에 도착할 수 있다. 익산역에 도착해서 버스를 이용하여도 되고 택시를 이용하여도 좋다. 택시를 이용하면 만오천원 정도가 나오며 시간은 25분 정도가 소요된다. 미륵사지 주차장에 내리면 익산 국립박물관이 있고 박물관을 지나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다. 익산 미륵사지는 백제 최대 사찰이었던 미륵사지의 3원(三院) 가운데 서원의 금당 앞에 있는 탑으로 오랜 세월 동안 무너져 거의 절반 정도만 남았다. 현재 남아있는 국내 최대의 석탑이며 동시에 가장 오래된 백제의 석탑이기도 하다. 2009년 1월 해체수리 중에 초층 탑신 내부 심주에서 완전한 형태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삼국유사』에 따르면, 미륵사는 백제 무왕대에 미륵삼.. 2020. 11. 19.
제주 토박이의 일출 명소 < 절물 오름 > 제주 절물오름은 제주시 절물 자연 휴양림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오름으로, 오름 북쪽 기슭을 끼고 절물 휴양림이 조성되어 있으며, 절물 약수터[샘물]로 유명하다. 이 오름은 두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큰 봉우리를 큰 대나, 작은 봉우리를 족은 대나로 부르고 있다. 가까이에 절이 있었던 데서 절물이라 불리며, 절물 오름이라는 이름은 이 절물에 연유하며 한자로는 사악(寺岳)이라고 명명되고 있다. 그 절이 정확히 어디에 있었고 언제 없어졌는지 분명치 않다. 한편, 이 오름은 대나 오름 또는 다나 오름이라고도 불린다.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단하봉(丹霞峰), 단라악(丹羅岳) 등의 옛 표기가 남아 있는 걸 보면 절물 오름 이전의 호칭인 듯하다. 오름 동사면에는 원형의 분화구가 잡목과 가시덤불로 덮혀 있다. .. 2020. 11. 18.
고종이 도성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하다 < 아관파천 > '아관파천'은 '아(俄)'는 러시아 '관(館)'은 '공사관(公使館)'의 관을 뜻하고 '파천(播遷)'이라는 단어는 '임금이 도성을 떠나 난리를 피하는 일을 이르던 말'이다. 중국어로 러시아를 뜻하는 '아라사(俄羅斯)'와 일본식 음차인 '노서아(露西亞)'의 앞머리를 따서 아관파천(俄館播遷)또는 노관파천(露館播遷)이라고 한다. 아관파천은 1896년 2월 11일부터 다음해 2월 25일까지 조선의 국왕 고종과 왕세자였던 순종이 을미사변 이후 일본군과 친일내각이 장악한 경복궁(건천궁)을 탈출해 어가를 아라사(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 피신한 사건으로 이 사건으로 조선의 정세가 바뀌었다. 수틀리면 경복궁에 칼들고 달려가던 일본이었지만, 러시아의 허가 없이는 건드릴 수 없는 러시아 외교공관에 머무는 고종을 일본은 더 이.. 2020. 11. 18.
성인 남성의 상투를 자르다 < 을미개혁 > 을미개혁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김홍집(金弘集)내각이 추진한 근대적 개혁운동으로 1895년 8월 하순부터 고종의 러시아공사관 피신이 있었던 1896년 2월 초순까지 김홍집(金弘集)이 추진한 근대적 개혁의 시도이다. 을미사변을 순식간에 성공시킨 일본은 고종의 명을 받아, 김홍집(金弘集)을 중심으로 한 친일내각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갑오년 청-일전쟁 직후부터 진행되어오던 개혁(갑오개혁)을 이어 계속 추진하게 되었다. 갑오년 청-일전쟁 직후인 1894(고종 31) 7월 초부터 1896년 2월 초까지 약19개월간 3차에 걸쳐 추진된 일련의 개혁운동을 역사상 광의의 갑오개혁(甲午改革)이라고 한다. 그러나 을미사변을 계기로 추진된(1895. 8 하순 ~ 1896. 2 초순) 개혁을 따로 분리하여 ‘을미.. 2020. 11. 17.
충주호의 전망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 단양 제비봉 > 단양의 제비봉은 제비봉은 충북 단양군 단양읍에서 서쪽인 충주호 방면의 단성면 장회리에 위치한 산이다. 높이 721m의 산이다. 단양팔경 중 수상관광지로 유명한 구담봉과 옥순봉에서 동남쪽 머리 위로 올려다 보이는 바위산이 바로 제비봉이다. 산행은 장회리에서 출발해 정상에 오른 뒤 다시 장회리로 내려오는 5㎞ 길이의 코스가 일반적이다. 주변에 단양팔경·충주호·고수동굴·단양온천 등 관광지가 많아 등산과 함께 관광을 겸할 수 있다. 특히 제비봉 서쪽 골짜기가 바로 비경지대인 설마동계곡이어서 산과 계곡, 호수 모두가 수려하기 그지 없으며 가을 단풍철에는 그 경관이 극치를 이루고 산행 길목에 "오성암" 이라는 산사가 자리 잡고 있어 산행인들의 좋은 쉼터가 되고 있다. 산 이름이 제비봉이라 불리우는 것은 장회나루에서.. 2020. 11. 16.
' 나는 조선의 국모다 ' 명성황후시해 < 을미사변 > 을미사변은 1895년 8월 20일(양력 10월 8일) 새벽 일본의 공권력 집단이 서울에서 자행한 조선왕후(명성황후) 살해사건이며 명성황후시해사건(明成皇后弑害事件)이라고도 한다. 갑오개혁을 통하여 조선 내정에 관여하게 된 일본은 청일전쟁에 승리한 뒤 박영효(朴泳孝)·김홍집(金弘集)을 중심으로 한 친일내각을 만들어 조선 침략을 위한 영향력 확장에 힘을 기울였다. 이때 프랑스·러시아·독일 등 3국은 일본의 대륙침략 저지를 위해, 청일전쟁의 승리로 일본이 차지한 랴오둥반도[遼東半島]를 청국에 반환할 것을 요구한, 이른바 '삼국간섭'으로 일본의 세력확장에 제동을 걸었다. 그동안 일본의 강압하에 내정개혁을 추진한 조선정부는, 러시아공사 K.베베르와 제휴하고 친일세력을 제거하기 시작하였는데 명성황후가 이를 주도하였다.. 2020. 1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