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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갑오개혁 2차개혁 때는 의정부를 내각이라 고치고 7부를 두었다. 인사제도는 문무관(文武官)을 개편하고 월봉제도(月俸制度)를 수립하였다. 지방행정구역은 8도(道)를 23부(府) 337군으로 개편하였다. 지방관으로부터 사법권과 군사권을 박탈함으로써 횡포와 부패를 막아 지방행정체제를 중앙에 예속시키는 근대 관료체제를 이룩하였다. 사법제도는 행정기구에서 분리시켜 재판소를 설치하고 2심제(二審制)가 채택되었다. 1심 재판소로서 지방재판소와 개항장재판소(開港場裁判所)를, 2심 재판소로는 고등재판소와 순회재판소를 설치하였고, 왕족에 대한 형사재판을 위해서 특별법원을 두었다. 그러나 제2차 개혁은 개혁을 추진하던 박영효가 1895년 반역음모 혐의로 정계에서 쫓겨나 일본에 망명하면서 끝나고 말았다. * 홍조 14조 내용 청나라에.. 2020. 11. 16.
신라가 만든 철옹성 < 보은 삼년산성 > 보은의 삼년산성은 보은읍 동쪽 오정산에 있는 신라시대의 산성이며 우리나라 산성을 대표할 만한 대단한 석축산성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삼년산성은 신라 자비왕 13년(470)에 쌓았고 소지왕 8년(486)에 이찬 실죽을 장군으로 삼아 일선(지금의 구미시 선산읍 일대)의 장정 3,000명을 징발하여 개축하였다고 한다. 보은은 지증왕 3년(553) 삼년산군이 되었고 경덕왕 1년(742)에는 삼년군으로 바뀌었다. 이때 삼년산·삼년이라는 지명이 삼년산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거꾸로 먼저 이 지역의 이름이 있고 거기서 산성 이름을 붙였을 수도 있다. 어쨌든 『삼국사기』에는 성을 다 쌓는 데 3년이 걸렸으므로 삼년산성이라 했다고 적혀 있다. 나중에는 오정산에 있는 산성이라 하여 오정산성이라 불리기도 했다. 보은은.. 2020. 11. 15.
외세를 몰아내고 내 나라를 지켜라 < 동학농민운동 2차 봉기 > 조선 조정은 고부에서 일어난 민란을 수습하기 위해 안핵사로 이용태를 파견했으나 이 인선이 대실패였다. 이용태는 조정에서 백성을 달래고자 내려보냈던 안핵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다 난리를 일으키는 동학 교도들의 잘못이다."라는 어이없는 이유를 들어 조정과 동학민들과의 약속을 어기고 자기 멋대로 동학 교도들을 체포하거나 재산을 빼앗고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물론 그냥 데모 수준을 넘어 유혈 사태로 번진 민란이었던 만큼 정부는 슬쩍 넘기기 쉽지 않았던 사태였긴 했지만, 하다못해 일반적인 민란의 뒤처리 수준 정도로만 일을 처리했더라도 대책 없이 사태가 커지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이용태의 행위에 고부 백성들은 크게 분노했다. 그래서 전봉준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던 형.. 2020. 11. 14.
농민의 분노가 폭발했다 < 동학농민운동 1차 봉기 >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고종 31) 전라도 고부의 동학접주 전봉준(全琫準) 등을 지도자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운동으로 처음 교조 최제우(崔濟愚)의 신원운동(伸寃運動)을 통하여 정치운동으로 성장하고 뒤에 민란과 결합하여 동학농민운동으로 전개되었는데, 황현(黃玹)이 “동학이 난민과 합쳐졌다”라고 표현한 것은 이 경우를 가리킨 것이다. * 동학농민운동의 배경 조선왕조 후기에 이르러 정치적 부패, 탐관오리의 행패, 세금의 과다한 부과 등으로 농민들은 심한 고통을 받게 되었다. 또한 밖으로는 외국 세력의 침투에 따라 국가의 존립이 위협받게 되었고, 안으로는 농민의 사회의식이 급속도로 발전되면서 각종 민란까지 발생하였다. 이미 16~17세기에 임술(壬戌, 1562) 임거정사(林巨正事), 정축(.. 2020. 11. 14.
눈이 내리길 기다리는 마음 < 월정사 전나무 숲길 > 오대산 높이 1,565.3m이다. 태백산맥 중심부에서 차령산맥이 서쪽으로 길게 뻗어나가는 지점의 첫머리에 우뚝 솟아 있다. 주봉우리인 비로봉 외에 호령봉(虎嶺峰:1,531m)·상왕봉(上王峰:1,491m)·두로봉(頭老峰:1,422m)·동대산(東臺山:1,434m) 등 고봉이 많다. 크게 위의 다섯 봉우리 및 그 일대의 사찰들로 구성된 평창 오대산지구와 노인봉(老人峰:1,338m) 일대의 강릉 소금강지구로 나뉜다. 전형적인 토산(土山)이며 토양이 비옥해 산림자원이 풍부하고 겨울철에는 강설량이 많다. 특히 월정사 입구에서 시작되는 빽빽한 젓나무 숲과 중턱의 사스래나무, 정상 부근의 눈측백나무와 주목 군락, 호령계곡의 난티나무 군락이 장관이다. 겨울 눈이 많이 내리는 오대산의 설경은 산에 좀 다닌다는 사람들 사이.. 2020. 11. 13.
3일 천하 < 갑신정변 > 갑신정변은 1884년(고종 21) 김옥균(金玉均)을 비롯한 급진개화파가 개화사상을 바탕으로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이다. 조선 후기에 봉건 체제의 틀을 깨트리고 자본주의 및 근대 사회로 나아가려는 사상을 가진 급진 개화파들(일부 중인 출신 지식인 및 양반들)이 조선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뭉치게 되었다. 급진 개화파들은 낡은 조선의 정치를 개혁하고 세계 정세에 맞추어 조선을 변화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급진 개화파들은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서재필, 서재창, 이규완, 유혁로, 정난교, 신응희, 박영교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은 서구 사회에 관한 문명 서적을 통해서 실학 사상의 긍정적 요소와 세계 정세의 흐름 및 자본주의에 관한 새로운 .. 2020. 11. 13.
산 전체가 유적지인 경주 남산 < 삼릉 트레킹 > 남산은 경주시의 남쪽에 솟은 산으로 신라인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다.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의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40여 개의 계곡과 산줄기들로 이루어진 남산은 남북 8km, 동서 4km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내린 타원형이면서 약간 남쪽으로 치우쳐 정상을 이룬 직삼각형 모습을 취하고 있다. 100여 곳의 절터, 80여 구의 석불, 60여 기의 석탑이 산재해 있는 남산은 노천박물관이다. 남산에는 40여 개의 골짜기가 있으며, 신라 태동의 성지 서남산, 미륵골·탑골·부처골 등의 수많은 돌 속에 묻힌 부처가 있는 동남산으로 구분된다. 남산 서쪽 기슭에 있는 나정은 신라의 첫 임금인 박혁거세의 탄생신화가 깃든 곳이며 양산재는 신라 건국 이전 서라벌에 있었던 6촌의 시조를 모신 사당이다. .. 2020. 11. 12.
1차 갑오개혁을 알아보자 갑오개혁은 1894년(고종 31) 7월 초부터 1896년 2월 초까지 약 19개월간 3차에 걸쳐 추진된 일련의 개혁운동을 말한다. 을미사변을 계기로 추진된(1895년 8월~1896년 2월) 제3차 개혁을 따로 분리하여 ‘을미개혁’이라고 부른다. 1. 갑오개혁의 배경 갑호개혁은 갑오경장(甲午更張)이라고도 한다. 2차에 걸쳐 봉기한 반봉건·외세배척운동으로서의 동학농민운동이 실현되지 못한 가운데 이를 진압할 목적으로 정부는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였고 일본도 톈진조약[天津條約]을 구실로 군대를 파견하였다. 그러나 동학농민군은 청나라와 일본의 출병한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하여 폐정개혁안을 제시하였고, 정부가 이에 동의함에 따라 양국은 더 이상 조선에 주둔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에 청나라는 일본에 대해 공동 철병.. 2020. 11. 12.
동화 속에 나올 듯한 숲길 < 인제 자작나무숲 > 자작나무는 줄기의 껍질이 종이처럼 하얗게 벗겨지고 얇아서 이것으로 명함도 만들고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사랑의 글귀를 쓰기도 하는 낭만적인 나무다. 그 껍질은 거의 기름기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썩지 않으므로 신라시대의 고분 속에서 자작나무 껍질에 글자를 새겨 놓은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자작나무는 한자로 화(華)로 쓴다. 결혼식을 화촉이라고 흔히 말하는데 옛날에 촛불이 없어서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촛불을 대용했기 때문이다. 자작나무 목재는 단단하고 치밀해서 조각재로 많이 쓰이는데 특히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국보 팔만대장경의 일부가 이 자작나무로 만들어져서 그 오랜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벌레가 먹거나 뒤틀리지 않고 현존하고 있다. 자작나무는 추운 나라에서 잘 자라는 나무이지만 우리나라에도 그런 멋진 숲이 .. 2020. 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