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639

임술민란의 도화선 < 진주 농민 봉기 > 조선 철종 때인 1862년, 경상도 진주에서 관리들의 횡포에 저항하며 농민들이 일으킨 봉기이다. 이 해 전국 곳곳에서 농민 봉기가 잇달았으며, 고종이 임금이 된 후에도 계속되어 1894년에 일어난 동학 농민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조선 후기에 사회모순이 전면화되는 상황에서 일어났다. 그 첫째로 농업 생산력과 상품화폐 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농민층이 급속히 분해되었으며, 그 결과 자영농민층의 몰락이 심화되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주와 소빈농(小貧農)·작인(作人) 사이에 경제적 이해를 둘러싼 대립이 첨예화되었다. 둘째, 위정자들도 '삼정의 문란'이라고 걱정할 정도로 조세를 둘러싼 폐단이 심각하였다. 조세문제는 농민들이 민란을 일으키면서 제기한 문제에 잘 나타나 있다. 농민들은 각종 조세가 토지에 집중 부과.. 2020. 10. 30.
인종, 명종시대 관련 인물 1. 인성왕후 - 조선 제12대 왕 인종(仁宗)의 비(妃)이다. 아버지는 금성부원군 반남 박씨 용(墉)이며 어머니는 의성 김씨로 1514년(중종 9년) 9월에 태어났다. 1524년(중종 19년) 박씨 나이 11세 되던 해에 인종과 혼인하여 세자빈에 책봉되었다. 1544년 11월 인종이 왕으로 즉위하고 왕비가 되었으며 이때 그녀의 나이 31세였다. 태어난 지 6일 만에 생모 장경왕후가 죽고 시기심이 많은 계모 문정왕후의 손에 자라야 했던 인종은 문정왕후에 의해 여러 차례 죽임을 모면해야 했다. 그럼에도 인종은 효성이 부족함을 자책하고 문정왕후의 아들 경원대군(명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인성왕후와의 슬하에 자녀를 두지 않았다고 전한다. 인종의 재위기간은 9개월이었으며 인성왕후는 인종 사망 후 32년간을.. 2020. 10. 30.
하늘과 가까워 하늘길이라는 < 정선 하늘길 > 하늘길은 강원도 정선군 백운산(白雲山, 해발 883m) 일대를 걷는 트래킹 코스로 그 길이는 약 10km에 이른다. 이 일대는 해발 1000m가 넘는 산지로 험준한 지형을 이룬다. 코스의 일부는 가파른 오르막길과 내리막이 이어진다. 정선 카지노 강원랜드에서 시작하여 하이랜드 리조트까지 이어진다. 특히 이 일대는 많은 종의 고산식물들이 자라는데 한국 야생화의 보고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정선 하늘길은 백운산 야생화탐방길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수많은 야생화가 매월 새롭게 피어나 군락을 이룬다. 발아래 구름을 깔고 걷는 하늘길은 백두대간을 조망하며 야생화의 환대를 받는 길이다. 옛날 석탄을 실어 날랐던 운탄길로 세월이 흐러 지금은 하늘고 가장 가까운 에코기로 면화하였다. 석탄을 나르던.. 2020. 10. 29.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고달프고 가난해졌다 < 삼정의 문란 > 삼정은 전정과 군정, 환정(환곡)을 일컫는다. 전세 : 토지(밭)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조선 세종 때 대대적으로 정비되었다. 1443년(세종 25년)에는 풍년과 흉년에 따라 수확량을 9단계로 나눈 연분 9등법이, 이듬해에는 밭의 비옥도에 따라 6단계로 구분한 전분 6등법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너무 복잡해 16세기 후반에는 밭 1결당 대략 곡식 4두-6두 정도를 거두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관리들은 각종 세금을 쉽게 걷기 위해 토지에 전세 외에도 다양한 잡세를 부과했다. 여기에 향리와 수령들의 부정부패까지 겹쳐 농민들의 부담이 크게 증가했다. 군포 : 군역의 대가로 내는 포목(옷감)을 말한다. 조선 시대 후기에는 대부분 군포를 내고 군대에 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지배층은 갖은 수를 써 자신.. 2020. 10. 29.
중종시대 관련 인물 1. 주세붕 - 조선전기 풍기군수, 성균관사성,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학자이다.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경유(景游), 호는 신재(愼齋)·남고(南皐)·무릉도인(武陵道人)·손옹(巽翁). 고려 말에 고조가 경상도 합천에 우거했으나, 아버지대에 칠원(漆原)으로 옮겨살아 칠원에서 출생(일설에는 합천에서 출생했다고 함.)하였다. 증사복시정 주상빈(周尙彬)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주장손(周長孫)이고, 아버지는 주문보(周文俌)이다. 어머니는 별호군 황근중(黃謹中)의 딸이다. 선대에는 모두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으며 주세붕의 현달로 증직되었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1522년(중종 17) 생원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권지부정자로 관직을 시작하였다. 그 뒤 승문원정자.. 2020. 10. 28.
60년 세도정치 < 안동 김씨 > 세도정치란 ‘정치는 널리 사회를 교화시켜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도리’라는 사림(士林)의 통치이념에서 나온 이상적인 정치 도의를 의미하였으나, 척신(戚臣) 또는 총신(寵臣)이 강력한 권세를 잡고 전권(專權)을 휘두르는 부정적 정치형태인 홍국영(洪國榮) 이후의 조선 후기 세도정치를 지칭하는 말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려나갈 수 있는 교화원리로서의 세도는 조광조(趙光祖) 이래 정권을 담당한 사림이 실천해야 할 책무로서 자임한 정치형태였고, 이와 같은 정치자세의 정당성은 사림정치의 권위를 원칙적으로 뒷받침하였다. 그러나 정조 초의 총신 홍국영이 정권을 담당한 이후 ‘世道政治’는 ‘勢道政治’로 타락, 변질되어 권세정치의 형태로 나타났다. 홍국영은 척신으로서 사도세자(이후 장헌세자)의 아들.. 2020. 10. 28.
가까운 곳에서 가을을 만날 수 있다 < 서오릉 길 > 서오릉은 서울 서쪽과 경계를 이루는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에 창릉·익릉·명릉·경릉·홍릉 등 5기의 왕릉이 있어 서오릉이라 한다. 총면적 55만 3,616평으로 구리시의 동구릉 다음으로 큰 조선왕조의 왕실 족분군이다. 서울 구산동사거리에서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인데다,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인근 주민들이 아침 저녁 산책코스로도 즐겨 찾는 곳이다. 1457년(세조 3) 세조는 원자였던 장(璋, 덕종으로 추존)이 죽자 길지를 물색케 했다. 이때 지금의 서오릉터가 순산순수(順山順水)의 길지로 간택되어 세조가 직접 답사한 뒤 경릉(敬陵)터로 정하매 조선왕족의 능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뒤 덕종의 동생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한씨의 창릉(昌陵),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 김씨의 익릉(翼陵), 숙종과 계비 인현.. 2020. 10. 27.
강화도령 철종 이원범의 이런저런 이야기 순조의 손자이자 24대 왕인 조선 헌종이 23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후사 없이 갑작스레 사망하였고, 당시 왕실의 최고 어른이었던 순원왕후 김씨는 헌종의 7촌 재당숙이자 순조의 5촌 조카인 이원범을 왕대비의 자격으로 차기 국왕으로 지명했다. 자신을 왕으로 옹립하기 위한 행렬이 왔을 때, 철종은 자신의 할아버지나 큰형(이원경)이 역모에 몰려 죽은 전례가 있어서 이번엔 자신을 잡으러 온 줄 알고 산속으로 도망쳐버렸다. 철종의 형 이욱은 도망가다가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다. 이후 영의정 정원용의 설득으ㄹ로 결국 가마에 오른다. 그리고 철종이 왕이 된 후 강화도에 있던 그의 집은 왕의 잠저로서 '용흥궁(龍興宮)'이라는 이름으로 격상되었다. 본래는 초가집이었으나 철종이 즉위한 후 강화 유수가 오늘날의 형태와 같은 집을.. 2020. 10. 27.
거대한 미륵이 자리하고 있는 < 김제 금산사 > 금산사는 조선 성종 23년(1492)에 작성된 "금산사 5층 석탑 중창기"에 의하면, 금산사는 이미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의 가섭불 때에 있었던 옛 절터를 다시 중창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금산사의 터전이 오래 전부터 부처님과 인연이 깊었던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흔히 통일신라 시기 진표율사에 의하여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는 중창자이지 창건주는 아니다. 왜냐하면 "삼국유사"를 비롯한 기록에 의하면, 진표율사는 금산사의 순제법사에게 출가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진표율사 이전에 이미 금산사가 창건되었음을 알게 한다. 남아있는 "금산사사적"의 기록에 의하여 금산사가 백제 법왕 1년인 599년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금산사의 모습이 크게 부각된 것은 통일신라 시기 .. 2020.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