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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게 밝혀 죽은 판서 동물원에 가면 코끼리를 흔하게 보지만, 예전에는 코끼리가 매우 귀했다. 원래 아프리카나 인도 등에서 기르던 코끼리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조선 태종 때였다. 길들인 코끼리(즉 순상) 한 마리를 일본에서 보내 주어 기록상에만 보았던 코끼리의 실물을 처음으로 대하였다. 태종 11월 2일 일본 국왕이 코끼리 한 마리를 보내자 사복시에서 기르게 하였다. 코끼리는 날마다. 콩 4~5말을 먹어 치웠다고 한다. 코끼리가 들어온 이듬해 12월에 공조 저서를 지낸 이우가 기이한 짐승이라 하여 코끼리를 보고는 꼴이 추하다며 비웃고 침을 뱉었다. 코끼리가 화가 나서 그를 밟아 죽였다고 한다. 성격이 온순한 코끼리가 자리를 모욕한다고 여기고 응징을 하였다니, 화가 나도 엄청나게 났던 것 같다. 그 후에도 코끼리를 기르.. 2020. 8. 18.
베트남 호이안의 야경은 아름다워요 작년에 다녀온 베트남 여행을 올려 봅니다. 4박 5일의 여행 중 호이안의 야경을 모았다. 밤이라 다니지는 않고 잠시 야경을 보며 맥주를 마셨다. 물론 정신없이 구경하느라 많은 사진도 남기지 못 했다. 그래도 아름다운 것을 보며 남겨 두고 싶어 영상으로 만들어 보았다. 호이안에서 묵었던 숙소는 이다. 엠갤러리 호텔은 호이안의 시가지를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위치에 있다. 건물은 세련된 유럽풍을로 되어 있으면 건물에 색이 아름답다. 호텔은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편의시설도 잘 갖추어 놓았으며 무엇보다 이국적인 느낌의 수영장이 있다. 또한 루푸탑에는 수영장과 바가 있어 더 없이 좋은 경치를 볼 수 있다. 호이안은 호이안(베트남어: Hội An/會安 회안)은 베트남 꽝남성의 남중국해 연안에 있는 작.. 2020. 8. 14.
소론이 주도한 반란 <이인좌의 난> 이인좌의 난은 1728년(영조 4) 3월 정권에서 배제된 소론과 남인의 과격파가 연합해 무력으로 정권탈취를 기도한 사건을 말한다. 이인좌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이인좌의 난이라고 하며, 무신년에 일어났기 때문에 무신란이라고도 한다. 이인좌의 본관은 전주(全州), 본명은 현좌(玄佐)이다. 청주(淸州) 송면(松面) 출신으로 조선 세종의 넷째아들인 임영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의 후손이다. 조부인 이운징(李雲徵)은 숙종 때에 승지(承旨)·강원도 관찰사·전라도 관찰사 등을 지냈으며, 처는 남인(南人)의 거두인 윤휴(尹鑴)의 손녀 윤자정(尹紫貞)이다. 이인좌는 남인의 명문가 출신이다. 조부 이운징은 탁남(濁南)의 영수인 허적(許積)의 추천으로 관직에 올라 그와 가깝게 지냈으며, 처조부인 윤휴는 청남(淸南)의 영.. 2020. 8. 14.
시호를 잘못 정했다가 교수형을 당할 뻔하다 조선 시대에는 재상이나 유명한 유학자들이 죽으면 공덕을 칭송하여 임금이 시호를 내려 주었다. 시호는 한 인물에 대한 후대의 평가가 내포된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초기에는 정2품 이상의 문무관과 공신에게만 주었으나, 점차 대상이 확대되어 고명한 유학자들에게도 시호를 내렸다. 대체로 문신이나 학자는 문文, 무신은 무武, 전쟁 등에서 공을 세운 무방은 충忠자가 앞에 붙여졌다. 조선 초기에는 대개 봉상시에서 주관하여 시호를 정한 다음 임금에게 올려 재가를 받도록 했다. 시호를 결정하는 일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어서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조선 건국 직후에 시호를 잘못 정했다가 봉상시의 관원이 교수형을 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태조 5년 7월에 개국 공신 정희계가 죽자 시호를 정하는 문제로 임금.. 2020. 8. 13.
세종, 문종 시대 관련 인물 2 1. 이순지 - 조선전기 승정원좌부승지, 판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천문학자이다.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성보(誠甫). 동궁행수(東宮行首)로 있다가 1427년(세종 9)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교리·봉상시판관·서운관판사(書雲觀判事)·승정원좌부승지 등을 거쳐 1465년(세조 11) 판중추원사에 올랐다. 그는 세종의 명으로 역법(曆法)을 연구한 뒤 정인지(鄭麟趾)·정초(鄭招)·정흠지(鄭欽之)·김담(金淡) 등과 같이 『칠정산내외편(七政算內外篇)』을 저술하였다. 이 『칠정산내외편』의 완성으로 조선의 역법은 완전히 정비되었다. 그 뒤 역법의 계산은 주로 이순지와 김담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또, 이천(李蕆)·장영실(蔣英實)과 함께 천문의상(天文儀象)들을 교정, 제작하였으며, 1445년에는 그때까지 조사, 정.. 2020. 8. 12.
신臣 자를 쓰지 않았다고 하여 파직되다. 왕조 시대에는 신하가 임금에게 글을 올리면서 자기의 이름 앞이나 자기를 지칭하는 경우 반드시 신臣 자를 붙이도록 되어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이를 소홀히 하여 처벌을 받은 관리가 있었다. 태종 7년 12월에 파직된 안주 목사 홍유룡이다. 동지를 축하하는 글인 을 임금에게 올리면서 신 자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저 홍유룡의 하전을 본 의정부에서 그를 처벌하라고 주청 하자 임금이 윤허하지 않았다. "무지한 무인이니 거론하지 말라." 이번에는 사간원이 나섰다. "홍유룡이 무녀의 소생으로 글자를 알지 못하고, 무예의 능력도 없습니다. 다만 아첨하고 뜻을 맞추어 외람되게 직임을 받아 조정의 관원에 섞였습니다. 그럼에도 어리석게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고 이욕만을 자행하여 전라도 조양 병마사로 있을 때에 관물을 도적.. 2020. 8. 11.
신하들은 세 번 이상 간하지 말라. 조선 시대는 왕과 신하들의 말싸움의 연속이었다. 말싸움에 지친 태종은 급기야 16년 6월 교지를 내려 신하들이 한 가지 사안을 세 번 이상 간하지 못하도록 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세 번이나 간하여도 듣지 않으면 가 버린다는 것은 옛 법이다. 지금 대소 신료와 대간과 형조에서 간언과 상ㅇ소를 세 차례 이외에 난잡하게 신청하는 것은 예 제도에 어긋난다. 또 여러 사람들이 보고 듣는 데에는 심히 좋지 않다. 이제부터 이와 같은 사람이 있으면 교지부종으로 처벌하라." "모든 진언과 상소는 세 번 간하고 즉시 그친다. 세 번 간하여도 듣지 않으면 물러가고, 서 번이나 간한 뒤에 다시 간하는 자는 처벌한다." 교지부종이란 교지를 따르지 않은 죄를 말한다. 이러한 왕명이 나오 이유는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원, .. 2020. 8. 11.
세종. 문종 시대 관련 인물 1 1. 혜빈양씨 - 조선 제4대 왕 세종의 후궁이다. 한남군, 수춘군, 영풍군의 어머니이며, 손자뻘이 되는 단종의 유모였다. 본관은 청주이고, 시호는 문혜(文惠), 민정(愍貞)이다. 현감 양경과 부인 이씨 슬하의 외동딸로 태어나 처음에는 내명부 예하 는 의정부(議政府) 좌찬성(左贊成)으로 추증되었다. 정1품의 빈에 오른 후 혜빈이라는 칭호를 하사 받았다. 자식으로는 세 아들 한남군, 수춘군, 영풍군을 두었다. 그녀가 영풍군을 키우고 있을 당시, 세자빈이 단종을 낳은 후 이튿날 갑자기 죽게 되자 세종은 문종에게 알려 경혜공주와 단종을 혜빈에게 맡기도록 했다. 혜빈은 기뻐하며 자청했고 단종과 경혜공주를 극진히 보살폈다. 특히 직접 기른 단종에게는 더욱 지극한 사랑을 주었으며 단종 또한 혜빈의 품에서 잠들기를 .. 2020. 8. 10.
유네스코 세계유산 영축통림 <통도사> 통도사는 불교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는 우리나라의 3대 사찰이다. 일종의 불교의 종가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본 통도사는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아니 설명을 할 수가 없는지도 모른다. 누가 보아도 전통과 역사가 있고 웅장한 절집들 사이 사이 오래된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부처님의 사리를 간직하고 있다고 하니 그 영험함의 기운은 말할 곳도 없는 곳이 통도사인 것이다. 통도사 창건의 기본정신은 부처님 사리(舍利)를 봉안한 금강계단(金剛戒壇)에 있다. 이 계단은 통도사의 정신적인 근거가 되기도 하며 창사후 가장 중요한 기록을 마련하고 있다. 그래서 통도사 역사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자료들은 어느 것이나 통도사의 변화에 대해 기술하기보다는 바로 금강계단의 변천과 그역 사를.. 2020. 8.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