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639 영조가 사랑했던 <화평옹주> 화평옹주(和平翁主, 1727년 4월 27일 ~ 1748년 6월 24일)는 조선의 왕족으로, 제21대 왕 영조의 서녀이며, 생모는 영빈 이씨이다. 정조와 의소세손의 고모가 된다. 1727년, 4월 27일(양력 6월 16일) 창경궁 집복헌(集福軒)에서 영빈 이씨(暎嬪 李氏) 소생으로 태어났으며 사도세자의 친누나이다. 영조의 서3녀이자 영빈 이씨의 1남 3녀 중 장녀이다. 화완옹주와 화협옹주의 동복 언니이고 사도세자의 동복 누나이며 따라서 혜경궁 홍씨의 시누이가 된다. 영조가 자식들 중 특히 화평옹주와 화완옹주를 유독 총애했던 것은 유명하다. 1731년(영조 7) 마마를 앓아 영조가 모든 형의 집행을 정지시켰다. 1738년(영조 14) 12세의 나이에 예조참판 박사정(朴師正)의 아들인 금성위(錦城尉) 박명원(.. 2020. 8. 28. 단종, 세조 시대 관련 인물 1. 권람 - 조선전기 의정부우찬성, 좌찬성,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정경(正卿), 호는 소한당(所閑堂). 검교정승 권희(權僖)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 권근(權近), 아버지는 우찬성 권제(權踶), 어머니는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 이준(李儁)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해 학문이 넓었으며, 뜻이 크고 기책(奇策)이 많았다. 책상자를 말에 싣고 명산 고적을 찾아다니면서 한명회(韓明澮)와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지으면서 회포를 나누었다. 한명회와 서로 약속하기를 "남자로 태어나 변방에서 무공을 세우지 못할 바에는 만 권의 책을 읽어 불후의 이름을 남기자."고 했다. 한명회와의 교우는 관포(管鮑)와 같았다. 35세까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있다가, 1450.. 2020. 8. 27. 혜경궁 홍씨의 그날의 기록 <한중록> 혜경궁 홍씨(헌경왕후)의 본관은 풍산(豐山)이며 혜경궁 홍씨(惠慶宮 洪氏)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도세자(思悼世子)라고도 불리는 장헌세자(莊獻世子)의 빈(嬪)으로 조선의 22대 왕인 정조(正祖, 재위 1777~1800)의 생모이다. 생전의 존호는 효강자희정선휘목혜빈(孝康慈禧貞宣徽穆惠嬪)이며 사후의 시호는 헌경(獻敬)이다. 1744년(영조 20) 10세의 나이로 영조(英祖, 재위 1724~1776)의 아들인 장헌세자의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입궁했으며, 1750년(영조 26) 장남인 의소세손(懿昭世孫, 1750~1752)을 낳았고, 1752년(영조 28) 차남인 정조를 낳았다. 그리고 뒤이어 청연공주(淸衍公主, 1754~1814)와 청선공주(淸璿公主, 1756~1802)를 낳았다. 하지만 맏아들인 .. 2020. 8. 26. 뒤주에서 굶어 죽은 <사도세자> 사도세자는 조선 제21대 국왕인 영조의 두 번째 왕자로 이름은 이선(李愃), 자는 윤관(允寬), 호는 의재(毅齋)다. 잘 알 듯이 영조는 조선의 국왕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고 재위했다(각 82세, 52년). 영조는 정성(貞聖)왕후(1692∼1757)ㆍ정순(貞純)왕후(1745~1805) 등 왕비 2명과 정빈(靖嬪) 이씨(1694~1721)ㆍ영빈(暎嬪) 이씨(1696~1764)ㆍ귀인 조씨ㆍ후궁 문씨 등 후궁 4명을 두었다. 왕비에게서는 후사를 보지 못했고, 후궁에게서만 2남 12녀를 두었다(그 중 5녀는 일찍 사망했다). 첫 아들인 효장(孝章)세자는 즉위하기 전 정빈 이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났지만(숙종 45년(1719) 2월 15일) 9세로 요절했다(영조 4년(1728) 11월 16일). 둘째이자 마지막 아들.. 2020. 8. 25. 유네스코 세계유산 동구릉 2편 <현릉과 건원릉> 안녕하세요. 무님의 여행 이야기 을 소개합니다. 동구릉 2편에서는 조선 왕릉의 석물, 문종과 현덕왕후가 잠든 현릉과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능인 건원릉을 소개하려 한다. 조선 왕릉의 석물은 주로 능침 공간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석물이 피장자를 위해 만들어진 요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은 다른 나라의 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조선 특유의 능묘 조강의 구조로 봉분의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실제적으로 방지하는 기능을 한다. 병풍석 중앙의 면석에는 십이지신상을 새기고, 모서리 우석에는 영탁을 조각하며 모란, 구름 등이 장식적으로 표현되기도 하며 봉분을 보호하고 상징적으로는 수호의 역할을 한다. 은 병풍석 밖으로 봉분을 울타리처럼 두르거나 병풍석 없이 봉분을 두르고 있는 석물로 우리나라 능제의 특.. 2020. 8. 24. 세종, 문종 시대 관련 인물 1. 최해산 - 1380(우왕 6)∼1443(세종 25). 조선 초기 화포(火砲) 분야에 공이 큰 무신이다. 본관은 영주(永州: 현재의 영천). 검교참찬문하부사(檢校參贊門下府使) 최무선(崔茂宣)의 아들이다. 15세가 되어서야 글자를 해독할 수 있었으나, 아버지의 유고(遺稿)인 『화약수련법(火藥修鍊法)』의 비법을 전수받았다. 1401년(태종 1) 군기시(軍器寺)에 등용, 주부(主簿)를 거쳐 경기우도 병선군기점고별감(京畿右道兵船軍器點考別監)이 되었다. 1409년 군기감승(軍器監丞)에 오르고, 그 해 10월에는 화차를 만들어 왕이 참석한 가운데 해온정(解慍亭)에서 발사시험을 하였다. 또, 1424년(세종 6) 12월에도 군기판사로서 왕을 모시고 광연루(廣延樓)에 나아가 화포 발사연습을 주관하였다. 1425년 .. 2020. 8. 21. 사도세자, 운명의 그날 < 임호사화 > 임호사화는 1762년(영조 38) 윤5월, 영조가 대리청정(代理聽政) 중인 왕세자를 폐위하고 뒤주에 가두어 죽인 사건이다. 1762년(영조 38년) 윤5월 13일, 아버지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굶어죽게 만든 사건이다. 임오화변은 영조와 사도세자의 성격적 갈등, 신임의리(辛壬義理)를 둘러싼 노·소론 당론의 대결 구도, 세자를 둘러싸고 궁중 세력과 연계된 당파 간 갈등 등 다양한 원인을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 비상식적인 재난, 변괴를 뜻하는 '화변'으로 명명되었다.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뒤주에 들어가라고 명령했고,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는 8일 뒤 세상을 떠났다. 윤 5월 13일 영조는 창덕궁에서 갑자기 사도세자를 불러내었다. 이에 세자를 교육하는 시강원의 관원들과 세자와 동궁을 호위하는 익위사 .. 2020. 8. 20.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된 <동구릉> 1편 안녕하세요. 무님의 여행이야기 을 소개합니다. 동구릉 1편에서는 조선왕릉의 건축물과 재실 그리고 효명세자가 잠든 을 소개하려 한다. 동구릉은 '한양 동쪽에 있는 9기의 능'이라는 뜻으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을 비롯해, 문종, 선조, 인조, 현종, 경종, 영조와 왕들의 비들 그리고 문조로 추존 된 효명제사와 그의 비의 능이 있는 곳이다. 동구릉은 국가이념인 충과 효의 성리학을 구현한 독큭한 무덤의 야식 능을 발굴하지 않아도 능 속의 보든 사항과 조성 과정을 알 수 있는 의궤인 기록이 남아 있고 60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계속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는 점이 세계에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 받아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조선 왕릉의 건.. 2020. 8. 19. 세종, 문종 시대 관련 인물 1. 최만리 - 1445(세종 27). 조선 초기의 문신·학자이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자명(子明), 호는 강호산인(江湖散人). 고려시대 해동공자로 불리던 최충(崔沖)의 12대손이며 하(荷)의 아들이다. 1419년(세종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그 이듬해 집현전박사로 임명되었다. 그 뒤 집현전학사를 거쳐 그 실무책임자인 부제학에까지 올랐다. 개괄적인 관력을 보면, 1427년 3월 교리로서 문과중시에 급제하였고, 그 해 7월에 응교에 올랐으며, 1437년 직제학, 1438년 부제학, 1439년 강원도관찰사, 1440년 집현전부제학으로 복귀하였다. 그 뒤 1444년에 훈민정음창제에 대한 반대상소문제로 즉일 친국을 받고 다음날 석방, 복직되었으나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마쳤다. 부정과 .. 2020. 8. 19. 이전 1 ··· 37 38 39 40 41 42 43 ··· 7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