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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의 이야기가 있는 길 < 부소산 길 > 백제의 옛 도읍지 부여를 걷는 길, 백마강을 넘고 강변을 따라 걷는 걷다 보면 백제 사비시대의 도성인 부소산성과 만나게 된다. 부소산성은 백제 사비시기(538~660) 왕궁 유적으로 부여 시가지의 북편에 위치한다. 시가지를 휘감아 도는 백마강을 굽어 보는 위치에 표고 106m인 부소산이 솟아 있다. 이 산의 능선과 계곡을 가로지르며 부소산성이 위치하고, 그 남쪽 기슭엔 사비시대의 백제 왕궁터인 관북리유적이 자리 잡고 있다. 부소산성은 1980년부터 본격적인 고고학적 조서가 진행되었다. 30년이 넘는 장기간의 계획적인 고고학적 조사 결과 대형 건물지 등의 왕궁의 주요 시설들과 정교 하게 판축된 토성이 확인되어 백제의 왕성 구조를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진(현재의 공주)은 본래 고구려의 위협으로부.. 2020. 9. 13.
백제의 왕도를 걷다 < 공산성 길 > 공주 성곽 아래 유유히 흐르고 있는 금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공산성은 백제의 왕도인 공주를 수호한 산성이다. 공산성은 공주를 에돌아가는 금강변 해발 110m의 언덕에 올라앉은 백제시대에 지어진 산성이다. 백제 당시에는 웅진성(熊津城)이라고 불렀으나 고려시대 이후에는 공산성이라고 불렸으며, 조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雙樹山城)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성벽 둘레는 2.2㎞ 정도인데, 돌로 쌓은 부분이 약 1.81㎞이고, 흙으로 쌓은 성벽은 약 390m이다. 성벽은 2중으로 축조되었지만, 만하루(挽河樓)터 주변에는 동성왕이 쌓았다고 전하는 무너진 성벽이 있어서 모두 3중으로 축조된 셈이다. 이것은 규모를 축소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산성 북쪽의 영은사(靈隱寺) 밖에도 높이 7.4m, 길이 43.. 2020. 9. 13.
가을이 기다려니는 < 산정호수 둘레길 > 산정호수는 관광지로 유명하기도 하며 호수 주변의 산책로가 빼어나 걷기에 좋다. 이곳에서 도로를 따라 걸어가 평강식물원에 향하는 길은 깊은 산속 어디쯤으로 가는 설렘의 코스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끝에 이르러 멋진 식물원이 있으니 식물원을 한 바취 돌고 나면 건강과 볼거리를 모두 챙기는 만족스러운 기분이 든다. 산정호수는 1997년에 국민관광지로도 지정되어 승용차로든 대중교통편이든 모두 접근성이 좋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길이 잘 뚫려 있고, 대중교통편도 잘 되어 있다. 그래서 산정호수에서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본래 산 위에 들어선 이 낭만의 호수는 기암괴석의 명성산의 그림자가 호수에 비치며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였으나, 숙박시설과 놀이시설 등으로 행락지의 이미지를 강하게 풍기게 되었다. 산정호수 .. 2020. 9. 12.
세종이 쉬고 있는 길을 걷다 < 여주 영릉 길 > 여주에는 두 개의 영릉이 있다. 세종대왕릉인 영릉과 효종대왕릉인 영릉이다. 이 두 개의 능은 길이 700m 정도의 오솔길로 연결돼 있어 청정한 바람을 쐬며 함께 돌아보기가 좋다. 경기도 여주 땅에는 조선시대 임금이 잠든 두개의 왕릉이 있다. 조선왕조 제4대 임금인 세종과 ㅈ;17대 임금인 효종의 능이다. 700m 거리를 두고 두 개의 왕릉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은데, 세종의 잘 단장된 영릉에 가려 효종의 영릉은 찾는 이가 드물다. 하지만 영릉의 진짜 하일라이트는 세종릉과 효종릉을 잇는 오솔길에 있다. 짧지만 조붓한 흙길이라 정감이 있고 숲이 아늑하고 한산해 걷기 좋다. 소방도로인데 5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만 산책로로 개방한다. 약간의 오르막과 약간의 내리막이 반복되는 길이라 어린이도.. 2020. 9. 11.
예종, 성종 시대 관련 인물 1. 제안대군 - 1466(세조 12)∼1525(중종 20). 조선 전·중기의 왕자이다. 이름은 현(琄). 자는 국보(國寶). 예종의 둘째아들이며, 어머니는 안순왕후 한씨(安順王后韓氏)이다. 4세 때 부왕인 예종이 죽자, 왕위계승의 제1후보자였으나 세조비인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아직 어리고 총명하지 못하다고 반대하여 대신 성종이 예종을 이어 왕위에 즉위하였다. 1470년(성종 1) 5세의 나이로 제안대군에 봉해져 녹봉(祿俸)과 직전(職田)을 지급받았으며, 후일 세종의 제 5자인 평원대군 임(平原大君琳)의 후사로 입양되었다. 12세에 사도시정 김수말(金守末)의 딸과 혼인하였으나 어머니 안순왕후에 의하여 내쫓긴 바 되어, 14세에 다시 박중선(朴仲善)의 딸과 혼인하였지만 김씨를 끝내 못잊어하자 1485년 성.. 2020. 9. 11.
바람마저 설레는 바닷길 < 승봉도 해안산책길 > 승봉도는 인천 연안부두에서 쾌속선을 타고 약 1시간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작은 섬이다. 승봉도 이름의 유래를 보면 370여 년 전에 신씨와 황씨라는 두 어부가 고기잡이를 하다가 풍랑을 만나 이곳에 정착하면서 농경지를 개척했다고 하여 이들의 성을 따서 처음에는 신황도라고 하였는데, 그 후 이곳의 지형이 봉황새의 머리를 닮아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섬의 입도 시기는 신석기시대 후반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승황도(承黃島)로 기록되어 있다. 천혜의 자연 풍광도 크게 훼손되지 않았으며 다도해의 낙도에 온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승봉도는 전체 면적이 2.2km에 불과하다. 그래서 쉬어 쉬어 서너 시간만 걸어도 섬 구서구석을 훑어볼 수 있고, 섬 전체를.. 2020. 9. 10.
정조의 업적3 1. 규장각 설치 1776년(정조 즉위년) 3월, 궐내에 설치되었다. 역대 왕들의 친필·서화·고명(顧命)·유교(遺敎)·선보(璿譜) 등을 관리하던 곳이었으나 차츰 학술 및 정책 연구기관으로 변해 갔다. 조선 세조 때 양성지(梁誠之)의 건의로 일시 설치되었으나 폐지되었다. 1694년(숙종 20)에 세조가 친히 쓴 ‘奎章閣(규장각)’이라는 액자를 종정시(宗正寺)의 환장각(煥章閣)에 봉안하고 역대 국왕의 어필·어제를 보관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군주의 권위를 절대화시키는 규장각의 설치를 유신들이 찬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뒤 정조가 즉위하면서 외척 및 환관들의 역모와 횡포를 누르기 위한 혁신 정치의 중추로서 설립되었다. 이를테면 단순한 서고의 구실을 위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즉, 정조는 “승정.. 2020. 9. 10.
강 따라 걷는 길 < 세미원과 두물머리 길 > 세미원은 한강과 연밭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연꽃수생정원이다. 세미원에서 두물머리까지 이어지는 강변 산책로는 풍광이 좋아 사시사철 인기가 좋다. 최근 중앙선 양수역이 개통되면서 세미원과 두물머리로 가는 길이 한층 수월해졌다. 양수역에서 세미원 정문까지 도보로 약 10분이면 도착한다. 세미원의 어원은 '물을 보면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면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는 옛말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말을 세미원의 풍경에 적용해 보면 '물'은 세미원을 휘도는 남한강 해당하고, 꽃은 수련과 연꽃에 해당한다. 세미원의 정문격인 불이문을 통과하면 한반도 모양의 연못인 반도지가 관람객을 가장 먼저 반긴다. 반도지 둘레도는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 징검다리를 건너 너른 풀밭으로 나오면 풀밭 중앙에 수십 개의 .. 2020. 9. 9.
정조의 업적 2 ( 장용영 설치, 수원화성 건설 ) 1. 장용영 설치와 수원화성 건설 정조는 상당히 많은 암살 위기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러한 암살 위기는 정조에게 결국 자신을 호위할만한 군사의 필요성을 상기시키게 하였다. 당시 군영은 대부분 주요 당파에 장악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임금을 지키기보다는 자신의 당파를 위해 일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결국 1784년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존호를 축하하기 위해 경과를 실시 무과에서 무려 2000명의 합격자를 배출시켰고 이후 홍복영의 역모 사건을 계기로 1785년 장용위를 설치하게 된다. 그리고 1788년 장용위를 장용영으로 개칭하면서 정조는 하나의 자신의 친위 부대를 가지게 되었다. 이후 정조는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면서 동시에 이상 도시를 건설하게 된다. 바로 수원화성의 건설이다. 이 이상 도시의 건설을 통해 .. 2020. 9.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