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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님의 여행 이야기235

계절마다 이름이 달라지는 산 < 마이산 > 마이산은 마이산(馬耳山)은 두 암봉이 나란히 솟은 형상이 말의 귀와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서 동쪽 봉우리가 숫마이봉, 서쪽 봉우리가 암마이봉이다. 중생대 말기인 백악기 때 지층이 갈라지면서 두 봉우리가 솟은 것이라고 한다. 숫마이봉과 암마이봉 사이의 448 층계를 오르면 숫마이봉 중턱의 화암굴에서 약수가 솟는다. 또한 두 암봉 사이에 낀 마루턱에서 반대쪽으로 내려가면 탑사에 닿는다. 세찬 바람에도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는 않는 돌탑들이 신기하다. 신비하게 생긴 바위산에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도민 휴양지로 지정되었으며 이갑룡 처사가 평생 동안 쌓았다는 80여 무더기의 석탑과 함께 마이 탑사가 유명하다. 탑사, 은수사, 금당사, 북수사, 이산묘 등의 문화재가 있다. 마이산은 계절에 따라 그 모습이 달리.. 2020. 9. 27.
장원 급제를 기원하며 걷던 길 < 문경새재 길 > 문경새재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조령산(鳥嶺山) 마루를 넘는 이 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다. 새재(鳥嶺)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옛 문헌에 초점(草岾)이라고도 하여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 또는 하늘재, 麻骨嶺)와 이우리재(伊火峴) 사이의 「새(사이)재」, 새(新)로 된 고개의 「새(新)재」 등의 뜻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뒤에 이곳에 3개(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의 관문(사적 제 147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이 곳은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유서 깊은 유적과 설화·민요 등으로 이름 높은 곳이다. 이 곳에는 나그네의 숙소인 원터, 신구 경상도 관찰사가 관인을 주고받았다는 교귀정터만 .. 2020. 9. 26.
불을 뿜어냈던 산 불뫼 <화왕산 산성길 > 불을 뿜어냈던 화산이라는 뜻으로 ‘불뫼’라 불렸을 화왕산(火旺山, 757m)은 창녕군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창녕읍의 진산(鎭山), 창녕의 얼굴이다. ‘빛벌’ 또는 ‘빛불’로 풀이되는 창녕의 옛 이름들, 불사(不斯)·비화(非火)·비사벌(比斯伐)·비자화(比自火)·비자벌(比子伐)·화왕(火王) 등이 모두 이 ‘불뫼’로 불렸을 화왕산의 명칭에서 유래했으리라 생각된다. 화왕산은 꼭대기의 생김새가 별스럽다. 바깥쪽으로 깎아지른 벼랑인 두 봉우리가 남과 북에서 비슷한 높이로 솟아 있고 두 봉우리 사이인 안쪽은 부드럽고 펑퍼짐하게 퍼져내려 마치 말안장과 비슷한 모습이다. 따라서 산성의 모양도 크게 보면 말안장을 닮았다. 전통적인 산성 구분법에서 말하는 이른바 마안형(馬鞍形) 산성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지형과 지세를 십분.. 2020. 9. 24.
황금빛으로 물드는 연화봉 능선 < 소백산 >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능선을 꼽으라면 당연히 소백산이 아닐까 싶다. 소백산은 이름에 소자가 들어가는 바람에 왠지 작고 만만한 산으로 느껴지지만, 품이 넓고 튼 산이다. 특히 1,300~1,400m 높이의 연화봉~비로봉~국망봉으로 이어지는 능서은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아고산지대를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포원지대가 펼쳐진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밝음'을 승상했기에 신령스러운 산에 백자를 넣었다. 백두대간의 시원 백두산을 비롯해 함백산, 태백산, 소백산 등이 그러하다. 여기서 백은 밝음의 뜻만이 아니라 '높음''거룩함'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소백산의 산세는 부드럽고 온화해 사람들이 디개 살기 좋았다. 조선 후기 유행했던 십승지지 중에서 풍기, 춘양, 영월, 태백 등 많은 십승지가 유독 소백과 태백.. 2020. 9. 23.
가을에 꼭 가야 하는 곳 < 내장산 > 설악산에서 시작된 단풍은 내장산에서 절정을 맞는다고 한다. 날이 쌀쌀해지면 단풍의 발걸음은 토끼걸음으로 바뀐다. 그리서 가을은 문득 왔다가 쏜살같이 사라진다. 내장산 단풍 소식이 들릴 무렵이면 단풍이 막바질 향함을 알 수 있다. 내장산의 내장은 '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안으로 간직한다.'는 뜻이고, 내장사의 옛 이름이 '신령을 숨기고 있다.'는 영은사이니 예나 지금이나 '숨기고 감추어 간직하는' 뜻만은 변함없다. 산세는 내장 9봉이라 일컫는 아홉 개의 봉우리가 말발굽형으로 안을 둘러싸고 있다. 내장산 산행은 추령에서 시작해 내장 9봉을 종주하는 산길을 으뜸으로 꼽지만, 단풍구경을 하기에는 내장사에서 원적계곡을 거쳐 벽련암까지 작은 원을 그리는 코스가 아주 좋다. 산길은 그 유명한 108그루 단풍터널 입구.. 2020. 9. 22.
하늘을 걷다 < 청량산 하늘다리 > 청량산은 낙타의 등처럼 생긴 12 봉우리의 웅장한 기상이 일품인 산이다. 중부 내륙의 첩첩 산 중에서 청량산의 아름다움을 알아본 사람은 퇴계 이황이었다. 퇴계는 청량산이 세상에 알려지는 게 싫었다.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흰 기러기뿐. 기러기가 날 속이랴 못 믿을 도화로다. 도화야 물 따라가지 마라 어주자가 알까 하노라"라고 읊으며 청량산에 대한 짝사랑을 고백했다. 그리고 자신의 호를 아예 청량산인으로 고쳐 불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퇴계 덕분에 청량산은 널리 알려져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청량산은 전체적으로 험하지만 비탈과 봉우리 사이를 부드럽게 타고 도는 산길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산행 코스는 입석에서 시작해 응진전, 어풍대, 김생굴을 차례로 거쳐 자소봉에 올랐다가 능.. 2020. 9. 21.
계곡 따라 걷는 길 < 속리산 길 > 속리산의 화양동계곡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계곡 중 으뜸이라 할 수 있다. 화양동이란 명칭은 화양목이 많다 하여 황야동으로 불리다가, 조선 효종 때인 1666년에 우암 송시열이 화양구곡의 경치에 반해 이곳에 머물면서 화양동으로 불리고 있다. 화양동계곡은 제1곡 경천벽에서부너 제9곡 펀천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산세와 독특한 바위 그리고 계곡의 물소리가 어우러져 비경을 빚어낸다. 이곳은 경치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군을 파견한 명나라의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모셔놓은 만동묘가 있고, 그 옆에는 우암 선생을 제향하기 위한 화양서원이 자리 잡고 있다. 제4경인 금사담에 이르면 계곡의 맑고 깨끗한 물과 금빛 모래알, 그리고 송시열이 학문을 연마하면서 풍류를 즐겼던 아서재가 어우러져 화양동계.. 2020. 9. 18.
백제인의 길을 걷다 < 임존성 길 > 임존성은 예산군 광시면과 대흥면, 홍성군 금마면이 만나는 지점에 해발 483.9m의 봉수산이 솟구쳐 있다. 이 산 산정에 조성된 임존산성은 높은 곳에 우물을 파서 물을 그 안에 모았다가 적의 공격 때 물꼬를 터뜨려 1차적으로 곤경에 빠뜨리고 결정적인 공격을 가할 목적으로 쌓은 성이다.임존산성은 약 4km의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성벽의 높이는 2.5m, 폭은 3.5m인데 남쪽의 성벽은 굴곡이 심하여 성내에는 7~8m의 내호가 둘러져 있다.외벽은 돌로 쌓여 있고 안은 흙으로 메워진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성주 약 5,194척, 높이약 2.5m, 폭 약 3.5m로 말을 타고 달려도 넉넉할 정도다. 의자왕 20년에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망했을 때 의자왕의 사촌 동생 복신, 도침(스님)과 흑치상지가 3년여 동안 후백제.. 2020. 9. 17.
사색하기 좋은 외암리의 옛길 외암리 민속마을에서 설화산의 등산로로 이어지는 호젓한 산책로는 아름다운 풍광과 고택의 신비함이 더해져, 멋을 자아낸다. 외암 민속 마을은 외암마을은 예안이씨 중심으로 구성 된 마을이다. 마을 앞쪽으로 넓은 농경지를 두고, 뒤로는 산이 병풍처럼 막아주는 사이의 구룡지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마을이 처음에는 넓은 농경지로 인해 자연발생적인듯 하나 조선 중기에 이르러 예안이씨가 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인물이 나타나자 점차 예안이씨 후손들이 번성하여 집성 마을로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이 마을은 입구의 물(다리)를 건너면서 약한 구릉지에 집들이 길을 따라 독특하게 자리 잡고 있다. 마을 가운데로 안길이 있고 이 안길은 올라가면서 좌우로 샛길을 뻗치고 있다. 이러한 모양은 하늘에서 보면 마치 나뭇가지와 같이 큰 줄.. 2020. 9.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