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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의 아들 소현세자 소현세자는 조선의 제16대 왕 인조의 맏아들이다.조선왕조에서 비운의 왕세자로 회자되는 인물인 소현세자(昭顯世子, 1612~1645). 사도세자와 함께 왕세자였음에도 왕이 되지 못하고 요절한 비극의 주인공이다. 소현세자와 관련한 가장 큰 의혹은 바로 그의 죽음에 있다. 그가 독살되었다는 주장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소현세자는 1612년(광해군 4) 1월 4일 인조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부친이 왕위에 오르자 14세의 나이로 세자로 책봉되었고, 1627년 강석기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다. 병자호란 후 정축맹약에 따라 1637년(인조 15) 2월 8일 아우인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가 8년 만에 귀국하였지만, 귀국한 지 두 달 만에 사망하였다. 오한이 나 병을 치.. 2020. 5. 22.
정명공주 정명공주는 선조의 첫째 딸로,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연흥부원군(領敦寧府事延興府院君)김제남(金悌男)의 딸 인목왕비(仁穆王妃)이다. 광해군이 즉위하여 영창대군을 역모 연루죄로 사사하고 인목대비를 서궁으로 폐출시킬 때 함께 감금되었다. 인조반정 후 공주로 복권되고 중추부동지사 홍원의 아들 주원에게 시집을 갔다. 인목대비가 죽은 후 궁중에서 무도한 백서(帛書)가 나와 효종의 의심을 받았으나 숙종이 즉위하자 후대를 받았다. 1602년 음력 7월 13일 선조가 김제남(金悌男, 1562~1613)의 딸을 계비로 맞아들이니 그녀가 인목대비(仁穆大妃, 1584~1632)이다. 당시 선조의 나이 51세, 인목대비의 나이 19세였다. 열 달 후인 1603년 음력 5월 19일 정릉동 행궁에서 정명공주가 태어났다 정명공주가 태어.. 2020. 5. 21.
인조시대 관련 사건 - 이괄의 난 이괄의 난은 인조반정 때 공을 세운 이괄이 1624년에 일으킨 반란이다. 한때 한양을 점령하기도 했지만 반란군 내부의 분열과 관군의 반격으로 실패했다. 광해군(光海君, 재위 1608~1623) 때에 제주목사, 함경도 북병사(北兵使) 등을 지낸 이괄(李适, 1587~1624)은 1623년에 일어난 인조반정에서 인조(仁祖, 재위 1623~1649)를 왕으로 즉위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는 1622년(광해군 14년) 함경도 북병영의 병마절도사에 임명되어 임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가 신경유(申景裕)의 권유로 반정(反正) 모의에 참여했으며, 거사 당일에도 반군을 통솔하기로 했던 김유(金瑬)를 대신해서 실질적으로 군사를 지휘하여 반정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당시 반정 세력이 병력을 이끌고 홍제원(弘濟院)에 .. 2020. 5. 20.
인조시대 정묘왜란이 일어나다 조선 인조 때인 1627년에 후금이 조선을 침략하여 벌어진 전쟁이다. 후금은 광해군 폐위 문제를 구실로 쳐들어왔다가 조선과 협상을 벌인 뒤 강화를 맺고 돌아갔다. 두 나라는 이 전쟁을 계기로 ‘형제’의 관계를 맺었으나 오래가지는 못했고 9년 뒤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병자호란의 배경을 살펴보면 광해군때부터 살펴봐야 한다. 1월 중순부터 3월 초에 걸쳐 약 2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만주에 흩어져 살던 여진족은 조선과 명나라가 임진왜란으로 국력이 피폐해진 틈을 타 건주위(建州衛) 여진의 추장 누르하치(奴兒哈赤)를 추대해 여러 부족을 통합, 1616년(광해군 8) 후금을 세우고 비옥한 남만주의 농토를 탐내어 명나라와 충돌하게 되었다. 명나라는 양호(楊鎬)를 요동경략(遼東經略)으로 삼아 10만 대군으로 후금 토벌에.. 2020. 5. 19.
조선 16대 왕 - 인조 조선시대 이른바 쿠데타로 왕위에서 쫓겨난 왕은 노산군(뒤에 단종), 연산군, 광해군 등 세 명이었다. 이 가운데 ‘반정(反正)’ 즉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왕이 교체된 것은 연산군을 폐한 중종반정과 광해군을 폐한 인조반정이다. 그런데 반정이라는 이름은 같지만 왕위에 오른 과정을 보면 중종과 인조(仁祖, 1595~1649, 재위 기간 1623~1649)는 아주 달랐다. 중종이 정변을 일으킨 공신들의 추대로 갑자기 왕위에 올랐다면, 인조는 왕이 되고자 몸소 정변을 준비하고 앞장선 인물이다. 인조는 자 화백(和伯). 호 송창(松窓). 휘 종(倧)이다. 선조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정원군(定遠君:元宗으로 追尊), 어머니는 인헌왕후(仁獻王后)이다. 비는 한준겸(韓浚謙)의 딸 인열왕후(仁烈王后), 계.. 2020. 5. 18.
인조 실록 은 조선왕조 제16대 왕인 인조의 재위기간인 1623년 3월에서 1649년 5월까지 26년 2개월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사서이다. 정식 이름은 이며, 모두 50권 50책으로 활판으로 간행되었다. 조선시대 다른 왕들의 실록과 함께 국보 제 151호로 지정되었다. 은 인조가 세상을 떠난 다음해인 1650년 효종1년 8월 1일 춘추관에 실록청을 설치하고 편찬을 시작하였다. 인조는 반정에 의하여 광해군을 폐하고 즉위하였기 때문에 즉위년칭원법을 하용하였다. 은 1653년 효종3년 6월에 완성되었다. 여기에 관여한 관원들은 아래와 같다. 총재관 영춘추관사-이경여, 김육, 도청 당상 지춘추관사-오준, 이후원, 동지춘추관사-윤순지 조석윤,채유후,도청 낭청 편수관-홍명하, 조한영, 이응시,김홍욱, 심세정, 이천기,.. 2020. 5. 17.
조선 중기 여류화가 < 신사임당 > 신상임당은 조선전기 「자리도」의, 「초충도」의, 「노안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이며 문인으로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다. 본관은 평산(平山). 아버지는 신명화(申命和)이며, 어머니는 용인 이씨로 이사온(李思溫)의 딸이다. 호는 사임당(師任堂)이다. 사임당은 중국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인 태임(太任)을 본받겠다는 뜻에서 사용된 당호로 임사재(任師齋)라고 칭하기도 했다. 본명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름이 인선(仁善)이라는 설도 있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자료는 없다. 남편이 증좌한성 이원수(李元秀)이고, 조선시대의 대표적 학자이며 결혼하여 이선(李璿)·이번(李璠)·이이(李珥)·이우(李瑀)의 네 아들을 두었고, 조대남(趙大男)·윤섭(尹涉)·홍천우(洪天祐)에게 출가한 세 딸을 두었다. 딸들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으.. 2020. 5. 16.
조선 중기 여성시인 < 허난설헌 > 허난허설은 조선 중기 선조 때의 시인이며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시작으로 달래어 섬세한 필치와 독특한 감상을 노래했다.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고 일본에서도 간행, 애송되었다. 본관 양천(陽川). 호 난설헌(蘭雪軒). 별호 경번(景樊). 본명 초희(楚姬). 명종 18년(1563년) 강원도 강릉(江陵)에서 출생하였다.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許筠)의 누나이다. 강릉 초당에서 태어난 초희는 어려서부터 예쁘고 총명하기 이를 데 없었고, 문학적 소질을 타고났다. 7세에 벌써 시에 능하여 8세 때에는 광한전 백옥루의 상량문을 지을 만큼 문재가 뛰어났고, 그림도 뛰어나 가히 신동이라 할 만했다. 난설헌은 바느질이나 살림보다 독서와 작문을 좋아했다 양천 허씨이며 어렸을 때 이름은 초희였다. .. 2020. 5. 15.
광해군 시대 조선 최초의 양명학자 허균 허균은 조선시대 첨지중추부사, 형조참의,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문인이였다. 또한 조선 최초의 양명학자였다. 조선시대 사회모순을 비판한 소설 《홍길동전(洪吉童傳)》을 집필하였다. 그외 작품으로 《한년참기(旱年讖記)》, 《한정록(閑情錄)》 등이 있다.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학산(鶴山)·성소(惺所)·백월거사(白月居士). 아버지는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으로서 학자·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엽(曄)이다. 어머니는 강릉 김씨(江陵金氏)로서 예조판서광철(光轍)의 딸이다. 임진왜란 직전 일본통신사의 서장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성(筬)이 이복형이다. 문장으로 이름 높았던 봉(篈)과 난설헌(蘭雪軒)과 형제이다. 허균은 5세 때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해 9세 .. 2020. 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