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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님의 여행 이야기

신라가 만든 철옹성 < 보은 삼년산성 >

by 무님 2020.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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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의 삼년산성은 보은읍 동쪽 오정산에 있는 신라시대의 산성이며 우리나라 산성을 대표할 만한 대단한 석축산성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삼년산성은 신라 자비왕 13년(470)에 쌓았고 소지왕 8년(486)에 이찬 실죽을 장군으로 삼아 일선(지금의 구미시 선산읍 일대)의 장정 3,000명을 징발하여 개축하였다고 한다. 보은은 지증왕 3년(553) 삼년산군이 되었고 경덕왕 1년(742)에는 삼년군으로 바뀌었다. 이때 삼년산·삼년이라는 지명이 삼년산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거꾸로 먼저 이 지역의 이름이 있고 거기서 산성 이름을 붙였을 수도 있다. 어쨌든 『삼국사기』에는 성을 다 쌓는 데 3년이 걸렸으므로 삼년산성이라 했다고 적혀 있다. 나중에는 오정산에 있는 산성이라 하여 오정산성이라 불리기도 했다.

 

 

보은 삼년산성

 

 

보은은 예로부터 교통의 요충지였다. 보은에는 14개의 성터가 있을 만큼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길목 역할을 했다. 삼년산성은 주변에 있는 청주의 상당산성과 단양의 온달산성 등의 유명세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산성이다. 하지만 석축으로 쌓은 이 산성은 산성 중 걸작으로 손꼽히는 산성 중 하나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5분정도 도로를 오르면 삼년산성의 바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걷기을 시작하면 된다. 삼년 산성은 그 높이가 15m가 넘고 두께도 다른 산성에 2배가 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서이라고 한다. 산성의 입구인 서문지는 아직 복원이 되지 않은 곳이다. 일반적으로 성문은 안쪽으로 열리는데 삼성산성의 문은 밖으로 열리게 되어 있다고 한다. 서문지 앞에는 연못 흔적이 남아 있는데 아미지라 불리며 연못의 뒤 암벽에는 신라의 명필이라 불리는 김생의 글씨가 적혀 있다. 서문지에서 오른쪽으로 걷기를 시작하면 된다.

 

 

 

 

성곽의 길 아래쪽으로 걷는다. 한쪽 옆으로는 돌들로 쌓인 석축의 벽이 또 한쪽으로는 숲이 자리한 호젓한 길이 이어진다. 성곽길은 자연스럽게 잘 닦여져 있어 걷기에 순하고 관리가 잘 되어 있어 쾌적하기도 하다. 서문지에서 50분정도를 걸으면 동문지가 나온다. 동문지를 지나게 되면 산성에서 가장 높은 동북치성에 올라설 수 있다.

 

 

 

동북치성으로 가는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길을 올라서면 다시 내리막 길이다. 삼년산성은 길지 않은 길이지만 굴곡이 심한 편이다. 그래서 이 크지 않은 성이 천혜의 요새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걷기에는 무난한 길이다. 

동북치성을 거쳐 서북치성을 지나 서문지로 돌아오면 걷기를 마친다. 

 

보은군 보은읍 어암리에 있다. 청주에서 보은으로 난 25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보은읍 초입에 있는 후평사거리에 닿게 된다. 후평사거리에서 앞으로 계속 이어지는 25번 국도를 따라 상주 방면으로 2.55㎞ 가면 길 오른쪽에 상주리 버스정류장과 함께 보은상고로 난 마을길이 나온다. 마을길을 따라 약 250m쯤 가면 길 왼쪽에 보은상고가 나오고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두 갈래길 모두 삼년산성으로 갈 수 있으나 왼쪽 길은 마을 안을 지나는 길이라 좁고 복잡하다. 오른쪽으로 난 마을길을 따라 약 850m 가면 보은상고 앞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난 마을길과 만나게 되는데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약 150m 가면 삼년산성이다.

승용차는 삼년산성 안까지 갈 수 있으나 대형버스는 보은상고 앞 갈림길 한편에 잠시 주차하고 걸어가야 한다. 산성 주변에는 숙식할 곳이 없다. 가까운 보은 읍내에는 숙식할 곳이 많이 있다. 보은 읍내 충북은행 앞 버스정류장에서 상주리 버스정류장 앞을 지나 화령·중눌·백현으로 다니는 버스는 약 40분에서 1시간 간격으로 있다. 보은읍에서 매우 가까우므로 걸어가거나 택시를 이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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