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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37

일본군 경복궁을 점령하다 - 전쟁의 서막 < 청. 일 전쟁 > 1894년 봄 전라도에서 제1차 동학농민군(東學農民軍)이 봉기하자 조선 정부는 양력 5월 7일 홍계훈(洪啓薰)을 양호초토사(兩湖招討使)로 임명, 진압하도록 명하였다. 그러나 장성에서 정부군을 격파한 농민군은 31일 전주까지 함락시켰다. 6월 2일 전주가 함락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정부는 자력으로는 농민군을 진압할 수 없다고 판단, 임오군란 진압시의 전례에 따라 청국의 주차조선총리교섭통상사의(駐箚朝鮮總理交涉通商事宜)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원병을 요청하였다. 위안스카이를 통해 파병 요청을 받은 청국의 직례총독 겸 북양대신(直隷總督兼北洋大臣) 이홍장(李鴻章)은 6월 6일, 톈진조약[天津條約]에 의거하여 일본에 파병 사실을 통고하는 한편, 직례제독 예즈차오[葉志超]와 딩루창[丁汝昌] 휘하의 군사 2,800명을 .. 2020. 11. 22.
' 나는 조선의 국모다 ' 명성황후시해 < 을미사변 > 을미사변은 1895년 8월 20일(양력 10월 8일) 새벽 일본의 공권력 집단이 서울에서 자행한 조선왕후(명성황후) 살해사건이며 명성황후시해사건(明成皇后弑害事件)이라고도 한다. 갑오개혁을 통하여 조선 내정에 관여하게 된 일본은 청일전쟁에 승리한 뒤 박영효(朴泳孝)·김홍집(金弘集)을 중심으로 한 친일내각을 만들어 조선 침략을 위한 영향력 확장에 힘을 기울였다. 이때 프랑스·러시아·독일 등 3국은 일본의 대륙침략 저지를 위해, 청일전쟁의 승리로 일본이 차지한 랴오둥반도[遼東半島]를 청국에 반환할 것을 요구한, 이른바 '삼국간섭'으로 일본의 세력확장에 제동을 걸었다. 그동안 일본의 강압하에 내정개혁을 추진한 조선정부는, 러시아공사 K.베베르와 제휴하고 친일세력을 제거하기 시작하였는데 명성황후가 이를 주도하였다.. 2020. 11. 16.
2차 갑오개혁 2차개혁 때는 의정부를 내각이라 고치고 7부를 두었다. 인사제도는 문무관(文武官)을 개편하고 월봉제도(月俸制度)를 수립하였다. 지방행정구역은 8도(道)를 23부(府) 337군으로 개편하였다. 지방관으로부터 사법권과 군사권을 박탈함으로써 횡포와 부패를 막아 지방행정체제를 중앙에 예속시키는 근대 관료체제를 이룩하였다. 사법제도는 행정기구에서 분리시켜 재판소를 설치하고 2심제(二審制)가 채택되었다. 1심 재판소로서 지방재판소와 개항장재판소(開港場裁判所)를, 2심 재판소로는 고등재판소와 순회재판소를 설치하였고, 왕족에 대한 형사재판을 위해서 특별법원을 두었다. 그러나 제2차 개혁은 개혁을 추진하던 박영효가 1895년 반역음모 혐의로 정계에서 쫓겨나 일본에 망명하면서 끝나고 말았다. * 홍조 14조 내용 청나라에.. 2020. 11. 16.
' 나는 조선의 국모다 ' 명성황후 < 민자영 > 명성왕후는 조선후기 제26대 고종의 왕비이다. 명성황후는 1851년(철종 2)에 경기도여주에서 부친 민치록(閔致祿)과 모친 한창부부인 이씨 사이에 태어났다. 8세 때 부친이 타계한 뒤, 어머니와 함께 서울의 감고당(感古堂)에 와서 살았다. 감고당은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친정집이었다. 1863년(철종 14) 철종이 타계하자, 조대비의 명에 의해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둘째 아들 이명복(李命福)이 국왕으로 옹립되었다. 3년 뒤인 1866년 흥선대원군과 부대부인 민씨의 역할에 의해 16세 때 왕비로 간택되었다. 고종 즉위 이후 10년 동안은 어린 국왕을 대신하여 흥선대원군의 섭정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성년이 되면서 직접 정사를 보고자 하는 고종의 욕망과 이를 지지하는 척족 인물들과 재야의 여론에 의해 흥선대.. 2020. 11. 7.
조선 26대 왕 고종 < 이희 > 조선의 제26대 국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이다. 재위 기간은 1863∼1907이며 아명은 이명복(李命福), 초명은 이재황(李載晃), 후에 이희로 개명, 자는 성림(聖臨), 후에 명부(明夫)로 고침, 호는 성헌(誠軒). 영조의 현손(玄孫) 흥선군(興宣君) 이하응(李昰應)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여흥부대부인 민씨(驪興府大夫人閔氏)이다. 1863년(철종 14) 12월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조대비(趙大妃)의 전교(傳敎)로 12세에 즉위하였다. 새 왕의 나이가 어리므로 예에 따라 조대비가 수렴청정하였으나, 대정(大政)을 협찬하게 한다는 명분으로 정권은 대원군에게 넘어가 이로부터 대원군의 10년 집정시대가 열렸다. 즉위 후인 1866년 9월여성부원군(驪城府院君) 민치록(閔致祿)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니 .. 2020. 11. 6.
조선왕조실록 < 고종실록 > 은 조선왕조 제 26대 왕이며 대한제국의 첫 황제였던 고종의 재위기간인 1863녕 12월에서 1907년 7월까지인 45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사서이다. 원명은 이다. 본문 48권 48책과 목록 4권 4책을 합쳐 52권 52책으로 간행되었다. 은 과 함께 이왕직의 주관으로 1927년 4월1일에 편찬을 시작하여 7년이 지난 1934년 6월에 완성되었고, 이듬해 3월 31일에 완료되었다. 의 편찬에 참여한 편찬위원들은 아래와 같다. 위원장 : 소전치책, 부위원장 : 이항구, 감수위원 : 소전성오, 정만조, 박승봉, 성전석내, 김여수, 서만순, 편찬위원 : 서상훈, 남규희, 이명상, 조경구, 홍종한, 권순구, 사료수집위원 : 박주빈, 이원승, 이능화 등이다. 1910년 일제가 대한제국을 무력.. 2020. 11. 4.
조선왕조실록 < 철종실록 > 은 조선왕조 제25대 왕 철종의 재위기간인 1849년6월에서 1863년 12월인 14년 7개월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실록읻. 정식 이름은 이다. 본문은 15권 8책이며, 행록, 시책문 등을 수록한 부록이 1책이다. 조선시대 다른 왕들의 실록과 함께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다. 철종실록은 철종이 세상을 떠난 다음해인 1864년 4월 29일 북영에 실로겇ㅇ을 설치하고 총재관 등을 임명하여 편찬을 시작하였다. 철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한 실록청의 주요 인물들은 아래와 같다. 총재관 : 정원용, 김흥근, 김좌근, 조두순, 이경재, 이유원, 김병학 각방 당상 : 김병기, 김병국, 홍재철, 윤치희, 조득림, 이돈영, 홍종응, 윤치정, 조석우, 이승익, 김보현, 조구하 등이다. 절종은 1863년 1.. 2020. 10. 23.
3차 천주교 박해 신부 김대건의 순교 < 병오박해 > 병오박해는 1846년(헌종 12) 김대건(金大建)의 체포를 계기로 일어난 천주교 박해의 옥사이다. 당시 우리 나라에 입국해 있던 천주교 조선교구의 제3대 교구장인 주교 페레올(Ferreol,J.J.)은 김대건과 함께 포교에 힘쓰는 한편, 우리 나라에 입국할 기회만을 노리며 만주에 머물러 있던 신부 메스트르(Maistre)와 최양업(崔良業)을 맞아들일 방도를 강구하게 된다. 페레올은 종래의 잠입로였던 육로는 당국의 감시가 더욱 심해져 입국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서해의 안전한 바닷길을 찾기 위해서 김대건을 황해도 서해안으로 보냈다. 김대건은 1846년 5월 13일서울을 떠나 황해도 연안의 백령도해역으로 나가 청나라 배에 지도와 서신을 탁송하고, 귀로에 순위도에 들렀다가 우연한 일로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체.. 2020. 10. 20.
조선왕조실록 < 헌종실록 > 은 조선왕조 제24대 왕 헌종의 재위 기간인 1834년 11월에서 1849년 6월까지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실록이다. 정식 이름은 이다. 본문은 16권 8책이며, 행록. 애책문 등으로 수록한 부록이 1책이다. 활자로 간행되었으며, 다른 왕의 실록과 함께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다. 편찬에 참여한 주요 인물들은 아래와 같다. 총재관 : 조인영, 정원용, 권돈인, 김도희, 박희수, 김픙근, 박영원, 도청당상 : 조두순, 서기순, 찬수당상 : 김좌근, 이가우, 윤정현, 김학성, 조학두, 김보근, 도병준, 김수근, 이경재, 김정집 교수당상 : 서헌순, 김병기 등이다. 헌종은 1849년 창덕궁 중희당에서 23세에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났다. 존호는 경문위무명인철효, 묘호는 헌종, 능호는 경릉으로 경기도 구리시.. 2020. 1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