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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야기

조선왕조실록 < 고종실록 >

by 무님 2020.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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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실록 >은 조선왕조 제 26대 왕이며 대한제국의 첫 황제였던 고종의 재위기간인 1863녕 12월에서 1907년 7월까지인 45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사서이다. 원명은 <고종수천융운조극돈륜정성광의명공대덕요준순휘우모탕경웅명입기지화신열외훈홍업계기선력건행곤정영의 홍휴수강문헌무장인익정효태황제실록>이다. 본문 48권 48책과 목록 4권 4책을 합쳐 52권 52책으로 간행되었다.

<고종실록>은 <순종실록>과 함께 이왕직의 주관으로 1927년 4월1일에 편찬을 시작하여 7년이 지난 1934년 6월에 완성되었고, 이듬해 3월 31일에 완료되었다. <고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한 편찬위원들은 아래와 같다.

위원장 : 소전치책,  부위원장 : 이항구,  감수위원 : 소전성오, 정만조, 박승봉, 성전석내, 김여수, 서만순,  편찬위원 :  서상훈, 남규희, 이명상, 조경구, 홍종한, 권순구,  사료수집위원 : 박주빈, 이원승, 이능화 등이다.

1910년 일제가 대한제국을 무력으로 합방하자 고종은 이태왕으로 격하되었다가 1919년 정월에 세상을 떠났다. 고종의 능호는 홍릉이며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다.

 

 

 

고종

 

 

* <고종실록>의 내용

고종은 1852년 7월 25일 서울에서 홍선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고 1866년 9월 여성부원군 민치록의 딸과 결혼하였다. 고종은 이때 12세였으므로 조 대비가 수렴청정하였다. 그러나 흥성대원군이 국정을 총람하였고 흥선대원군은 정권을 장악하자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를 타파하고 왕권을 확립하여, 여러 가지 혁신정책을 추진하였다.

대원군은 1866년인 고종3년부터 천주교도 박해령을 내려 8000여 명의 천주교도들을 학살하였다. 이 때문에 병인양요를 겪었고, 1871년에는 신미양요를 극복하여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고 쇄국정책을 고수하였다. 1873년 11월 고종은 직접 나라를 다스렸다. 민씨정권은 개방 정책을 시행하여 1876년 일본과 수호조약을 체결하고 구미 열강과 차례로 조약을 맺으며 개항 정책을 추진하였다. 고종과 민씨정권은 개항 후 일본에  신사유람단과 수신사를 파견하였다. 개화당과 수구세력 간에 알력으로 1882년에 임오군란, 1884년에 갑신정변이 일어났다. 1894년에 동학농민혁명이 발생하자, 일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났고 1895년 강화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일본이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공사 미우라는 1885년 8월 군대와 낭인들을 동원하여 경복궁을 습격하고 왕비를 살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켰다. 고종은 1896년 2월 갑자기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을 단행하였다. 고종은 1897년 2월 환궁하였으며, 10월에는 대한제국의 수립을 선포하고 황제에 올라 연호를 광무라 하였다. 그 무렵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만민공동회가 개최되고 자유민권운동이 확산되어 가자, 고종은 보부상과 군대의 힘을 빌려 이를 진압하였다. 1904년 러.일 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은 한. 일의정서를 강요하였고,제1차 한. 일협약을 맺었다. 그리고 다음해 일본은 을사조약의 체결을 강요하였다. 고종은 1907년 6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되는 만국평화회의에 특사 이상설, 이준, 이위종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일본과 영국의 방해로 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고종은 일제의 강요로 7월 20일에 물러났다.

 

 

고종,명성황후 홍릉

 

 

고종 태실

26대왕 고종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로 1852년 태어났다. 익종의 대통을 계승하고, 철종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 임금의 적자가 아니므로 태실이 없을 가능성이 높고 조사된 바도 없다. 만약 있다면 선조의 태실처럼 형식적인 태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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