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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왕조실록9

고려 제 6대 왕 성종 - 가족 관계 성종은 문덕왕후 유씨, 문화왕후 김씨, 연창궁부인 최씨 등 세 명의 부인을 두었다. 이들중 문덕왕후는 소생이 없었고 문화왕후가 1녀, 연창궁부인이 1녀를 낳아 총 2녀를 얻었으며, 이들 두 딸은 모두 현종의 왕비가 되었다. 문덕왕후 유씨 (생몰년 미상) 문덕왕후 유씨는 광종과 대목왕후 황보씨의 셌째 딸이다. 그녀는 처음에 태조의 손자이자 수명태자의 아들 흥덕원군 왕규에게 시집갔다가 성종에게 재가했기 때문에 성종보다 나이가 많을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 초에는 여자들의 재가가 허락되고 이혼이 인정되었지만 왕이 재가녀를 왕비로 받아들이는 예는 찾아볼 수 없다. 때문에 성종과 문덕왕후의 결혼은 광종 이후 정착된 족내혼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종친들의 동의하에 이뤄진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문덕왕후는 왕규에게 .. 2021. 6. 2.
고려왕조실록 - 제6대 왕 성종 성종의 재위 기간은 981년∼997년이다. 이름은 왕치(王治), 자는 온고(溫古). 할아버지는 태조(太祖)이고, 아버지는 대종(戴宗)왕욱(王旭)이며, 어머니는 선의태후 유씨(宣義太后柳氏)이다. 981년경종(景宗)의 내선(內禪: 임금이 살아 있으면서 왕위를 넘김)으로 왕위에 올랐다. 성종은 어머니 선의왕후가 일찍 죽어 할머니 신정왕후 황보씨에 의해 길러졌다. 그런 이유로 경종과 마찬가지로 외가인 황보씨 가문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경종이 성종에게 호감을 가진 것도 같은 황보씨 외가를 두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성종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유학에 밝고 인품이 뛰어나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광종 이후 형성된 유교적 분위기에서 자라난 그는 유교적 정치이념을 실현한 왕이었다. 성종은 숭유억불정책을 노골.. 2021. 5. 18.
나는 꿈을 꾼다. 나의 고려가 대제국이 되는 그 날을 < 천추태후 > 천추태후는 고려전기 제5대 경종의 제3 왕비이며, 제7대 목종(穆宗)의 생모이다. 고려 태조(太祖, 재위 918∼943) 왕건(王建)의 일곱째 아들인 왕욱[王旭, ? ~ 969, 성종이 즉위한 뒤에 대종(戴宗)으로 추존]의 딸이며, 고려의 제6대 왕인 성종(成宗, 재위 981~997)의 친누이이다. 태조 왕건의 손녀로, 아버지는 왕욱[王旭, 대종(戴宗)], 어머니는 선의왕후(宣義王后)이다. 아버지인 왕욱과 어머니 선의태후(宣義太后) 유씨(柳氏)가 모두 일찍 죽어, 할머니인 신정왕후(神靜王后) 황보씨(皇甫氏)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헌애왕태후(獻哀王太后)는 부모가 모두 태조의 자녀로 이복 남매간에 혼인하였다. 태후는 사촌인 경종과 혼인하여 동성혼을 피하고자 할머니 신정왕태후(神靜王太后)의 성씨를 따 황.. 2021. 5. 9.
고려왕조실록 - 제5대 왕 경종 경종의 재위기간은 975년 5월에서 981년 7월로 6년 2개월이다. 경종의 이름은 왕주(王伷), 자는 장민(長民). 광종(光宗)의 장남으로 어머니는 대목왕후(大穆王后) 황보씨(皇甫氏). 비(妃)는 신라 경순왕의 딸 헌숙왕후(獻肅王后) 김씨(金氏), 문원대왕의 딸 헌의왕후(獻懿王后) 유씨(劉氏), 대종(戴宗) 욱(旭)의 딸 헌애왕후(獻哀王后)와 헌정왕후(獻貞王后) 두 자매, 원장태자의 딸 대명궁부인(大明宮夫人) 유씨(柳氏)이다. 광종 16년인 965년에 2월에 11세의 나이로 왕태자, 내사, 제군사, 내의령, 정윤에 책봉되었다. 부왕인 광종에 의해 추진된 호족(豪族)세력 숙청(肅淸: 반대파를 처단하거나 제거함)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왕(父王)과의 관계마저 원활하지 못해 불안하게 소년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 2021. 4. 30.
고려 제4대 왕 - 광종의 가계도 광종의 후비는 대목왕후 황보씨와 경화부인 임씨 두 사람뿐이다. 두 사람 중 경화궁부인 임씨는 자식을 낳지 못했고, 대목왕후 황보씨는 경종을 비롯하여 2남 3녀를 낳았다. 경종의 동생 효화태자는 후사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봐서 일찍 죽은 것으로 보인다. 세 공주 중에서 첫째는 천추전군에게 시집간 것으로 괴어 있어 천추전부인으로 기록되어 있고, 둘째는 보화궁부인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왕족 중 한 명에게 시집간 것으로 보이며, 셋째는 서종의 왕비 문덕왕후 유씨이다. 1. 대목왕후 황보씨 (생몰년 미상) 대목왕후 황보씨는 태조의 딸로 제4비 신정왕후 황보씨의 소생이다. 그녀의 성씨 황보는 어머니 쪽을 따른 것이다. 광종과 대목왕후의 결혼은 937년 이후부터 943년 이전에 이뤄진 것으로 짐작된다... 2021. 4. 24.
고려왕조실록 - 광종실록 광종은 신명순성왕후 유씨 소생이며 이름은 소, 자는 일화이다. 소는 925년 태조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949년 3월 동복형 정종의 선위를 받아 25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광종은 왕자 시절에 정종과 더불어 왕실 세력의 핵심 인물이었고, 박수겨, 수문 형제와 왕식렴 등의 서경 세력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때문에 왕규와 박술희가 이끄는 개경 세력을 제거하 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정종의 즉위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또한 이복형 혜종과도 친분을 가지면서 서경 세력과 혜종 사이에 교량 역할을 하였다. 광종은 정종과는 판이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치밀하고 조심스럽지만, 기회를 잡았을 땐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대범한 성격이었다. 최승로는 그가 특이한 풍채와 우수한 자질을 가지오 있어 태조로부터 남다른 사랑.. 2021. 4. 12.
고려왕조실록 - 정종 실록 정종은 고려 시대의 제3대 왕(재위 945~949)으로 정적을 제거하며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왕요(王堯). 자는 천의(天義). 태조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충주 호족 유긍달(劉兢達)의 딸인 신명순성왕태후(神明順成王太后)이다. 비(妃)는 문공왕후 박씨(文恭王后 朴氏)와 문성왕후 박씨(文成王后 朴氏)이다. 정종 왕요는 923년에 태어났다. 그는 신명순성왕후의 두 번째 소생이며 태조 왕건의 셋째 아들이었다. 하지만 신명순성왕후의 첫 번째 소생인 태가 어린 나이로 죽는 바란에 그가 차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왕요는 태조의 차남이었지만 그는 장남 혜종보다는 지지기반이 튼튼하였다. 강력한 호족 세력인 충주 유씨가 그의 외가였기 때문이다. 혜종이 젊은 나이로 요절하자 945년 9월 측근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 2021. 4. 8.
고려왕조실록 - 혜종 실록 혜종은 고려전기 제2대(재위:943~945) 왕이다. 자는 승건(承乾), 휘(諱)는 무(武), 시호는 의공(義恭)이다. 태조 왕건(王建)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장화왕후(莊和王后) 오씨(吳氏)이며, 비(妃)는 대광(大匡) 임희(林曦)의 딸인 의화왕후(義和王后)이다. 태조는 궁예 휘하에서 나주를 정벌하고 그곳에 주둔할 때, 오씨를 만나 혼인하였다. 나주 오씨 집안의 세력은 권력이나 군사력을 갖지 못했으며 이러한 출신 배경으로 혜종은 후에 왕위쟁탈전에 휘말리게 되었다. 왕건은 장남으로 하여금 왕위를 계승케 하고 싶었으나 호족들의 눈치를 살펴야하는 입장이었기에 그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못했다. 그것은 왕자 무의 어머니 오씨가 한미한 가문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왕건의 뜻을 알아차린 대광(재상) 박술희는 마침내 .. 2021. 3. 18.
고려왕조실록 태조 - 왕건 왕건은 877년에 한주 송악군에서 사찬(沙湌) 융(隆)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가 서해 용왕의 딸과 혼인하여 왕건을 낳았기 때문에, 대대로 왕씨 일족의 겨드랑이에는 용의 비늘이 돋아났다는 전설이 있다. 당나라의 황제(숙종)가 왕자 시절 한반도를 유람하다가 얻은 사생아가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이라는 전설도 있으나, 왕가의 핏줄을 미화하기 위해 생겨난 전설로 여겨진다. [고려사]에도 실려 있는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융이 송악의 남쪽에 집을 짓자 당대 도참(圖讖)의 제일인자였던 도선(道詵)이 지나가다가 “이곳에서 성인이 나시리라”라고 외치고는, 융에게 “내년에 반드시 귀한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고 귀띔했다. 도선은 왕건이 17세 되던 해에 다시 찾아와 “너는 장차 왕이 될 운명이다”라고 알리고, 병법.. 2021. 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