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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이야기

나는 꿈을 꾼다. 나의 고려가 대제국이 되는 그 날을 < 천추태후 >

by 무님 2021.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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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태후는 고려전기 제5대 경종의 제3 왕비이며, 제7대 목종()의 생모이다.

고려 태조(, 재위 918∼943) 왕건()의 일곱째 아들인 왕욱[, ? ~ 969, 성종이 즉위한 뒤에 대종()으로 추존]의 딸이며, 고려의 제6대 왕인 성종(, 재위 981~997)의 친누이이다. 태조 왕건의 손녀로, 아버지는 왕욱[, 대종()], 어머니는 선의왕후()이다. 아버지인 왕욱과 어머니 선의태후() 유씨()가 모두 일찍 죽어, 할머니인 신정왕후() 황보씨()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헌애왕태후()는  부모가 모두 태조의 자녀로 이복 남매간에 혼인하였다. 태후는 사촌인 경종과 혼인하여 동성혼을 피하고자 할머니 신정왕태후()의 성씨를 따 황주 황보씨( )를 칭하였다. 그래서 동생인 헌정왕후(, ?~992)와 함께 황보씨의 성을 사용하였다.

 

 

 

 

 

997년 성종이 죽자, 헌애왕후의 아들인 송이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그가 고려의 7대 왕인 목종(, 재위 997~1009)이다. 목종이 즉위한 뒤에 헌애왕후는 천추전(殿)에 거처한다고 해서 '천추태후'라고 불렸으며, 섭정을 하며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헌애왕후는 유배되었던 김치양을 불러들여 합문통사사인(), 우복야() 겸 삼사사() 등의 지위에 앉히며 중용하였다. 그리고 황보씨의 본거지인 서경(西)을 우대하는 정책을 펼쳤으며, 김치양의 출신지인 서흥()에 성수사(宿)를 세우는 등 곳곳에 도관과 사원을 건립하였다.

 

 

 



1003년(목종 6년), 헌애왕후는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에게 목종()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시키려 하였다. 그래서 헌정왕후가 태조()의 아들인 왕욱[, ? ~ 996, 뒤에 안종()으로 추존]과의 사이에서 낳은 대량원군() 순(, 991~1031)을 죽이려 하였다. 헌애왕후와 김치양은 대량원군 순을 숭교사()에 보내 승려로 만들었으며, 1006년(목종 9년)에는 그를 남경()의 신혈사()로 보냈고, 여러 차례 자객을 보내 살해하려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헌애왕후와 김치양에 반대하는 세력은 1009년(목종 12년) 정변을 일으켜 목종을 폐위시키고 대량원군 순을 새로 왕으로 옹립하였다.

1009년 정월 천추전에 불이 났다. 1009년(목종 12년) 정월, 고려의 제7대왕 목종이 연등 행사를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궁궐의 기름 창고에서 불이나, 목종의 모후가 거처하는 천추전으로 옮겨 붙었다. 단순한 화재가 아니었다. 정변이었다. 혼란스러운 틈을 타 정변 세력이 대궐을 장악했다. 이후 왕이 아파서 안에서만 거처하며 신하들을 만나는 것을 싫어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왕은 감금되어 있었을 것이다.불타는 전각을 빠져나온 천추태후는 연인 김치양과 함께 반란군들과 대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천추태후는 서경의 군권을 쥐고 있던 강조를 불러 이 사태를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강조는 목종을 버리고 반란군들의 편에 섰다. 강조는 김치양과 그의 아들을 비롯한 7명을 죽이고, 30여 명을 귀양 보냄으로써 쿠데타를 성공하고 대량원군 왕순을 새로운 왕으로 세웠다.

천추태후는 목종과 함께 궁에서 쫓겨났다. 겨우 말 두 필을 얻어 목종과 태후가 타고, 어의를 벗어 음식을 마련해가며 길을 나섰다. 태후가 음식을 먹고자 하면 왕이 친히 그릇을 받들었고 태후가 말을 타고자 하면 왕이 친히 고삐를 잡았다. 목종과 태후의 행렬이 적성현에 이르렀을 때 강조가 보낸 군사들이 독을 가져와 목종에게 올렸다. 목종이 마시려 하지 않자 이들은 목종을 시해하고 나서자살했다고 거짓보고를 했다. 아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아야 했을 천추태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불과 며칠 전 사랑하는 남자와 그와의 사이에서 얻은 어린 아들까지 잃었는데...... 절망 속에서 천추태후는 고향인 황주로 유배를 갔다. 사실 목종 시대 권력의 핵심은 천추태후였다. 그러나 반란군은 천추태후를 죽이지 않았다. 김치양과 두 아들을 모두 죽여 크게 위험하지 않다고 보았을 수도 있지만, 천추태후가 갖는 무게가 고려 초기 역사에서 그만큼 무거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목종을 폐위시키고 대량원군 순을 왕으로 추대하였는데, 그가 고려의 제8대 왕인 현종(, 재위 1009~1031)이다.  천추태후는 할머니의 고향인 황주로 추방되었다. 태후는 황주에 21년 동안 머물다가 병이 들자 개경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1029년(현종 20년) 왕궁으로 돌아와 숭덕궁()에서 죽었다.

시호는 응천계성정덕왕태후(), 능호는 유릉()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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