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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8

단종, 세조 시대 관련 인물 1. 이징옥 - 조선전기 회령절제사, 판경흥도호부사, 평안도도절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본관은 양산(梁山). 호는 원봉(圓峯). 아버지는 지중추원사 이전생(李全生)이며, 이징석(李澄石)의 아우이다. 어려서부터 순직하고 무용이 뛰어났다. 어머니가 산 멧돼지를 보고 싶다고 하자 형 이징석(李澄石)과 같이 사냥을 나갔다. 이징석은 그날로 멧돼지를 활로 쏘아 죽여서 잡아왔지만 이징옥은 이틀이나 힘들게 몰이를 해서 기진맥진한 멧돼지를 산 채로 끌고 왔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이징석과는 성격이 대조적임을 잘 보여준다. 갑사(甲士)로서 중앙에서 벼슬을 하다가, 1416년(태종 16) 부사직으로 무과 별시에 장원으로 급제해 사복소윤(司僕少尹)에 제수되었다. 1423년(세종 5) 황상(黃象)의 천거로 경원첨절제사로 발.. 2020. 9. 4.
생육신 김시습 김시습은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선 전기의 학자이다. 유·불(儒佛) 정신을 아울러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금오산실에서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지었고 《탕유관서록》, 《탕유관동록》등을 정리했으며 《산거백영》을 썼다. 본관 강릉(江陵). 자 열경(悅卿). 호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청한자(淸寒子)·벽산(碧山). 법호 설잠(雪岑). 시호 청간(淸簡).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이다. 서울 성균관 부근에 있던 사저(私邸)에서 부친 김일성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신동·신재(神才)로 이름이 높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의 작가인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세조에게 밀려난 단종에 대한 신의를 끝까지 지키며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자연에 은거한 생육신.. 2020. 4. 1.
단종의 고명대신 김종서 김종서(金宗瑞, 1383~1453)는 조선 세종 때 여진을 정벌하고 6진을 설치한 관료이다. 세종 때 6진 개척을 주도한 인물로, 그리고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 세력에 의해서 살해된 인물로 잘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300여 년이 지난 영조 대에 복권되면서 충의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각인되고 있다. 할아버지는 지평을 지낸 김태영이고, 아버지는 도총제 김추이며, 어머니는 대사헌 배규의 딸이다. 1405년(태종 5) 식년문과에 급제한 후 우정언·이조정랑 등을 지내고 1415년 상서원직장(尙書院直長)을 시작으로, 죽산현감을 거쳐 1418년 병조좌랑에 올랐다. 1426년 이조정랑이 되어 전라도의 왜인 포획 상황을 조사 · 보고하였고, 1427년 황해도에 경차관(敬差官)으로 파견되었다. 1433년(세종 15) 12월.. 2020. 3. 31.
단종실록 은 조선왕조 제6대 왕 단종의 재위기간 1452년 5월 ~1455년 윤 6월의 3년 2개월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사서이다. 원래 이름은 였으나, 숙종 때 그를 단종으로 추존한 뒤에는 ,단종대왕실록>이라 하였다. 세조 때에 편찬된 원편 는 문종이 세상을 떠난 1452년 5월 14일부터 단종이 양위하기 전날인 1455년 윤 6월 10일까지의 수록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백 4년 만인 숙종 24인 1698년 무인 11월 8일에 영의정 유상운 등의 주처으로 노산군에게 '순정안장경순돈효'라는 시호와 '단종'이라는 묘호, '장릉'이라는 능호를 올리고, 종묘에서 복위 고유제를 올림으로써 왕위를 복구하게 되었다. 의 편찬자들도 를 편찬한 신숙주, 한명회, 최항, 노사신 등 정난공신들이 주축되었을 것이다. 단.. 2020. 3. 5.
단종, 유배지에서 돌아오지 못 한 단종 그리고 그의 설화들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에는 천연기념물인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유지비각과 금표비가 있는 청령포 쪽을 바라보면 우거진 소나무 숲 속에 유난히 우뚝 선 우아한 자태의 소나무 한 그루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 가운데 가장 키가 큰 소나무로,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된 ‘관음송’이다. 나이가 600년이라는 관음송은 생멸(生滅)하는 물체로서는 유일하게 단종의 유배를 지켜 본 존재이다. 곧, 당시 처절하였던 단종의 생활을 보았으니 관(觀)이요, 하염없던 단종의 오열을 들었으니 음(音)이라는 뜻이다. 두 갈래로 나뉘어진 아래쪽 가지 사이에 걸터 앉아 무료한 시간을 달래었을 어린 노산군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1457년 여름 청령포에 큰 홍수가 나자 단종의 유배지는 관풍헌으로 옮겨졌다. .. 2020. 2. 24.
단종, 유배지에서 죽다 1. 조선의 대 왕 단종을 말할때면 비운의 왕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어린 왕 단종의 험난했던 왕의 길과 소년의 나이 상왕이 되고 상왕의 자리에서 노원군으로 격하되어 유배길에 오르기까지 그리고 그 유배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 하고 죽어야 했던 짧은 생을 참으로 힘들게 마감했던 그러기에 한없이 가엽은 왕이 아닐 수 없다. 단종과 그 정부인 정순왕후는 동대문 밖 영도교에서 이별을 한다. 그 다리는 단종이 영영 돌아오지 못한 이별을 했다 하여 영영이별교가 된다. 여기서부터 금부도사 왕방연은 주민들의 눈을 피해 가까운 한강의 나루터로 가 이천의 천서리까지 배를 이용한다. 거기서 장호원, 원주, 주천, 제천을 거쳐 단 닷새 만에 영월 청령포로 압송한다. 당시 단종의 유배 호송인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을 영월.. 2020. 2. 23.
단종, 노산군이 되어 유배를 가다 단종은 1455년 6월 11일 3년 1개월의 재위기간을 뒤로하고 숙부인 수양에게 양위한뒤 상왕에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이또한 쉬운 길은 아니였다. 아직 십대였던 단종에게는 두렵고 힘든길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수양대군의 추종 세력인 정인지(鄭麟趾)·신숙주(申叔舟)·한명회(韓明澮)·권람(權擥)·홍윤성(洪允成) 등은 1455년 윤6월 수양대군을 왕으로 추대하고 단종을 왕위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그러자 과거에 세종·문종에게 특별한 은총을 받았던 집현전학사 출신인 성삼문·박팽년·하위지(河緯地)·이개(李塏)·유성원(柳誠源) 등 문관은 무관인 유응부(兪應孚)·성승(成勝)·박쟁(朴崝) 등과 모의, 상왕(上王: 단종)을 복위시킬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 집현전학사 출신 문관이 주동이 되어 단종 복위거사를 모의한.. 2020. 2. 22.
조선 6대 왕 단종 - 비운의 왕이 되다. 조선의 6대 왕 단종은 1441년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다른 남자 형제들이 있엇지만 모두 어릴 때 죽었기 때문에 문종의 외동 아들로 성장한다.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가 세자빈 시절 단종을 출산하 지 삼일만에 죽자 아버지 문종이 새로운 정실부인을 맞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 없이 성장한다. 단종은 아버지 문종이 돌아가시면서 어린 나이에 혈현단시으로 왕위에 즉위를 한다. 단종의 즉위는 비극의 시작이 아닐 수 없었다. 단종은 조선이 건국된 이래 처음으로 태어날 때부터 왕으로 지목된 인물이였다. 단종이 태어난 1441년은 할아버지 세종이 임금이자, 아버지 문종이 대리청정하였던 시기였기 때문에 단종은 조선 최초로 안정적인 왕의 길로 즉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단종에게는 어려운 길이기도 .. 2020.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