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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이야기25

고려 왕조 실록 제7대 왕 - 목종 목종의 이름 송(誦). 자 효신(孝伸). 시호 선양(宣讓). 경종(景宗)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헌애왕후(獻哀王后) 황보씨(皇甫氏)이다. 목종은 경종의 맏아들로 제3비 헌애왕후 황보씨 소생으로 태어났다. 980년에 태어난 그는 경종이 사망할 당시 불과 두살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욍위는 성종에게로 이어졌다. 하지만 아들이 없던 섣종은 송을 궁중에서 양육사여 990년 개령군에 봉했다. 그리고 송은 997년 병으로 누워 임종을 앞둔 성종의 내선으로 왕위에 오른다. 그가 곧 고려 제7대 왕 목종이다. 이때 어린 목종이 왕위에 오르자 그의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빌미로 친모인 헌애왕후가 섭정을 실시하게 된다. 정권을 거머쥔 헌애왕후는 곧 자신의 정부 김치양을 불러 들러들인다. 김치양이 헌애왕후을 등에 없고 권력독.. 2021. 7. 14.
천추태후 ( 헌애황후 황보 ) 고려 태조(太祖, 재위 918∼943) 왕건(王建)의 일곱째 아들인 왕욱[王旭, ? ~ 969, 성종이 즉위한 뒤에 대종(戴宗)으로 추존]의 딸이며, 고려의 제6대 왕인 성종(成宗, 재위 981~997)의 친누이이다. 아버지인 왕욱과 어머니 선의태후(宣義太后) 유씨(柳氏)가 모두 일찍 죽어, 할머니인 신정왕후(神靜王后) 황보씨(皇甫氏)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그래서 동생인 헌정왕후(獻貞王后, ?~992)와 함께 황보씨의 성을 사용하였다. 황보씨는 황주(黃州)의 유력 호족(豪族)으로 신정왕후의 딸인 대목왕후(大穆王后) 황보씨도 태조의 넷째 아들인 제4대 광종(光宗, 재위 949~975)의 비(妃)가 되어 제5대 경종(景宗, 재위 975∼981)을 낳아 외척(外戚)으로 대를 이어 권세를 누렸다. 그리고 .. 2021. 7. 7.
논리로 80만 대군을 물리친 < 서희와 강동 6주 > 서희는 광종 대에 대광 내의령을 지낸 서필의 아들이다. 서희의 아버지 서필은 광종의 귀화인 중용정책에 반대했던 인물로 사치를 싫어하고 스스로 검소하여 몇 번에 걸쳐 왕의 사치를 경계하는 간언을 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서희는 943년 서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이천이고 아명은 염윤이다. 어릴 때부터 성격이 곧고 머리가 뛰어났던 그는 광종 11년 만에 18세로 갑과에 급제한 후 광평 원외랑 등을 지내며 승진을 거듭하였다. 972년 송나라 사신으로 가서 10여 년간 단절되었던 송과의 외교관계를 회복시키면서 처음으로 외교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때 송의 태조는 서희의 절도 있는 행동과 예법을 높이 평가하여 검교병부상서 벼슬을 내렸다. 송나라에서 돌아온 후 서희는 탁월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좌승을.. 2021. 6. 10.
유교 개혁론자 < 최승로와 '시무 28조' > 최승로는 최은함의 아들로 927년 경주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 최은함은 원래 신라의 6두품 출신으로 벼슬이 원보에 이르렀으며, 935년 신라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한 이후 고려 조정에 협조하였다. 최승로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학문을 좋아하고 문장이 뛰어났다. 12세 때 태조가 그를 불러서 논어를 읽혀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981년 성종은 즉위하면서 유교사회 건설에 대한 포부를 밝힌 후 이듬해 정 5품 이상의 모든 관리에게 시무와 관련한 상소를 올릴 것을 명한다. 이때 종 2품의 정광행선관어사상주국으로 있던 최승로는 장문의 시무책을 올리게 되는데, 이것이 성종에게 채택되어 고려 사회는 또 한 번의 개혁을 시도하게 된다. 상소문을 올리던 982년 당시 최승로의 나이는 56세였다. .. 2021. 6. 7.
고려 제 6대 왕 성종 - 가족 관계 성종은 문덕왕후 유씨, 문화왕후 김씨, 연창궁부인 최씨 등 세 명의 부인을 두었다. 이들중 문덕왕후는 소생이 없었고 문화왕후가 1녀, 연창궁부인이 1녀를 낳아 총 2녀를 얻었으며, 이들 두 딸은 모두 현종의 왕비가 되었다. 문덕왕후 유씨 (생몰년 미상) 문덕왕후 유씨는 광종과 대목왕후 황보씨의 셌째 딸이다. 그녀는 처음에 태조의 손자이자 수명태자의 아들 흥덕원군 왕규에게 시집갔다가 성종에게 재가했기 때문에 성종보다 나이가 많을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 초에는 여자들의 재가가 허락되고 이혼이 인정되었지만 왕이 재가녀를 왕비로 받아들이는 예는 찾아볼 수 없다. 때문에 성종과 문덕왕후의 결혼은 광종 이후 정착된 족내혼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종친들의 동의하에 이뤄진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문덕왕후는 왕규에게 .. 2021. 6. 2.
고려 제6대 왕 성종의 업적 성종 원년인 982년 6월에 체제를 정비하고 정치이념을 명확히 할 목적으로 5품 이상의 모든 관리에게 봉사(밀봉한 상소문)을 올리게 하였다. 이때 최승로의 '시무 28조'가 채택되어 정치 방향과 체제 정비를 위한 기본적인 골격이 형성됐으며, 990년 김심언이 올린 육정육사에 관한 봉사를 통해 올바른 신하상이 확립된다. 「시무 28조」의 내용은 새 국왕(성종)이 해야 할 당면과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을 건의한 것으로 되어 있다. 최승로는 그 당시 고려왕조가 당면한 문제에 관해서 대내외적으로 광범위하게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불교의 폐단과 사회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 불교 비판 특히 불교에 대한 태도가 비판적이었음이 주목된다. 그러나 그의 불교 비판은 교리 자체에 .. 2021. 5. 27.
고려왕조실록 - 제6대 왕 성종 성종의 재위 기간은 981년∼997년이다. 이름은 왕치(王治), 자는 온고(溫古). 할아버지는 태조(太祖)이고, 아버지는 대종(戴宗)왕욱(王旭)이며, 어머니는 선의태후 유씨(宣義太后柳氏)이다. 981년경종(景宗)의 내선(內禪: 임금이 살아 있으면서 왕위를 넘김)으로 왕위에 올랐다. 성종은 어머니 선의왕후가 일찍 죽어 할머니 신정왕후 황보씨에 의해 길러졌다. 그런 이유로 경종과 마찬가지로 외가인 황보씨 가문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경종이 성종에게 호감을 가진 것도 같은 황보씨 외가를 두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성종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유학에 밝고 인품이 뛰어나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광종 이후 형성된 유교적 분위기에서 자라난 그는 유교적 정치이념을 실현한 왕이었다. 성종은 숭유억불정책을 노골.. 2021. 5. 18.
나는 꿈을 꾼다. 나의 고려가 대제국이 되는 그 날을 < 천추태후 > 천추태후는 고려전기 제5대 경종의 제3 왕비이며, 제7대 목종(穆宗)의 생모이다. 고려 태조(太祖, 재위 918∼943) 왕건(王建)의 일곱째 아들인 왕욱[王旭, ? ~ 969, 성종이 즉위한 뒤에 대종(戴宗)으로 추존]의 딸이며, 고려의 제6대 왕인 성종(成宗, 재위 981~997)의 친누이이다. 태조 왕건의 손녀로, 아버지는 왕욱[王旭, 대종(戴宗)], 어머니는 선의왕후(宣義王后)이다. 아버지인 왕욱과 어머니 선의태후(宣義太后) 유씨(柳氏)가 모두 일찍 죽어, 할머니인 신정왕후(神靜王后) 황보씨(皇甫氏)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헌애왕태후(獻哀王太后)는 부모가 모두 태조의 자녀로 이복 남매간에 혼인하였다. 태후는 사촌인 경종과 혼인하여 동성혼을 피하고자 할머니 신정왕태후(神靜王太后)의 성씨를 따 황.. 2021. 5. 9.
고려 제 5대 왕 경종 - 화합정책과 호족 공신들의 재등장 광종이 죽자 고려의 정국은 새로운 양상을 띠기 시작한다. 광종의 정책에 의해 밀려났던 호족들이 경종의 즉위와 동시에 재등장하게 된 것이다. 고려 조정의 요직을 차지한 호족들은 가장 먼저 광종 대의 수모를 앙갚음하기 위해 복수전을 펼치게 되고, 이로 인해 고려에는 다시 피바람이 몰아친다. 경종은 즉위하자 곧 대사면령을 내려 귀양 중에 있는 신하들을 돌아오게 하고 갇혔던 사람들을 풀어주었으며, 관작을 빼앗긴 사람들을 복직시킨다. 또한 광종 대에 설치됐던 임시 감옥을 모두 헐고 신하들을 참소한 글들을 불살랐다. 광종 11년 이후 15년 동안 지속되던 공포정치가 막을 내린 것이다. 성종은 공포정치의 종결을 알리는 의미로 호족 출신 왕선을 집정(재상)에 임명하고 광조 시대의 잔재 청산 정책을 실시했다. 호족 출신.. 2021. 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