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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이야기

고려 왕조 실록 제7대 왕 - 목종

by 무님 2021.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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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종의 이름 송(誦). 자 효신(孝伸). 시호 선양(宣讓). 경종(景宗)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헌애왕후(獻哀王后) 황보씨(皇甫氏)이다.

목종은 경종의 맏아들로 제3비 헌애왕후 황보씨 소생으로 태어났다. 980년에 태어난 그는 경종이 사망할 당시 불과 두살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욍위는 성종에게로 이어졌다. 하지만 아들이 없던 섣종은 송을 궁중에서 양육사여 990년 개령군에 봉했다. 그리고 송은 997년 병으로 누워 임종을 앞둔 성종의 내선으로 왕위에 오른다. 그가 곧 고려 제7대 왕 목종이다. 

이때 어린 목종이 왕위에 오르자 그의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빌미로 친모인 헌애왕후가 섭정을 실시하게 된다.

 

 

 

 

정권을 거머쥔 헌애왕후는 곧 자신의 정부 김치양을 불러 들러들인다.

김치양이 헌애왕후을 등에 없고 권력독점을 독점으로 조정이 기능을 상실하게 되자 목종은 그를 내쫓기 위해 여러가지 방책을 강구하지만 헌애왕후의 방해로 실패하게 된다.

목종은 왕권을 빼앗기자 절망한 나머지 정사를 소홀히 하고 남색에 빠지게 된다.

1004년 그동안 김치양과 놀아나던  헌애왕후는 아들을 출산했다. 이때부터 김치양과 헌애왕후는 자신들의 아들을 차기 왕으로 앉히기 위해 온갖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당시 태조의 유일한 혈통은 안종 왕욱과 헌정왕후의 불륜의 씨앗인 대량원군뿐이었다. 헌애왕후의 친동생 헌정왕후는 경종이 죽은 후에 사가에 머물다가 왕욱과 눈이 맞아 아이를 낳았고, 이를 알게 된 성종은 왕욱을 귀양 보냈다.

그후 헌정왕후는 혼자 아이를 출산하다가 산욕으로 죽고 아이는 성종에 의해 대궐에서 양육된다.

이 아이가 바로 대량원군 후에 현종이 된다.

목종이 병으로 눕자 헌애왕후는 김치양과 대량원군을 죽이기에 혈안이 되지만, 이를 간파한 목종은 서경(西京) 도순검사(都巡檢使) 강조(康兆)에게 대량원군의 호위를 명한다.하지만 목종은 강조에 의해 폐위되어 충주(忠州)로 가는 도중에 살해되고. 강조는 천추태후와 김치양 일당을 숙청하고 대량원군을 왕위에 올린다. 

목종은 결국 객지에서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목종이 죽자 강조의 수하들은 문짝으로 관을 삼아 시체를 보관하고 강조에게 보고하니, 강조는 적성현의 창고에서 쌀을 내어 제사를 지내게 했다.

1009년 2월에 일어난 이 같은 강조의 역모사건으로 11년 4개월 동안의 목종시대는 끝이 난다. 또한 이 사건은 현종이 즉위 후 거란이 고려를 침입하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이때 목종의 나이는 30세였다. 

 

목종은 생을 마감한 지 한 달 후에 적성현 남쪽에서 화장되었으며 능호는 공릉이다.

 

공릉 유지비

 

 

이제현은 <고려사>에서 목종의 치세에 대해 이렇게 평하고 있다.

" 경부는 노나라의 예법을 위반하였고, 불위는 진나라의 화근을 빚어냈으며, 제나라 환공은 자기 시체에서 벌레가 생기도록 거두는 자가 없었고, 진시황은  모래톱에서 객사하였으니 이런 사람들이 어찌 만대의 치욕을 모면할 수 있겠는가? 목종은 이런 사람들의 실패를 교훈으로 하여 일의 시초부터 마땅한 방비를 하지 않았다가 결국모자가 함께 화를 입고 왕실을 거의 망칠 뻔하였던 것이다. 아아! 목종의 불행은 오히려 불행이 아니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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