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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반정8

인조시대 관련 사건 - 이괄의 난 이괄의 난은 인조반정 때 공을 세운 이괄이 1624년에 일으킨 반란이다. 한때 한양을 점령하기도 했지만 반란군 내부의 분열과 관군의 반격으로 실패했다. 광해군(光海君, 재위 1608~1623) 때에 제주목사, 함경도 북병사(北兵使) 등을 지낸 이괄(李适, 1587~1624)은 1623년에 일어난 인조반정에서 인조(仁祖, 재위 1623~1649)를 왕으로 즉위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는 1622년(광해군 14년) 함경도 북병영의 병마절도사에 임명되어 임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가 신경유(申景裕)의 권유로 반정(反正) 모의에 참여했으며, 거사 당일에도 반군을 통솔하기로 했던 김유(金瑬)를 대신해서 실질적으로 군사를 지휘하여 반정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당시 반정 세력이 병력을 이끌고 홍제원(弘濟院)에 .. 2020. 5. 20.
조선 16대 왕 - 인조 조선시대 이른바 쿠데타로 왕위에서 쫓겨난 왕은 노산군(뒤에 단종), 연산군, 광해군 등 세 명이었다. 이 가운데 ‘반정(反正)’ 즉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왕이 교체된 것은 연산군을 폐한 중종반정과 광해군을 폐한 인조반정이다. 그런데 반정이라는 이름은 같지만 왕위에 오른 과정을 보면 중종과 인조(仁祖, 1595~1649, 재위 기간 1623~1649)는 아주 달랐다. 중종이 정변을 일으킨 공신들의 추대로 갑자기 왕위에 올랐다면, 인조는 왕이 되고자 몸소 정변을 준비하고 앞장선 인물이다. 인조는 자 화백(和伯). 호 송창(松窓). 휘 종(倧)이다. 선조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정원군(定遠君:元宗으로 追尊), 어머니는 인헌왕후(仁獻王后)이다. 비는 한준겸(韓浚謙)의 딸 인열왕후(仁烈王后), 계.. 2020. 5. 18.
광해군시대 인물 - 김개시 (광해군 왕의 여인, 조선3대 악녀) 김개시는 조선 광해군 때의 상궁이다. 미모는 아니나 민첩하고 꾀가 많아 광해군의 총애를 받았다. 이를 배경으로 국정에 관여하여, 권신 이이첨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권력을 휘둘렀다. 매관매직을 일삼는 등 그 해독이 컸다. 김개시는 광해군에게 위협이 되는 영창대군과 인목대비의 제거에 앞장서는 등 광해군의 왕권강화를 위해 온갖 악역을 도맡아했던 정치적 수완이 뛰어났던 궁녀였다. 개시의 시(屎)가 ‘똥 시’ 자이기 때문에 실제 이름은 김개똥이었을 것으로 흔히들 생각하지만, 계축일기에서는 ‘가히’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또 연려실기술과 공사견문록 등에는 그녀의 이름이 각각 ‘개희(介姬)’, ‘가히(可屎)’라고도 표기되어 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그녀의 이름 ‘개시(介屎)’는 기존에 흔히 알려져 있는 개똥이가.. 2020. 5. 12.
오리 이원익, 대동법을 완성하다 이원익은 조선시대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의 생몰년은 그를 규정하는 대표적 특징을 알려준다. 그는 87세로 매우 장수했고, 그런 까닭에 임진왜란(45세, 이조판서)과 인조 반정(76세, 영의정), 정묘호란(80세, 영중추부사) 같은 조선 중기의 중요한 사건을 모두 통과했다. 나이와 관직이 보여주듯이 그는 그 사건들의 중심에 있었다. 어떤 사람의 지위와 임무가 높고 중요할수록 그의 일상은 평온보다는 변화와 격동에 지배되기 쉽다. 그 사람의 성향에 따라 그것은 그에게 행복이기도 하고 고통이기도 할 것이다. 조선 중기는 뛰어난 인물들이 특히 많이 배출된 시기였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조건은 특히 가혹했다. 이원익은 뛰어난 실무적 경륜과 굳은 의지로 그런 국면을 헤쳐간 .. 2020. 5. 11.
광해군 - 인목대비 폐하다 조선시대 제14대 선조의 왕비. 계비이다. 영창대군(永昌大君, 1606~1614) 생모이다. 그러나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후 폐위되는 불운에 처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다시 인조반정으로 명예를 회복한 대비는 바로 인목왕후(仁穆王后, 1584~1632)를 지칭하는 말이다. 19세의 나이로 51세의 선조에게 시집을 와서 선조가 그토록 바랐던 아들 영창대군을 낳았지만, 영창대군은 그녀에게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안겨주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인목왕후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김제남(金悌男)의 딸로, 1584년(선조 17)에 태어나 1602년(선조 35) 선조의 계비(繼妃)가 되었다. 당시 인목왕후의 나이는 19세, 선조의 나이는 51세로, 당시까지는 가장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왕과 계비였다. 선조는 의인왕후 사.. 2020. 5. 9.
조선 16대 왕 인조 - 반정으로 왕위에 오르다 인조의 자 화백(和伯). 호 송창(松窓). 휘 종(倧). 선조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정원군(定遠君:元宗으로 追尊), 어머니는 인헌왕후(仁獻王后)이다. 비는 한준겸(韓浚謙)의 딸 인열왕후(仁烈王后), 계비(繼妃)는 조창원(趙昌元)의 딸 장렬왕후(莊烈王后)이다. 1607년(선조 40) 능양도정(綾陽都正)에 봉해졌다가 후에 능양군(綾陽君)으로 진봉되었다. 조선 16대 왕 인조는 선조의 다섯째 아들인 정원군(定遠君, 뒤에 元宗으로 추존됨)과 좌찬성 구사맹의 딸(뒤에 인헌왕후로 추존) 사이에서 맏아들로 1595년 11월 7일에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인조가 해주에서 출생한 것은 왜구의 침입으로 왕족들이 해주에 피신 중이었기 때문이다.인조의 조부가 되는 선조는 14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늙어서 얻은 영창대군 외에.. 2020. 4. 9.
광해군의 중립외교와 강홍립 장군 광해군은 선조의 적장자였던 영창대군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다. 그는 명나라가 쇠퇴하고 후금이 세를 일으키던 국제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두 세력의 중간에서 균형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것을 중립외교란 한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사림들이 일으킨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은 폐위된다. 광해군은 왕족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전쟁을 온몸으로 체험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의 대외정책 제1순위는 전쟁 발생 방지였다. 당시 동아시아의 세력도는 요동치고 있었다. 명나라는 조선 파병으로 재정이 고갈되어 약해지고 여진족은 급격하게 힘을 키워가고 있었다. 마침내 여진족은 후금을 세우고 명나라에 선전포고까지 한다. 당시 조선의 사대부들은 명나라를 전쟁에서 조선을 구해준 슈퍼 히어로로 생각하고 있었다. 명나라는 조선에 후금을 막을 지원병.. 2020. 3. 28.
조선 15대 왕 광해군 - 폐모살제 그리고 인조반정 임진왜란의 막이 내렸다. 의인왕후 사후 선조는 계비를 간택, 1606년 선조의 계비가 된 인목왕후가 그 후 영창대군(적자)을 낳자, 광해군을 내심 탐탁치 않게 여기고 미워하던 부왕 선조는 다시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하여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고, 소북파의 유영경 등도 적통론을 내세워 영창대군 옹립계획을 세운 선조를 지지하였다. 특히나 선조 자신이 서얼에다가 방계승통을 했다는 콤플렉스까지 겹치면서 영창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 시도가 행해졌다. 그러나 선도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으며 임진왜란 동안 많은 공을 세운 광해군이 대북파의 지지를 받아 1608년 왕위에 올랐다. 1609년 광해군은 자신의 세자 책봉 과정에서, 장자 승계 원칙을 주장하며 자신을 압박하던 명나라가 활용하던, 친형제이자 장자 임해군을 .. 2020.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