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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야기

광해군의 중립외교와 강홍립 장군

by 무님 2020.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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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은 선조의 적장자였던 영창대군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다. 그는 명나라가 쇠퇴하고 후금이 세를 일으키던 국제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두 세력의 중간에서 균형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것을 중립외교란 한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사림들이 일으킨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은 폐위된다.

 

 

광해군은 왕족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전쟁을 온몸으로 체험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의 대외정책 제1순위는 전쟁 발생 방지였다. 당시 동아시아의 세력도는 요동치고 있었다. 명나라는 조선 파병으로 재정이 고갈되어 약해지고 여진족은 급격하게 힘을 키워가고 있었다. 마침내 여진족은 후금을 세우고 명나라에 선전포고까지 한다. 당시 조선의 사대부들은 명나라를 전쟁에서 조선을 구해준 슈퍼 히어로로 생각하고 있었다. 명나라는 조선에 후금을 막을 지원병을 보내 줄 것을 요구해 온다. 임진왜란 때 도와주었으니 조선도 병사를 보내라는 것이었다. 명나라 입장에서 무리한 요구는 아니었다. 그들도 원병을 보내었으니 당연한 요구였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다. 그러니 무턱대고 명분만을 따를 수가 없었다. 특히 광해군은 국왕으로서 허울을 집어던지고 조선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실질적인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래서 일단 파병을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룬 후에 군인을 모집한다.

 

광해군 최대의 고민은 누굴 지원군의 대장으로 보낼 것인가였다. 후퇴할 줄 아는 융통성이 있으면서도 중국군과 협동작전을 펼칠 수 있을 정도의 중국어 능력을 갖춘 사람을 찾는 건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결정된 사람이 바로 강홍립이었다. 강홍립이 외교 경험만 있고 군대 경험이 없다는 건 안 비밀. 강홍립의 최대 특기는 중국어 능력이었다. 그에게 광해군은 특급 지령을 내린다.

“오직 패하지 않을 방도를 찾아라!”

명나라 군대의 말을 맹목적으로 듣지 말고 조선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란 거였다. 명과 후금의 싸움은 뚜껑을 열어보지 않아도 견적 이 나오는 전투였다. 명나라가 질 것이 뻔했던 것이다. 이 와중에 명나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최대한 조선 병사를 살려내는 걸 강홍립이 해야했다.

 

강홍림은 후금에게 명나라에 재촉당해 어쩔 수 없이 오긴 했지만 싸울 마음이 없다는 의사표시 강하게 하였다. 당연히 명나라와 전쟁을 하고 있는 후금 입장에서도 조선을 적으로 돌리긴 싫었던 것이다 . 후금은 조선의 원병들을 죽이지 않고 포로로 삼는다. 하지만 이 일이 알려지자 조선의 사대부들은 눈을 발칵 뒤집혔다. 후금에 허무하게 항복해서 명나라와의 의리를 저버린 강홍립의 처자식을 잡아서 처형하자는 어처구니없는 의견도 나왔다.

 

아무리 왕이 뭘 하려고 해도 나머지가 반대하면 끌고 나갈 수가 없었다. 광해군의 외교정책에 불만을 가진 사림들은 명나라를 중시하고 청나라를 멸시하는 친명배금 정책을 내세우면서 광해군을 폐위시킨다. 인조반정이 일어난게 된다.

 

광해군의 중립외교 현명하였다는 것은 인조가 즉위하고 증명된다. 인조가 친명배금 정책을 시행하므로써 정묘왜란이 일어나게 때문이다. 정묘왜란으로 조선은 임진왜란이후 다시 혼란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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