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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야기

2차 갑오개혁

by 무님 2020.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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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개혁 때는 의정부를 내각이라 고치고 7부를 두었다. 인사제도는 문무관()을 개편하고 월봉제도()를 수립하였다. 지방행정구역은 8도()를 23부() 337군으로 개편하였다. 지방관으로부터 사법권과 군사권을 박탈함으로써 횡포와 부패를 막아 지방행정체제를 중앙에 예속시키는 근대 관료체제를 이룩하였다.

사법제도는 행정기구에서 분리시켜 재판소를 설치하고 2심제()가 채택되었다. 1심 재판소로서 지방재판소와 개항장재판소()를, 2심 재판소로는 고등재판소와 순회재판소를 설치하였고, 왕족에 대한 형사재판을 위해서 특별법원을 두었다. 그러나 제2차 개혁은 개혁을 추진하던 박영효가 1895년 반역음모 혐의로 정계에서 쫓겨나 일본에 망명하면서 끝나고 말았다.

 

 

 

 

* 홍조 14조 내용

  1. 청나라에 의존하는 생각을 끊어버리고 자주 독립(自主獨立)의 터전을 튼튼히 세운다.

  2. 왕실의 규범을 제정하여 왕위 계승 및 종친(宗親)과 외척(外戚)의 본분과 의리를 밝힌다.

  3. 임금은 정전(正殿)에 나와서 시사(視事)를 보되 정무(政務)는 직접 대신(大臣)들과 의논하여 재결(裁決)하며 왕비나 후궁, 종친이나 외척은 정사에 관여하지 못한다.

  4. 왕실에 관한 사무와 나라 정사에 관한 사무는 반드시 분리시키고 서로 뒤섞지 않는다.

  5. 의정부(議政府)와 각 아문(衙門)의 직무와 권한을 명백히 제정한다.

  6. 백성들이 내는 세금은 모두 법령(法令)으로 정한 비율에 의하고 함부로 명목을 더 만들어 불법적으로 징수할 수 없다.

  7. 조세나 세금을 부과하는 것과 경비를 지출하는 것은 모두 탁지아문(度支衙門)에서 관할한다.

  8. 왕실의 비용을 솔선하여 줄이고 절약함으로써 각 아문과 지방 관청의 모범이 되도록 한다.

  9. 왕실 비용과 각 관청 비용은 1년 예산을 미리 정하여 재정 기초를 튼튼히 세운다.

  10. 지방 관제를 빨리 개정하여 지방 관리의 직권을 제한한다.

  11. 나라 안의 총명하고 재주 있는 젊은이들을 널리 파견하여 외국의 학문과 기술을 전습 받는다.

  12. 장관(將官)을 교육하고 징병법(徵兵法)을 적용하여 군사 제도의 기초를 확정한다.

  13. 민법(民法)과 형법(刑法)을 엄격하고 명백히 제정하여 함부로 감금하거나 징벌하지 못하게 하여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

  14. 인재 등용에서 문벌에 구애되지 말고 관리들을 조정과 민간에서 널리 구함으로써 인재 등용의 길을 넓힌다

 

 

* 조선왕조실록 <2차 갑오개혁 시행내용 >

 

 

고종실록 32권, 고종 31년 12월 16일 무오 1번째기사 1894년 조선 개국(開國) 503년

의정부를 대궐 안에 옮기고 내각으로 부를 것, 의복 규정, 지방 제도의 개정 등을 명하다

조칙(詔勅)을 내리기를,

"임금과 신하가 서로 만나는 예법을 참고하여 개정하되 될수록 간소하게 하라."

하였다. 또 조칙을 내리기를,

"이제부터 나라 정사에 관한 사무는 짐이 직접 여러 대신(大臣)들과 토의하여 재결(裁決)하겠다. 의정부(議政府)를 대궐 안에 옮기되 내각(內閣)으로 고쳐 부르고, 장소는 수정전(修政殿)으로 하며, 규장각(奎章閣)은 내각이라고 부르지 말라."

하였다. 또 조칙을 내리기를,

"조신(朝臣)의 대례복(大禮服)은 흑단령(黑團領)으로 하고 대궐에 나올 때의 보통 예복은 검은색 토산 명주로 지은 두루마기와 더그레〔塔號〕 및 사모(紗帽)와 목긴 신〔靴〕으로 하여 명년 설날부터 시행하라."

하였다. 또 조칙을 내리기를,

"감사(監司), 유수(留守), 병사(兵使), 수사(水使) 이하는 이제부터 봉한 상소를 올리지 말고 사무를 구별하여 해당 아문(衙門)에 보고하면 거기서 참작하여 보고하라."

하였다. 또 조칙을 내리기를,

"높고 낮은 관리들이 서로 만나거나 서로 부르는 예법을 개정하라."

하였다. 또 조칙을 내리기를,

"지방 제도를 개정하기 전까지는 주(州), 군(郡)의 크기와 거리를 보아 당분간 한 개 읍의 수령이 몇 개 읍을 겸하여 관할하게 하라."

하였다. 또 조칙을 내리기를,

"이제부터 팔도(八道)의 각 지방 수령들의 정사와 백성들의 고통을 내무 아문(內務衙門)에서 수시로 관리를 파견하여 조사하고, 그것을 바로잡고 정리할 방책에 대하여 아뢰고 시행하라."

하였다. 또 조칙을 내리기를,

"크고 작은 제사를 참작하고 토의 결정하여 들여오라."

하였다. 또 조칙을 내리기를,

"칙임관(勅任官)과 각부(各府), 각 아문(衙門)의 서기관(書記官), 비서관(祕書官)은 합문(閤門) 밖에까지 말을 타게 하고 각처의 육군 장교(陸軍將校)와 경무관(警務官)도 이 규례대로 하라."

하였다. 또 조칙을 내리기를,

"이제부터 만일 의견을 말한다는 핑계 아래 국시(國是)를 뒤흔들어 놓는 자가 있으면 원소(原疏)는 받아들이지 말고 상소를 올린 사람은 직접 법무아문(法務衙門)에서 잡아다가 엄하게 징계하게 하라."

하였다. 또 조칙을 내리기를,

"전후하여 억울하게 죄를 입은 사람들을 모두 해명하여 방송(放送)하며 죽은 사람은 벼슬을 회복시켜라."

하였다.

 

 

 

고종실록 33권, 고종 32년 3월 25일 병신 2번째기사 1895년 대한 개국(開國) 504년

내각 관제를 반포하다

칙령(勅令) 제38호, 〈내각 관제(內閣官制)〉를 재가(裁可)하여 반포(頒布)하였다.

〈내각 관제(內閣官制)〉

제1조

내각은 국무 대신(國務大臣)으로 구성한다. 서리 대신(署理大臣)도 국무 대신에 준한다.

제2조

국무 대신은 대군주 폐하(大君主陛下)를 보좌하여 나라를 운영하는 책임을 맡는다.

제3조

내각 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은 각 대신의 수반(首班)이다. 임금의 뜻을 받들어 행정 각부(各部)의 통일을 보장한다. 모든 중요한 사무는 내각 총리대신과 주임 대신(主任大臣)이 보고를 함께 행한다.

제4조

내각 총리대신은 행정 각부의 처분이나 명령에 대하여 다시 토의하여야 한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잠시 중지시키고 내각 회의를 거쳐 상주(上奏)하여 결재하기를 기다릴 수 있다.

제5조

내각 총리대신은 관하 관리를 감독 통제하며 칙임관(勅任官)과 주임관(奏任官)의 진퇴(進退)는 내각 회의를 거쳐 상주하고, 판임관(判任官) 이하는 전담하여 행한다.

제6조

내각 총리대신은 내각 회의를 거쳐 그 관하 관리의 품계를 올려 주는 등의 문제를 상주한다.

제7조

법률과 칙령은 내각 총리대신 및 관계 대신이 수결한다.

제8조

다음 사항은 내각 회의를 거친다.

1. 법률과 칙령안(勅令案)

2. 세입(歲入)과 세출(歲出)의 예산과 결산

3. 내외 국채(國債)에 관한 사항

4. 국제 조약과 중요한 국제 문제

5. 각 부서 간의 주관 권한에 대한 쟁의(爭議)

6. 신하와 백성의 상소(上疏)로서 특별히 대군주 폐하가 내려 보낸 것

7. 예산 외의 지출

8. 칙임관과 주임관의 임명과 진퇴. 다만 무관(武官)과 사법관의 임명과 진퇴는 이 제한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9. 옛 규정의 존폐 및 변경과 관청을 없애고 설치하며 나누고 합치며 각 부에 전적으로 소속시킬지의 여부를 물론하고 정리와 개혁에 관계되는 일체의 사항

10. 조세를 새로 설치하거나 고치며 그대로 두거나 없애며 관청 소유의 토지, 산림, 건물, 선박 등 관리 처분에 관한 사항

제9조

주임 대신은 그 의견을 어떤 조항의 사건이든지 구애하지 않고 내각 총리대신에게 제출하여 내각 회의를 열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제10조

내각 총리대신에게 사고가 있을 때에 다른 대신이 임시 칙명을 받들어 그 사무를 주관할 수 있다. 각 대신에게 실지 병이 있거나 다른 사고가 있을 때에는 각 협판(協辦)이 대신하여 내각 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

제11조

본령은 개국 504년 4월 1일부터 시행한다.

 

 

 

고종실록 33권, 고종 32년 3월 25일 병신 5번째기사 1895년 대한 개국(開國) 504년

각부 관제 통칙을 반포하다

칙령(勅令) 제41호, 〈각부 관제 통칙(各部官制通則)〉을 재가(裁可)하여 반포(頒布)하였다.

〈각부 관제 통칙(各部官制通則)〉

제1조

본 통칙은 외부(外部), 내부(內部), 탁지부(度支部), 군부(軍部), 법부(法部), 학부(學部), 농상공부(農商工部)에 적용한다.

제2조

각 부의 대신(大臣)은 그 주관하는 사무에 대하여 책임진다. 주관하는 것이 명백하지 않은 사무로서 두 개의 부 이상에 관계되는 것이 있을 때에는 내각(內閣)에 제출하여 그 주관을 정한다.

제3조

각 부의 대신은 주관하는 사무로서 법률, 칙령의 제정, 폐지, 개정을 필요로 하는 일이 있을 때에는 안을 작성하여 내각에 제출한다.

제4조

각 부의 대신은 주관하는 사무로서 직권이나 또는 특별 위임에 의하여 법률과 칙령의 범위 내에서 그 직무 집행을 위하여 부령(部令)을 발할 수 있다.

제5조

각 부의 대신은 주관하는 사무로서 그 직무의 범위 내에서 지방관에게 지령(指令) 또는 훈령(訓令)을 내릴 수 있다. 주관하는 행정 경찰의 사무로는 경무사(警務使)에게 지령 또는 훈령을 내릴 수 있다.

제6조

각 부의 대신은 주관하는 사무로서 지방관과 경무사를 감독한다.

지방관과 경무사의 명령 또는 처분이 규정에 어긋나고 공익을 해치거나 또는 권한을 침범하는 일이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그 명령 또는 처분을 정지하거나 취소할 수 있다.

제7조

각 부의 대신은 관하 관리를 통제 감독하며 칙임관(勅任官)과 주임관(奏任官)의 진퇴(進退)는 내각 회의를 거쳐 상주하고 판임관(判任官) 이하는 전담하여 행한다.

제8조

각 부의 대신은 내각 회의를 거쳐 관하 관리의 품계를 올려 주는 일 등을 상주한다.

제9조

각 부의 대신에게 사고가 있을 때에는 협판에게 임시로 그 직무를 서리(署理)하도록 할 수 있다.

제10조

서리 대신(署理大臣)의 직무 권한은 대신(大臣)과 차이가 없다.

제11조

각 부에 대신 관방(大臣官房)을 두고 대신 관방에서는 다음의 사무를 맡는다.

1. 기밀에 관한 사항이다.

2. 관리의 진퇴, 신분에 관한 사항이다.

3. 대신의 관인(官印)과 부인(部印)의 관리 보관에 관한 사항이다.

4. 공문 서류와 작성된 문서의 접수, 발송에 관한 사항이다.

5. 통계 보고의 조사에 관한 사항이다.

6. 공문, 서류의 편찬 보존에 관한 사항이다.

7. 기타 각 관제에 의하여 특별히 대신 관방에 속하여 맡아야 할 사항

제12조

각 부의 편의에 따라 대신 관방의 사무를 각 국에서 처리하게 할 수 있다.

제13조

각 부에 그 사무를 분담하기 위하여 국(局)을 둔다. 그 사무의 분담은 각 부의 관제로 정한다.

제14조

대신 관방과 각 국의 분과(分課)는 각 부의 대신이 안을 짜서 내각 회의를 거쳐 정한다. 군부(軍部) 안의 분과는 그 부의 관제로 정한다.

제15조

각 부에는 다음의 직원을 둔다.

협판(協辦), 국장(局長), 참서관(參書官), 비서관(祕書官), 주사(主事)

각 부에는 전항의 직원 외에 필요에 따라 예산의 범위 내에서 고원(雇員)을 쓸 수 있다.

제16조

각 부의 협판은 1인인데 칙임관(勅任官)이다.

제17조

협판은 대신을 도와 부의 사무를 정리하며 각 국의 사무를 감독한다.

제18조

각 국의 국장은 각각 1인이다. 1등 국장은 칙임관 또는 주임관(奏任官)이며 2, 3등 국장은 주임관이다. 각 부의 관제로 정한다.

제19조

국장은 대신 또는 협판의 명을 받아 그 주관 사무를 장악 처리하고 국 안 각 과의 사무를 지휘 감독한다. 주관하는 사무에 대해서는 그 책임을 진다.

제20조

참서관은 주임관으로서 대신 또는 협판의 명을 받아 대신 관방의 사무와 입안(立案)에 대한 심의를 맡고 또 각 국(局)과 과(課)의 사무를 돕는다. 참서관 중에서 1인에게 대신의 비서관을 겸임하게 하여 비밀 사무를 맡긴다.

제21조

각 부 전임 참서관의 정원은 각 부의 관제로 정한다.

제22조

대신 관방과 국 안의 각 과에 과장(課長) 각 1인을 두고 주임관 또는 판임관으로 채운다. 과장은 상관의 명을 받아 과의 사무를 맡는다.

제23조

주사는 판임관으로서 상관의 지휘를 받아 모든 일에 종사한다.

제24조

기사(技師)는 주임관이고 기수(技手)는 판임관으로서 상관의 명을 받아 기술에 관한 일을 맡는다.

제25조

각 부 판임관의 정원은 각 부 관제로 정한다.

제26조

본 통칙에 든 외에 각 부에 특별한 직원을 둘 필요가 있을 때에는 각 부의 관제로 정한다.

제27조

각 부의 대신은 내각 회의를 거쳐 예산의 범위 내에서 관하 주임관 이하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상을 줄 수 있다.

제28조

본령은 개국 504년 4월 1일부터 시행한다.

 

 

 

고종실록 32권, 고종 31년 12월 16일 무오 4번째기사 1894년 조선 개국(開國) 503년

법무 대신이 재판의 관할과 형구를 사용하는 문제를 아뢰다

법무 대신(法務大臣)이 아뢰기를,

"지방에서 하는 재판 외에 법무아문(法務衙門)의 일체 재판은 의금사(義禁司)에서 임시로 하고 있는데, 해사(該司)를 법무 아문 임시 재판소로 이름을 고치고 여러 가지 재판을 모두 그 재판소에서 하게 하며 본 아문에서는 재판과 형벌 적용 등의 일을 일체하지 않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또 아뢰기를,

"일체 형구(刑具) 중에서 가혹한 형벌은 사형죄 외에는 모두 쓰지 못하게 하며 형장(刑杖)으로는 단지 태형(笞刑)만 적용하고, 가두는 데서는 단지 칼을 씌우고 족쇄를 채울 것입니다. 도적이나 사람을 상했던지 불을 지른 것과 같은 죄인에게는 칼을 씌우고, 신문할 때에 죄의 경중을 물론하고 숨기면서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에는 태형(笞刑)을 치며 경한 죄인과 노약자에 대해서는 칼을 씌우거나 족쇄를 채우지 못하게 하되 도망칠 염려가 있는 자는 이 범위에 넣지 말 것입니다. 중앙과 지방의 각 감영(監營), 각읍(各邑), 각 진영(鎭營)의 형벌을 적용하는 곳에서도 이 규례로만 따르고 혹시라도 차이가 없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모두 윤허하였다.

 

 

 

고종실록 33권, 고종 32년 3월 25일 병신 13번째기사 1895년 대한 개국(開國) 504년

법관 양성소 규정을 반포하다

칙령(勅令) 제49호, 〈법관 양성소 규정(法官養成所規程)〉을 재가(裁可)하여 반포(頒布)하였다.

〈법관 양성소 규정(法官養成所規程)〉

제1조

법관 양성소(法官養成所)는 속성(速成)을 목적으로 하고 생도(生徒)를 널리 모집하여 규정한 학과를 가르치고 졸업 후에 사법관으로 채용할 수 있는 자격을 양성하는 곳으로 한다.

제2조

본 양성소에는 다음의 직원을 둔다.

소장(所長) 1인, 교수(敎授) 약간 인

제3조

소장은 법부 참서관(法部參書官)으로 채우고 교수는 수시로 임용한다.

제4조

본 양성소의 생도로는 20살 이상으로서 입학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나 또는 현재 관청에서 근무하는 사람에 한한다.

입학 시험 과목은 다음과 같다.

1. 한문 작문

1. 국문 작문

1. 조선 역사와 지리 대요(大要)

제5조

입학 시험에 응시하려고 하는 자는 제1호의 서식에 의하여 신청서를 갖추어 제출한다. 【서식은 생략한다.】

제6조

이미 입소 허가를 받은 자는 다시 제2호 서식에 의하여 보증서를 갖추어 제출한다. 【서식은 생략한다.】

제7조

본 양성소의 학과와 과목은 다음과 같다.

1. 법학 통론(法學通論)

1. 민법(民法)

1. 형법(刑法)

1. 민사 소송법(民事訴訟法)

1. 형사 소송법(刑事訴訟法)

1. 기타 현행 법률

1. 연습(演習)

제8조

본 양성소는 6개월을 졸업 기한으로 정한다.

제9조

3개월에 1차 시험을 치러 우등생에게 졸업 증서를 특별히 주는 일이 있다.

제10조

본 양성소에서 규정한 학과를 이수(履修)하고 졸업 시험에 합격한 자에게는 졸업 증서를 수여한다.

제11조

본 양성소 졸업 증서를 가지고 있는 자는 사법관으로 채용될 수 있다.

제12조

본령은 개국 504년 4월 1일부터 시행한다.

 

 

 

고종실록 32권, 고종 31년 12월 17일 기미 1번째기사 1894년 조선 개국(開國) 503년

총리대신 등이 왕실의 존칭을 새 규례를 갖추어 아뢰다

총리대신(總理大臣) 김홍집(金弘集), 내무 대신(內務大臣) 박영효(朴泳孝), 학무 대신(學務大臣) 박정양(朴定陽), 외무 대신(外務大臣) 김윤식(金允植), 탁지 대신(度支大臣) 어윤중(魚允中), 농상 대신(農商大臣) 엄세영(嚴世永), 군무 대신(軍務大臣) 조희연(趙羲淵), 법무 대신(法務大臣) 서광범(徐光範), 공무 대신 서리(工務大臣署理) 김가진(金嘉鎭)이 아뢰기를,

"왕실에 관한 존칭에 대하여 새 규례를 갖추어 아뢰니 재결하기를 삼가 바랍니다."

하였다. 주상 전하(主上殿下)를 대군주 폐하(大君主陛下)로 하자는 데 대해서는 아뢴 대로 윤허하였고, 왕대비 전하(王大妃殿下)를 왕태후 폐하(王太后陛下)로 하자는 데 대해서도 아뢴 대로 윤허하였으며, 왕비 전하(王妃殿下)를 왕후 폐하(王后陛下)로, 왕세자 저하(王世子邸下)를 왕태자 전하(王太子殿下)로, 왕세자빈 저하(王世子嬪邸下)를 왕태자비 전하(王太子妃殿下)로 하고, 전문(箋文)을 표문(表文)이라고 하자는 데 대해서도 모두 그대로 윤허하였다.

 

 

 

고종실록 33권, 고종 32년 4월 16일 정사 2번째기사 1895년 대한 개국(開國) 504년

한성 사범 학교 관제와 한성 사범 학교 직원 관등 봉급령을 반포하다

칙령(勅令) 제79호, 〈한성 사범 학교 관제(漢城師範學校官制)〉와 칙령 제80호, 〈한성 사범 학교 직원 관등 봉급령(漢城師範學校職員官等俸給令)〉을 재가(裁可)하여 반포(頒布)하였다.

 

 

 

고종실록 33권, 고종 32년 5월 10일 경진 2번째기사 1895년 대한 개국(開國) 504년

외국어 학교 관제를 반포하다

칙령(勅令) 제88호, 〈외국어 학교 관제(外國語學校官制)〉를 재가(裁可)하여 반포(頒布)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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