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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국대전3

명종의 업적 - 경국대전주해 조선 명종의 명으로 만들어진 법률 해석서로, 기존 경국대전의 조문이나 용어는 간결하면서도 뜻이 함축되어 있어서 그 문장과 실정에 능통하지 않고는 법을 제대로 적용받기 힘들었으므로 모든 사람들이 법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명종에 의해 대전주해관(大典註解官)으로 임명된 안위(安瑋), 민전(閔荃)이 경국대전의 내용을 주해하였고, 판서 정사룡(鄭士龍)과 참판 심통원(沈通源)이 검토, 정정하였다. 이후 영의정 심연원(沈連源), 좌의정 상진(尙震), 우의정 윤개(尹漑)의 검토를 거쳐 1554년(명종 9)에 완성, 그 이듬해부터 시행하였다. 주해한 항목수는 이전(吏典) 16항, 호전(戶典) 11항, 예전(禮典) 7항, 병전(兵典) 8항, 형전(刑典) 18항, 공전(工典) 2항으로 도합 6.. 2020. 4. 21.
성종의 업적 조선의 9대 왕 성종은 모범적인 왕이였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고도 학문에 매진하였으며 할머니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난 후에도 학자들과 경연을 매일 하였다고 한다. 그런 성종이 이루어낸 업적은 조선 정치제도의 기틀이 된다.\ 성종의 할아버지 세조는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세조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세종이 만든 집현전을 없앤다. 집현전 학자들의 경연은 왕권을 강화하고 픈 세조에겐 불편한 일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성종은 왕이 신하들과 학문을 토론하는 경연을 부활시킨다. 그런데 어린 왕 성종이 열심히 공부를 하였더라도 조선 최고의 석학들과 토론하고 학문을 논하는 건 조금 부담스러운 일이였다. 그래서 학문을 연구하는 기관인 홍무관을 설치한다. 성종은 경연제도를 부활시키고 홍문관을 설치하.. 2020. 2. 28.
세조의 인간 세조와 그의 업적 세조는 많은 사람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왕이였다. 그를 평할때면 '피의군주'라 불리울 정도이니 그가 왕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목숨을 거두 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럴까 그의 개인적인 인생사를 보면 불행할 따름이였다. 그렇다고 그를 동정 할 수는 없다. 세조 자신의 업보라 생각한다. 하지만 세조도 정작 자기 가족과 아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한 남자였다고 한다. 세조는 어머니 소현왕후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소현왕후 말년에 병으로 자주 피접을 갔는데, 마지막으로 요양한 곳이 바로 둘째 아들인 세조의 개인 사저였을 정도였다. 또한 세조는 무척 애처가였다고 한다. 세조는 왕이 되서도 후궁을 한명밖에 두지 않았다고 한다 세조는 아내 정희왕후를 매우 사랑하였는데 왕이 후사를 생산해야 한다는.. 2020. 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