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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4

유네스코 세계유산 < 한국의 아름다운 서원 > 한국의 서원은 2019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문화재로, 성리학의 이념으로 설립된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서원(書院) 9곳을 묶은 것이다. ‘한국의 서원’에는 영주 소수서원, 경주 옥산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대구 달성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정읍 무성서원, 장성 필암서원, 논산 돈암서원 등 9곳이 포함된다. 서원(書院)은 중국 당나라 말기부터 시작된 교육기관이다. 한국의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 설립된 것으로 인재 교육과 함께 선현의 제사를 지낸다는 목적도 있었으며, 사림의 향촌 활동 구심체로 정치적·사회적 기구로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의 서원은 조선 중종 때 풍기군수 주세붕이 영주 순흥에 지은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에서 시작해 명종 때 이황이 서원의 공인화와 체제 정비에 앞.. 2021. 1. 28.
퇴계 이황의 마지막 발자취 < 도산서원 > 안녕하세요. 입니다. 오늘은 도산서원을 소개하겠습니다. 도산서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유학자이자 선비인 퇴계 이황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들에 의해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현재의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생전에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 영역과 퇴계 사후에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지은 도산서원 영역으로 나뉩니다. 서원 전체 영역의 앞쪽으로 자리잡은 건물들은 도산서당 영역에 속하고, 그 뒤편에 들어선 건물들은 도산서원 영역에 속합니다. 도산서원 음성 해설 도산서당은 계상서당이 좁고 또 제자들의 간청이 있어 집 뒷산 너머 도산 자락에 지었는데 도산서당이 완서오딘 뒤에도 퇴계 선생은 계산서당에서 도산으로 왕래하였고 이곳에서 별세하였습니다. 은 도산서당의.. 2020. 6. 13.
퇴계이황의 도산서원 도산서원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陶山面) 토계리(土溪里)에 있는 서원이다. 퇴계는 도산서당을 조영하기 훨씬 전부터 학문을 하며 제자들을 가르칠 건물을 지었다. 1546년 퇴계가 마흔여섯 되던 해에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경상도 예안 건지산 남쪽 기슭 동암(東巖)에 양진암(養眞庵)을 지었고, 1550년에는 상계의 퇴계 서쪽에 3칸 규모의 집을 짓고 집 이름을 한서암(寒棲庵)이라 하였다. 그 후 전국 각지에서 제자들이 모여들자 1551년 한서암 동북쪽 계천(溪川) 위에 '계상서당(溪上書堂)'을 짓고 제자들을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는 퇴계종택(宗宅)이 있다. 지금의 도산서원은 1574년(선조 7) 이황(李滉)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그의 문인(門人)과 유림(儒林)이 세웠다.. 2020. 4. 15.
연산군 ~ 선조시대 인물 - 퇴계이황 퇴계 이황은 조선 중기의 대학자이다. 호는 ‘퇴계’이다. 평생 동안 학문 연구에 힘써 성리학(주자학)을 체계화했고, 도산 서당을 세워 제자를 길러 내는 데 힘썼다. 율곡 이이와 함께 조선의 대학자로서 쌍벽을 이루었으며, 붕당 가운데 동인이 그를 시조로 떠받들었다. 1501년 11월 25일 경상도 안동부 예안현 온혜리(現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 있는 할아버지 이계양(李繼陽)의 집에서 진사 이식(李埴)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여덟 남매의 막내인 퇴계에게는 형이 여섯, 누나가 하나 있었다. 모친은 춘천 박씨인 박치의 딸로, 전처인 의성 김씨와 사별한 후 아버지 이식이 들인 후처였다. 어릴 때부터 남달리 총명했던 그는 독서를 즐기는 모범생으로 자랐고, 열두 살 때 《논어》를 익힐 정도로 학문 수준도 .. 2020. 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