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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수2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서 신미양요로 * 제너럴 셔먼호 사건 신미양요의 원인은 1866년(고종 3) 7월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평양에서 군민(軍民)의 화공(火攻)으로 불타버린 일이다. 1866년은 조선의 대외교섭사에 있어 중요한 한 해였다. 그해 초 대원군은 천주교 금압정책(禁壓政策)에 따라 프랑스 신부 9명과 천주교도 수천 명을 죽이는 이른바 병인사옥(丙寅邪獄)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조선의 배외 감정은 최고조에 달하였다. 프랑스 선교사를 처형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 함대가 쳐들어오리라는 소문이 파다한 가운데, 그해 8월 정체 불명의 이양선(異樣船) 1척이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올라왔다. 이것이 바로 제너럴셔먼호였다. 셔먼호는 원래 미국인 프레스턴(Preston,W.B)의 배였다. 그런데 프레스턴이 톈진(天津)에 기항하고 있.. 2020. 11. 9.
임술민란의 도화선 < 진주 농민 봉기 > 조선 철종 때인 1862년, 경상도 진주에서 관리들의 횡포에 저항하며 농민들이 일으킨 봉기이다. 이 해 전국 곳곳에서 농민 봉기가 잇달았으며, 고종이 임금이 된 후에도 계속되어 1894년에 일어난 동학 농민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조선 후기에 사회모순이 전면화되는 상황에서 일어났다. 그 첫째로 농업 생산력과 상품화폐 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농민층이 급속히 분해되었으며, 그 결과 자영농민층의 몰락이 심화되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주와 소빈농(小貧農)·작인(作人) 사이에 경제적 이해를 둘러싼 대립이 첨예화되었다. 둘째, 위정자들도 '삼정의 문란'이라고 걱정할 정도로 조세를 둘러싼 폐단이 심각하였다. 조세문제는 농민들이 민란을 일으키면서 제기한 문제에 잘 나타나 있다. 농민들은 각종 조세가 토지에 집중 부과.. 2020. 10. 30.